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쫑알대는 하루
진한 인도 억양이 살아있는 교수님의 수업을 들은 지 벌써 반년이 넘어간다. 지난 학기의 수업은 적응하기 어려웠다. 세 개의 수업을 들었는데 각각 인도, 일본, 스페인 출신의 교수님 세 분은 미국 생활 경력이 제법 되었지만 고유의 악센트가 강한 분들이었다. 악센트가 있다고 영어를 못하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들은 자기가 전하고 싶은 강의도 하는 사람들이니 객관적으로는 영어를 잘한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말도 엄청 빠르다. 문제는 나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수업 때 멍 때리는 시간이 길었다. 그렇게 적응이 어려웠지만 나는 새 학기인 이번 학기에 또 인도 교수님의 수업을 찾아서 듣는다. 그걸 보면 ‘나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있는 걸까?’하고 긍정적으로 스스로를 평가해 본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업시간에 언어장벽을 느낄 때가 있다. 한창 수업을 듣다가 강의 내용을 놓쳐서 ‘모라고 하는 거지?’ 의문이 들 때면 옆에서 다른 학생들은 막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특히, 유창한 영어로 다다다다 질문하는 혓바닥 긴 본토의 미국인들의 질문을 들으면 나는 조금 위축되어 버린다.
그럴 때면 ‘아! 나만 못 알아듣고 있는 거구나! 큰일이다!‘싶다. 딱히 큰 일은 아니었지만 불편함이 가시질 않았다. 질문이 많은 내 입장에서는 잘 알아듣고 내 질문을 상대방이 알아듣는 게 참 중요한 의사소통 방식인데.. 그게 잘 안되니 답답한 마음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오늘도 범죄와 정책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다 보니 ‘비용 분석을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스쳤다. 교수님은 감옥에 죄인들을 수감하는 것의 효과와 사면을 하는 경우 범죄율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논문 세 개를 차례로 설명했다. 첫 번째 논문은 과거 이탈리아의 예시였다. 당시 감옥 내 인구밀도가 너무 높아지니까 이탈리아 정부는 대규모 사면을 해주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논문은 사면 전후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분석했다. 웬걸? 사면하고 난 이후에 범죄율이 급증했다.
사면이 비용과 편익의 입장에서 좋은 정책일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답을 찾아갔다. 교수님은 사면은 비용 편익 측면에서 좋은 정책이 아니다.라는 답을 내놓았다. 아마 교수님이 소개한 논문도 그렇게 답을 내놓은 모양이다. 하지만 영 찝찝한 부분은 이런 법안을 만들어낸 배경이었다. 감옥을 새로 짓는 잠재적 비용과 그만큼 더 필요한 잠재적인 인력, 또 그에 따른 비용을 아낄 수 있는데 말이다.
비용 편익 분석이 이게 맞아?! 우리 감옥 새로 짓는 비용은 고려하지 않았잖아요.라고 나는 질문했고 교수님은 좀 생뚱맞은 답변을 했다. 문답의 핀트가 크게 어긋났다.
이럴 때 한국어로 말했다면 아니 제 말은 ~ 하고 다시 물어봤을 테지만 그냥 내가 질문을 이상하게 했나? 싶었다. 인자한 교수님은 '당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어요!'라고 물어보는 대신 최대한의 촉으로 질문을 짐작하고 답변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이따 집 가서 챗지피티한테 물어봐야지.라고 생각하며..)
미국에서 공부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여전히 언어 장벽을 느낀다. 물론 오늘 수업에 질문하거나 코멘트를 세 번 정도 했고 그중 하나가 엇나갔기 때문에 타율이 완전 구린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짐해 본다.
질문하기 전에 방방 뛰는 심장을 고치고..
미리 예습을 좀 하고..
영어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음에는 이거 말입니다! 하면 그래 그거 말이다! 하고 질문과 답을 주고받을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