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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25. 2024

도시의 개구리(3)

희원의 연락하지 말라는 문자를 끝으로 우리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희원은 원래부터 하고 싶은 게 생기면 하는 사람이니 원하는 대로 집을 샀을 거다. 좋은 건가? 나도 부동산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래라저래라 해서는 안 됐는데. 그 집을 샀다면 이제 희원이는 유주택자인 건가? 조금 부럽기도 하다. 


  희원에게 연락했어야 하는데.


  나는 희원에게 고집스레 연락하지 않았다. 시기를 놓쳐버린 뒤늦은 걱정은 영 미련하게 보이니까. 섭섭해하려나? 희원이가 잘 있는지 보러 가고 싶기도 했지만 나도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영 바빴다. 국가고시도 봐야 했고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할지도 결정해야 했다. 때로 희원의 생각이 날 때면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희원을 떠올리는 일은 이제 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내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작할 동안 희원은 사진처럼 존재하고 있을 것 같았다. 


  "연수쌤, 이거 봐 멋지지 않아?" 실험실에서 박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다가 내게 내밀며 말했다. 화면에는 도시 구상계획이라는 자막과 함께 3D모형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해변가에 있는 도시의 가장자리에 울타리를 설치했다. 울타리는 곧장 회색의 벽으로 변했다. 벽은 2층 높이 정도 되어 보였다. 높은 빌딩은 벽을 내려다볼 수 있지만 작은 집들은 이제 더 이상 해변을 즐길 수 없었다. 모형은 계속해서 변화했다. 회색의 벽 위로 또다시 얼기설기 줄을 긋더니 이내 도시 전체를 뚜껑으로 덮어버렸다. 뚜껑 위로 비죽히 솟은 몇몇 빌딩들이 있었다. 


  "이게 뭐예요?" 내가 물었다.


  "이거 몰라? 해수면 상승에 대비한 리빌딩 프로젝트." 박사가 신난다는 듯 말했다. 


  "뭘 새로 짓는데요??" 내가 다시 물었다.


  "이삼 년 전인가? 이 프로젝트 엄청 시끄러웠었는데. 몰랐어? 도시를 새로 짓는다는 거야. 이미 물에 잠기고 떠내려가고 더러워진 도시는 지하로 만들고 위에 새로운 도로와 집들을 짓는 거지." 박사가 말했다.


  "이게 우리나라예요?" 내가 되물었다. 사막에다가 엄청난 규모의 주거시설을 짓고 발전도 가능하게 하는 프로젝트 같은 것들을 외국에서 하는 건 봤지만, 우리나라에 이런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는 건 경부고속도로 뚫을 때나 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응. 부산이야. 어 그러고 보니 연수선생님 부산 출신 아냐?" 박사가 말했다.


  "아. 원래 서울 살다가 고등학교 때 잠깐. 대학교 캠퍼스는 또 양산이었어요." 내가 박사에게 말했다. 박사는 출신지를 여러 번 물었지만 늘 기억하지 못했다.

 

  "아 그랬지. 맞아 맞아. 여기 부산 성계동에 아는 사람 없어?" 박사가 말했다.


  "아. 친구 있어요." 오랜만에 희원이 떠올랐다. 얼마나 오래 희원을 잊고 산지도 잊어버렸다. 희원이 아직 저곳에 살지도 미지수였다.


  박사는 다시 핸드폰을 받아 들더니 다른 동영상을 틀었다. 동영상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부산 성계동 리빌딩 프로젝트가 안정적으로 일차 시공을 마쳤습니다. 바닷가와 인접한 해안선을 따라 차수벽을 설치완료했습니다. 현장 보시죠. 현장에 나와있는 강수빈기자입니다. 이곳 부산 성계동의 해안을 따라서 이 층높이의 벽이 생겼습니다. 아주 생경한 느낌인데요. 이 차수벽은 잦아지는 해일을 막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차수벽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습니다. 이곳 차수벽 위로는 도시를 닫는 뚜껑, 즉 인공 토지가 들어올 예정입니다. 제가 서있는 이곳은 2년 뒤 토목공사가 끝나면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지하층이 되는 것입니다."


 



반지하게 살고 있었다.

물이 넘쳤다. 범람한 물에 도시가 잠겼다.

며칠이 지나자 물이 빠지고 곳곳에서 시체와 잃어버린 물건들이 발견되었다.

많은 것들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되었다.

도움의 손길이 뻗어 들었고 사람들은 쉴 곳을 찾았지만 어느 곳도 내 집 같지 않았다.


도시를 모두 덮는다는 계획이 발표되었고 공사가 빠르게 진행되었다.

대규모 토목공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도시에는 돈이 돌았다.

사람들은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공사는 완료되었고,

내 집이었던 곳은 그냥 지하 도로의 한 부분이 되었다.

건물의 일층은 이제 일층이 아니라 지하층이 되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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