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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25. 2024

도시의 개구리(2)

물속에 잠겼다가 다시 드러난 도시는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고 다시 돌아와서 지내도 된다는 연락은 이틀 만에 왔다. 하지만 도착한 집을 보고 우리는 한참을 말없이 서있었다. "이거 오늘 안에는 끝날까? 우리 청소한다고 지금 사 온 것들로 청소가 되려나?" 나는 가방 안에 담긴 물걸레와 청소포들로 이곳을 치울 것인가 걱정되었다.


  "어. 이따 오후에 가구 버릴 거 다 들고 간다더라. 우선 바닥부터 닦고 버리면 안 되는 물건들 좀 찾아봐야지." 내 물음에 희원이 팔을 걷어붙이고 대답했다. 희원이 운동화를 신은채 집 안에 들어갔다. 희원이가 책상 서랍을 열자 우르르 모래가 쏟아졌다. 희원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이것 봐 창틀에 낀 거. 모래나 흙들이 다 여기로 들어왔나 보다." 창문틈이 조금 열려있었지만 창틀에 흙이 잔뜩 끼인 듯 열리지 않았다. 희원이 책상 서랍에서 작은 카드지갑을 꺼냈다. 그리고는 목걸이며 반지며 귀걸이를 꺼내서 조그만 컵에 담기 시작했다. 희원은 그것들을 꺼내면서 어떤 건 버릴 쓰레기봉투에 넣고 어떤 건 챙겨갈 예정인지 따로 정리했다. 


  "오늘 청소 다 하고 다시 들어와 살 수는 없겠다." 내가 말했다. 여기를 정리하고 다시 살라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좀 어려워 보였다. 침대며 옷장이며, 옷장 속의 옷들이며 축축한 냄새가 나는데 어떻게 사람이 들어와서 살겠는가. 다른 집들도 청소를 하느라고 시끌시끌했다. 


  "학생." 열린 문으로 한 아주머니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어? 이모님. 오랜만이에요." 희원이 말했다. "정말로 다행이다. 학생. 동네 반지하방하고 1층도 죄다 잠겼다고 해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우리도 꼼짝없이 8층에 갇혀가지고 이틀인가 집에만 있었어." 아주머니가 희원의 손을 잡고 말했다. "아무튼 다행이다. 우리 오피스텔에는 크게 다친 사람도 없단다." 아주머니가 희원의 손을 쓸었다. "다행이네요." 희원이 약간 울상이 되어서 말했다. "아차. 내 정신 좀 보자. 학생 오면 치우는 거 좀 도와주고 필요하면 우리 집에서 밥 먹고 좀 쉬어도 된다고 말하려고 왔다." 아주머니가 희원의 손을 끌었다. 밖에는 깨끗한 물을 받아온 양동이와 밀대가 있었다. "물이 좀 아직까지 나오다 말 다한다. 그래서 집에 있는 걸로 가져왔지. 딸내미가 혼자 이런 거 잘 못하겠다 싶어서." 아주머니는 나와 희원이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정말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정리하는 걸 도와주셨다. 나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도록 바닥을 닦고 벽지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내었다. 희원이는 계속 무엇을 버릴고 무엇을 가질 것인지 선택하느라 바빴다. 결과적으로 버려지는 것들이 훨씬 많았다. 백 리터짜리 쓰레기봉투가 금방 찼다. 쓰레기봉투가 꽉 차면 우리는 그걸 밖에 내놓았다. 원래는 쓰레기 버리는 곳이 아니었지만 동네 사람들이 자기 집을 청소하며 나온 쓰레기들이 오피스텔 출입구 앞에 잔뜩 쌓였다.


  나는 희원이와 같이 쓰레기봉투를 올려다 놓고 잠깐 하늘을 올려다봤다. 이렇게 맑게 개일줄이야. 마치 하늘색 도화지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중충하고 비가 쏟아지는 날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없을 것이라는 것 마냥 하늘은 깨끗했다. 매일 바뀌는 하늘을 보며 아름답네 어쩌네 말하지 않아도 되니 그냥 폭우와 맑고 건조한 날의 평균치로 매일매일 같은 하늘을 보는 것도 좋겠다. 희원이 들어가고 나서 나는 주머니의 전자담배를 꺼냈다. 연기를 훅하고 뱉었다. 


  "아유. 켁." 뒤에서 컥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출입구로 나오던 젊은 여자가 사레가 들렸는지 켁켁대고 있었다. "어. 괜찮으세요?" 켁켁대는 여자가 맨 캔버스백 사이로 물총이 삐져나와있었다. 


  "어마야. 아가씨. 괜찮나??" 희원이의 집 청소를 도와주시던 9층 아주머니가 어느새 올라오셨다. "이거 좀 무봐라." 아주머니는 앞치마 주머니에서 생수 한 병을 꺼냈다. 여자가 아주머니에게 가볍게 인사하고는 생수병을 받아 들었다. 물을 마시려다가 여자의 캔버스 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구아구." 아줌마가 캔버스 백에서 떨어져 나온 립스틱과 물총을 가방에 다시 담아 여자에게 건넸다. "뭐고. 이게. 물총 페스티벌인가 한다더니 젊은 사람이라 그런가 가나 보네." 아주머니의 표정이 약간 탐탁지 않았다. "아. 예. 감사합니다." 여자가 가방을 받아 들더니 금세 자리를 떴다.


  "말세다 말세야." 아주머니가 읊조렸다. "세상에 동네에 사람이 열명이 물난리 나서 죽고 없어지고 했는데, 물총 싸움한다고 모여가지고.." 아주머니는 휙 하고 뒤돌아서더니 오피스텔의 유리문을 밀대로 밀고 있었다. 


 



물난리가 있고 나서 벌써 세 달이 지났다. 그간 희원의 집은 도배도 새로 하고 창문도 새로 달았다. 이것저것 고치는 만큼 정부에서 지원금이 나온다고 구 층 아주머니가 알려준 덕분에 희원은 그냥 새집에 살듯 집에서 고칠만한 것들은 다 고쳤다. 어느 날은 샤워 필터 같은 것들도 정부지원금 대상이라고 해서 한 박스를 사서 쟁여놓았다고 자랑했다.


 "연수ㅡ!" 희원의 전화였다. 나는 이어폰을 통해서 희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크게 변한 건 없었다. 희원과 나는 여전히 두 시간 거리에 살았고 가끔 만났다. 희원이는 때로 지인들과 한 잔 했다며 밤늦게 전화했다. 그러다 또 며칠 연락이 닿지 않았다. 뭐 다 괜찮았다. 희원이도 적응해 가는 것 같았다. 


  "연수, 잘 있나. 뭐하노." 희원이 말했다.


  "응. 그냥. 시험공부 중." 내가 대답했다.


  "바쁜가 보네." 희원이 시무룩하게 말했다. 


  "아냐. 안 바빠. 요새 성적이 잘 안 나와서." 


  "맞나. 이전에 유독 잘 본 거지." 희원이 말했다. 


  "그런가?" 의아한 희원의 위로에 내가 대답했다.


  "응. 매번 잘할 수는 없다. 나는 언제 한 번이라도 잘해보지?" 희원이 말했다.


  "별일 없지?" 희원의 시무룩한 말에 내가 물었다. 


  "내 집이 내 집 같지가 않다." 희원이 말했다. 


  "이사 가면 어때?" 내가 물었다.


  "그래도 여기가 좋지. 거의 첫 집 아니가." 희원이 말했다. "정 붙여볼라고." 희원의 목소리 뒤로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슬슬 날씨 추워지는데 이렇게 늦게 다녀?" 나는 걱정스레 희원에게 물었다. 책상 위에 펴놓은 책을 보려 애썼지만 희원이와의 통화에 나는 쉽게 정신을 뺏겼다. 펜을 내려놓고 고개를 의자에 기댄 채 희원의 목소리를 들었다.


  "유흥의 중심 아니가. 놀 땐 놀아야지." 희원이 말했다. 도대체 희원은 누구와 저렇게 '논다'는 걸까?


  "뭐 하고 놀아." 내가 물었다.


  "그냥 노래방 가고 술 한잔하고 하는 거지. 별거 있나." 희원이 말했다. "근데 있잖아." 희원이 말을 돌리려 했다. 희원이 말을 돌리려 할 때면 나는 언제나 그냥 다른 주제로 흘러가게끔 내버려 두었다. 


  희원이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집 살려고." 


  "응? 갑자기?" 내가 되물었다. 


  "전에 그 김팀장 아저씨 기억하나?" 희원이 말했다.


  "어. 그 체육관에 있던 불쌍한 공무원?" 


  "응. 안 그래도 그 아저씨가 일도 소개해주고 해서 몇 번 만났다. 하는 말이 동네에 이번에 배수로 싹 다 고치고 대규모로 재개발한다더라. 도심 리빌딩이라던가. 더 이상 물 찰 걱정은 없대. 차수벽도 해안가 따라서 싹 치고." 희원이 흥분한 듯 다다다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집 값도 엄청 오를 거래." 희원이 말했다.


  "그래서 그 동네에 아파트를 사려고?" 조금 어이가 없었다. 왜 희원은 갑자기 집을 사겠다는 결심을 한 걸까? 우리는 아직 이십 대 중반이라 월세살이가 그다지 어색하지 않은 나이였다.


  "아니. 아파트는 너무 비싸고. 내가 모은 돈 하면 우리 오피스텔 하나 살 수 있다." 희원이 말했다.


  "음. 나는 잘 모르긴 하지만 오피스텔 같은 건 좀 위험하다고 들었는데." 내가 대답했다.


  "아이다. 김팀장 아저씨가 그러는데 이 오피스텔은 큰 회사에서 지은 거고 전세가격도 방어가 잘된다고 하더라. 내가 물어봤다. 건폐율이 어쩌고 저쩌고 하던데 그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희원이 말했다.


  "너무 성급한 거 아냐?" 내가 말했다.


  "뭐 이 돈 모으는데 한세월이고 그 물난리도 겪었는데. 성급하긴.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부동산 투자를 시작해야 또 하루라도 빨리 팔고 또 다른 큰 집으로 옮기고 한대." 희원이 말했다. 희원이 어디서 들은 말을 앵무새처럼 종알거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야. 너 돈 많이 모았나 보다. 괜히 걱정했네. 그래도 좀 더 알아보고 해." 내가 말했다.


  "니는 아가 왜 이렇게 부정적이고." 희원이 말했다.


  "아니. 부정적인 게 아니라." 내가 대답했다.


  "우리 집 깨끗하고, 아파트 사람들 좋고, 뭐.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래도 부대시설 잘돼있다!" 희원이 외쳤다. 희원은 어느새 택시를 탄 듯했고, 어깨너머로 라디오 소리가 자그맣게 들려왔다. 시장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인지 부산시의 한 후보가 라디오에 출현한 것 같았다. 활력 있는 부산! 어쩌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니는 항상 그렇다. 내가 뭐 한다고 하면 그런 거는 인생에 도움 되겠냐 하고 내가 누구 만난다 하믄 그런 사람이 니 인생에 도움 되겠냐 하고. 정작 너네 엄마가 나랑 어울리지 말라고 할 때는 아무 말도 안 하대? 어이가 없다 진짜." 희원이 성질을 잔뜩 내더니 전화를 툭 끊었다.


  아. 나는 이 상황이 짜증스러웠다. 희원은 툭하면 저 너네 엄마 레퍼토리를 꺼냈다. 고등학교 시절에 희원을 집에 데려온 적 있었다. 엄마는 과일을 깎아주었고 식탁에 모여 앉아 엄마와 희원과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희원은 시답잖은 내 학교 생활을 엄마에게 시시콜콜 이야기했다. 그러다가 새로 나왔다는 허니버터칩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편의점에 그 과자를 파는지 보고 온다며 나갔다 왔다. 사실 엄마와 좋아하는 애 사이에 끼어있는 게 불편하기도 했다. 편의점에 다녀오는 동안 희원과 엄마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 하하 호호하고 있었다. 그 과자 구하기 어렵댔지 역시 없을 줄 알았어하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러다 희원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엄마는 성적에도 좀 더 신경 쓰는 게 어떻냐는 이야기를 했다. 다음에는 공부 잘하고 얌전한 애들도 집에 데려오라며. 희원이 참 예쁘게 생겼다 근데 얼굴에 좀 그늘이 진 게 걱정되네. 하는 말과 함께. 엄마의 말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한 게 잘못일까? 희원은 그 뒷담화를 오랫동안 기억했다. 


  핸드폰이 지잉 거렸다. '연락하지 마.' 희원의 메시지였다.





물난리가 이번 소설의 주요 소재였는데, 한국에 비가 많이 왔다니 미음이 좋지 않네요.

아무쪼록 큰 일 없이 여름이 안전히 지났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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