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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Aug 09. 2024

끝나지 않는 여름

수빈은 일 년에 두 번 이삿짐을 싼다. 짐을 채운 박스는 단출하고 가벼웠다. 질긴 재질의 박스는 몇 년째 수빈과 함께 이사를 다녔다. 짐을 정리하던 수빈은 지친 듯 식탁 옆의 의자에 걸터앉았다. 창 밖에서 스며든 햇살의 빛줄기가 수빈의 얼굴을 비추었다. 수빈은 미간을 찌푸리고 이내 고개를 숙였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지친 수빈의 귀에 웅성웅성 소리가 들려왔고, 수빈은 소리가 나는 쪽인 창가로 터벅터벅 걸었다. 창 밖에는 여러 대의 버스가 줄지어 있었다. 밖에 있는 군인들과 눈이 마주친 느낌이 들자 수빈은 커튼을 홱 쳐버렸다. 그리고는 집안을 두리번거렸다. 이미 한 박스가 꽉 차버려서 더 이상 물건을 가져갈 수는 없다. 그래도 수빈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소파 아래와 서랍장 안쪽을 뒤적거렸다.


'쾅, 쾅, 쾅'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일층으로ㅡ! 빨리 안 나오면 두고 갑니다." 복도에서 웬 남자가 우렁차게 외쳤다.


"저 미친놈들.." 수빈이 뇌까렸다.


수빈은 박스를 문 앞까지 질질 끌고 갔다. 짐들은 현관문 옆에 덩그러니 남았다. 수빈이 문을 나서자 제법 선선한 바람이 얼굴에 날아들었다.


‘여름.. 이제 겨우 지났는데.. 이제야 바깥에 좀 나가볼 만한 날씨인데..‘ 수빈은 날씨가 좋아지려는 참인데 이곳을 떠나려는 게 못내 속이 상했다.


"다른 사람들 기다립니다. 빨리 내려갑니다." 군복을 입은 남자가 말했다.


"네." 수빈이 작게 말하고는 계단으로 향하려 했다.


하지만 이내 군인 중 한 명이 수빈을 보며 말했다. "날씨 좋은데 떠나려니 아쉽겠네. 우리랑 결혼하면 여기 계속 살 수 있는데. 하하." 수빈은 그들을 보며 인상을 팍 쓰고는 계단으로 향했다.


'그지 같은 세상.' 그지 같은 세상은 언젠가부터 더 그지 같아졌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와 바람으로 세상이 뒤덮인 날이 있었다. 2054년 7월 9일이었다. 이후에는 전 세계적으로 산발적인 지진이 일어났다. 채 48시간도 안 되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지구에는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부터 청주까지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정해졌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 낮에는 더 이상 밖에 있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밤에 점점 북쪽을 향해서 피난을 떠났다. 야간피난은 그들을 더위와 미신으로부터 지켜주었다.


재난 상황이 일어났던 며칠간 통신이 먹통이었다. 삼일인가 지나고 통신이 복구되었을 때 그들이 마주한 건 손쓸 틈 없이 무너졌다는 정부청사였다. 피난민들의 목적지였던 곳은 이미 콘크리트의 잔해만이 남아있었다. 평양도 잿더미가 되었고, 일본에서 온 피난민들도 속속들이 한국으로 도착했다. 수빈도 기숙사에 같이 지내던 친구들과 함께 무너진 도시를 탈출했다.


 "302호! 오셨네. 얼른 앉으셔." 아파트의 부녀회장 아줌마가 수빈을 보고 살갑게 말했다. 부녀회장은 수빈을 자기 옆자리에 앉도록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마이크를 잡았다.


"호주까지 비행기로 열 시간입니다. 공항까지는 버스로 5시간이니 푹 주무셔요." 부녀회장은 왠지 신나 보였다.


"자기. 왜 이렇게 기분이 안 좋아?" 아줌마가 말했다.


"이제 좀 날씨 살만한데 이사 가려니 너무 힘들어서 그러죠." 수빈이 말했다.


"자기. 나는 세상 이렇게 되고 나서 해외여행 처음 가보잖아. 일 년에 절반은 해외살이. 이거 젊은 애들이 맨날 하고 싶어 하던 거 아냐?" 아줌마가 수빈을 보며 말했다.


"긍정적이시네요." 수빈이 말했다.


"그래. 날씨 좀 덥더라도 새로운 곳에서 살아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지내자. 모든 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잖아." 아줌마가 수빈의 허벅지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렇지?" 수빈이 대답을 하지 않고 창밖만 바라보자 아주머니는 채근하듯 수빈 쪽으로 상체를 기울이며 수빈의 눈을 보려 했다. 그리고는 수빈의 어깨 쪽을 토닥였다.


"네. 건드리지 마세요." 수빈이 아줌마의 손을 쳐냈다.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뾰로통해." 아줌마가 수빈에게 말했다.


".." 수빈이 한숨을 크게 쉬었다.


"아줌마. 거 참 처자를 왜 그렇게 괴롭히셔?" 뒷자리에 앉은 빼빼 마르고 눈이 퀭한 남자가 부녀회장을 보며 말했다.


"뭘 괴롭혀. 다 좋은 게 좋은 거지. 우리는 이 사람들 아니었으면 길바닥이나 전전하면서 아직도 피난 다니고 있었을 거라고." 아줌마가 말했다.


"아줌마. 싸우지 마세요." 수빈이 일어서려는 아줌마를 잡았다.


"놔 봐." 아줌마가 수빈의 손을 탁 쳐냈다. 어디엔가 손이 긁혔는지 수빈의 검지에서 피가 났다. "아.." 수빈이 피가 나는 부분을 꽉 쥐었다.


"에헤. 거 보세요. 다쳤잖아요." 퀭한 남자가 말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아요." 수빈이 말했다.


"괜찮아?" 아줌마가 수빈을 보며 물었다.


"뭐가 괜찮아.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사는데." 아저씨가 말했다.


"뭐가 그렇게 엉망진창인데요?" 부녀회장이 말했다.


"우리가 여기서 이사 나가면 호주에 있는 사람들이 여기로 이사 들어올 거 아뇨?" 아저씨가 말했다.


"그게 왜?" 부녀회장이 말했다.


"그게 왜냐니. 여기가 우리 집인데..." 남자가 말했다.


"호주에 있는 집도 우리 집이에요!" 부녀회장이 말했다.


"아니. 거. 무슨 우리가 철새도 아니고 날씨 따라서 이렇게 이사를 다녀야 하오? 우리는 가진 것도 없으니 날씨 덥고 햇빛이 너무 강해서 낮에는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는 계절에만 살란 말이오?" 아저씨가 일어나서 말했다. "나는 계속 여기에 살고 싶소!" 그가 버스 안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저씨 그만하세요." 버스 안의 한 사람이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목숨만 부지하는 것이 사는 것이오? 부자로 선택된 사람들은 좋은 날씨가 있는 곳으로만 이사 다니면서 살고, 가을날씨 되면. 날씨 좀 좋아지면! 우리는 그들을 위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말이오?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서 그 덥고 따가운 곳에 자리를 잡아서 살라고? 그리고 또다시 그곳에 좋은 날씨가 오면 다시 비켜줘? 이게 뭡니까?" 아저씨가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여기서 초가집 짓고 살 수도 없고." 수빈이 말했다.


"초가집 짓고 이번 가을 겨울은 살 수 있지." 아저씨가 말했다. 그러자 부녀회장이 맞받아쳤다. "내년 여름이 오면 아파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채 말라죽어! 여기에서 버텨!" 아줌마는 아직 마이크를 쥐고 있었고 고함이 버스 안을 울렸다. 수빈이 귀를 막았다.


"우리에게 물을 주고 집을 지어주고 질병을 치료할 약을 주겠다면서 다가왔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준 게 무엇이오. 그들의 자비로 삶을 연명하는 것에는 미래가 없소." 아저씨가 말했다.


"그렇게 징징거릴 거면 나가요!" 부녀회장이 말했다.


"그래요. 나는 떠날 거요. 아무리 내가 못 배워먹은 무지렁이라도 어디엔가 여름을 날 수 있는 집한 채는 지을 거요." 아저씨가 말했다. "나와 같이 집을 짓고 이 무지막지한 이주를 끝냅시다. 같이 가실 분은 저와 같이 갑시다." 그렇게 말하고는 그가 차에서 내렸다.   


정적이 흐르는 버스에서 수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부녀회장이 말했다. "알잖아. 저렇게 떠나간 사람치고 살아 돌아온 사람 없어."


수빈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수빈의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수빈은 다시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버스가 슬금슬금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가려 했다. 여러 대의 버스가 줄지어 서있고 수빈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의 인생에는 여름만이 남았다.' 수빈이 떠올렸다.


너무 더워서 가끔 그냥 나무가 불타는 더위가 도사리고 있었다. 수빈이 돌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버스의 앞문을 두드리며 수빈이 말했다. "내려줘요! 내려줘! 나는 내 집에 갈 거야!!!" 버스기사가 문을 열자 수빈이 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수빈이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었다. 따가운 손의 피는 이미 멎었고, 수빈은 어떻게든 새로운 살 곳을 찾아갈 참이었다.






캥거루는 이제 없다. 그들이 살기에 이곳의 여름은 너무 더웠다. 캥거루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포유류들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바다와 강에는 이상하게 아주 작은 고기들이 많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의 생활도 변했다. 극단적으로 기상상황이 변해버린 환경에서 날씨를 쫓아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파트먼트를 짓고 관리하는 회사에서 최근 패키지 상품을 내놓았다. 남반구에 한 집 북반구에 한 집. 우리 모두 최고의 날씨를 누릴 수 있기를. 내가 집을 쓰지 않을 동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렌트를 줄 수도 있는 서비스이다. 아주 좋다.


나는 글을 쓴다. 엉망진창으로 변해버린 날씨에 대해서 쓴다. 호주는 피해 갔지만 지구의 다른 모든 대륙을 파탄 내버린 재앙들에 대해서 쓴다. 그리고 과거에 우리가 무시했던 여러 전조증상들에 대해서 연구하고 글을 쓴다. 호주에 한 그룹, 중국 내몽골에 한 그룹, 한국에 한 그룹, 미국의 워싱턴 주에 한 그룹만이 모여서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서로를 파괴할지 살게 할지를 궁금해하며 나는 글을 쓴다.


내일은 한국에 간다. 한국에 있는 내 집은 아주 깨끗하다. 거긴 늘 날씨도 좋고. 산도 많다. 햇빛이 허락한다면 등산을 가야 하니 등산화와 모자와 지팡이를 가방에 챙겨 넣는다. 아무도 관심 없겠지만 예쁜 옷도 챙겨본다. 종잇장과 볼펜들, 그리고 모아놓은 책들도 박스에 담는다. 집에서 쓰던 짐을 다 챙겨 넣었더니 총 다섯 박스의 이삿짐이 나왔다. 짐을 싸고 푸는 게 귀찮긴 하지만, 다른 할 일도 없는데 이런 것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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