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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Dec 18. 2024

와글와글 너머

3분 소설



빗소리를 들어봐 가까이 떨어지는 물방울들의 소리를 듣다가, 조금 더 멀리 흐르는 물소리를 찾아봐. 


아니 그러니까, 좋은 공연을 보면서 그냥 앉아있지 말고 열심히 들어보면 좋잖아. 듣는 걸 어떻게 열심히 듣는데? 많은 악기들 사이에서 피아노의 소리를 찾아봐. 아무렴 막귀도 찾을 수 있어. 그리고 첼로의 소리를 구분해 보는 거야. 중간중간 챙챙 울리는 심벌즈도 어떤 주기로 울려오는지 들어봐. 바이올린이 많잖아? 저기 많은 바이올린들이 다 같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다양한 소리를 들어보고 소리들이 얼마나 서로 잘 들어맞는지도 들어봐. 즐거울 거야.


문득 매미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아니 어떤 매미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헷갈릴 때, 나는 오랜 침묵을 깨고 멀어진 네게 말을 걸고 싶다. 어떤 매미가 어떤 소리를 배가 찢어지도록 울부짖는지 아는 것은 그다지 영양가 있는 일은 아니지만. 여름날 도시의 숲 속에서 처절한 외침이 들려오면 문득 알은체를 하고 싶다.


매미도 다 같은 놈이 아니라고. 매ㅡㅡㅡㅡㅡㅡㅡ와글와글ㅡㅡㅡㅡㅡㅡㅡ매ㅡㅡㅡㅡㅡㅡㅡㅡ매ㅡㅡㅡㅡㅡㅡㅡㅡㅡ하고 빈틈없는 소리를 내는 매미는 말매미. 맴맴맴매애애ㅐㅐ.. 맴맴맴ㅔㅔㅔㅔ... 하는 식으로 잔뜩 맴 소리를 짜냈다가 잠잠해지는 놈은 참매미.  담쟁이덩굴이 벽 여기저기에 못나게 자랐고 입 벌리고 뛰면 벌레를 잔뜩 먹을 것 같은 강 주변을 우리는 매일같이 걸었다. 사실 강이라고 하기엔 초라한 도랑 옆 길이었는데, 그 길에 선 너는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넌 내게 남이었다가 좀 익숙한 남이었다가 나 같았다가 내가 아님에 실망하고, 무언가를 남긴 채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편을 선택하는 수많은 인연들 중 하나였을까? 존재하는지도 몰랐다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는지 너무도 알고 싶다가 하나도 궁금하지 않은 어떤 과정에 너절해져버리고 마는 애틋한 마음일까. 혹은 그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어디쯤일까. 아니면 뭉근히 익다 눌어붙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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