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날
한동안 사람들이 많은 곳이 힘들었다. 원래도 사람들 바글바글한 곳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피해 다니는 정도는 아니었는데 최근 들어 사람이 많고 오래 서있어야 하는 환경을 의식적으로 피하게 됐다. 지금도 엘에이에서 한다는 음악 축제에 지드래곤이 온다니 멈춘 심장이 뛰고 있지만 선뜻 가기에는 좀 망설여진다. 바글바글 후끈후끈한 축제의 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아니. 살아남기 위해서 음악 축제를 가는 건 아닌데 말이다.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내 걱정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추위에 볼이 빨개지지만 조금 얇은 코트를 입고 멋을 부리던 때였다. 사람들이 가득 찬 만원 버스에서 우리 과의 M양을 만났다. 워싱턴 디씨에서 기자 생활을 하다가 석사과정을 시작했다는 그 친구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는 편이었다. 붉은빛이 도는 금발의 머리를 질끈 묶은 지구반대편에서 태어난 아갓쒸와 나는 겉모습에서는 공통점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 통하는 부분이 많아서 꽤나 즐거웠다. 나도 한국에서는 했었던 일을 얘기하고 글을 쓰는 게 취미지만 완성은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소소한 얘기들이 오갔다. 얘기를 하는 동안에 뒤에 앉은 아저씨가 내쪽으로 부딪혀왔다. 그러고는 미안하다며 쏘리 한 마디 툭 던지고는 곧장 뒷자리에 앉은 친구와 호탕하게 웃기 시작했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요즘 나는 통학을 하고 있다. 편도로 사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학교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 그날따라 버스는 기어가듯 더디게 움직였다. 금요일 오후라서 그런지 시카고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꽉 막혀있었다. 한참 전에 부딪혀서 미안하다던 남자는 자기 뒷자리에 있는 친구랑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돌아앉으면서 또 내 다리를 쓱 스쳤다. 한 시간 반을 버스에 갇혀있던 나는 그 작은 스침에도 짜증이 났다. 멈춰 선 버스는 도로에 눌어붙은 껌처럼 떼어내기가 번거로워 보였다. 창 밖으로 시카고의 고층 빌딩들이 고요히 줄지어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다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나는 문득 '아 어지럽다'는 생각을 했다. 순간 세상이 핑핑 돌더니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있었다. 하지만 내 왼손은 의자를 꽉 쥐고 있었다. 마치 완전히 넘어질 수는 없다는 듯이 꽉 붙잡은 내 손을 보고 나는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먼저 든 생각은 '꼴사납게 쓰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다!'였다. 그 무렵에 이유 없이 한 삼일정도 크게 열이 난 이후로는 가끔 무리하면 쓰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걸을 때면 숨이 차고 어지러울 때도 있었다. 빈혈인가? 스트레스? 공황? 미주신경성 실신? 아니면 요즘 너무 안 먹어서 그런가. 별별 가능성이 스쳤지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버스의 바닥에 앉아있는 동안 주변의 사람들이 여기 앉아라 물을 마셔라 괜찮으냐 물었다. 몇 번이고 짜증 나게 부딪혔던 남자는 자기가 정말 미안하다며 중얼거렸다. 혹시 자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건 아니냐고. 이상하게도 그 말이 얄밉진 않았다. 이야기를 나누던 동기는 괜찮다는 나를 한사코 집 앞까지 데려다주겠다며 따라왔다. 나는 왠지 내가 아픈 이유를 정당하게 설명해야 할 것 같아서 '정말 괜찮아. 밥을 걸러서.' 같은 변명을 해댔다.
이후로 나는 스쿨버스를 피하게 되었다. 공짜여서 일까 스쿨버스는 통학 시간엔 늘 만원이다. 그 안은 사람들의 숨과 열기로 가득하고 나는 그 습기로 뿌예진 유리창을 참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요즘은 기차를 타거나, 사람이 적은 다른 버스를 골라 여유 있게 통학한다. 그렇게 나를 지키는 쪽을 선택하게 됐다. 아팠을 당시에는 예전에도 몇 번 그런 적이 있었기에, 이번도 금세 지나가겠지 싶었다. 병원에 가야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게 들지 않았다. 연말이라 병원 예약이 어렵기도 했고 몸의 문제인지 마음의 문제인지 확신이 없기도 했다. 적응하느라 지친 몸도 이제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곧 괜찮아질 것 같았다.
야무진 사회생활을 해내는 동생의 결혼식은 보나 마나 사람들로 북적일 터였다. 나로서는 조금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도 했다. 세상에서 제일 귀엽던 동생은 무지막지한 사춘기를 지나 성실한 어른이 되었다. 쪼끄만 놈이 언제 저렇게 자랐는지 동생은 어느새 덩치 좋고 제법 아저씨다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 애가 더 자랄 것만 같았다. 아무튼 동생의 결혼식에는 컨디션 봐서 여차하면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지나서,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걱정이 은근슬쩍 따라붙었다.
계속 마음 한편에 있던 걱정은 의외의 장소에서 말끔히 사라졌다. 한국에 도착하고 동생 결혼식 때 입을 깔끔한 옷을 사러 가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탄 지하철은 깨끗하고 조용했다.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마저도 백색소음처럼 안정적이었다. 차창 밖은 어두워졌다가 밝아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 빛의 교차 속에 몸을 맡긴 채 앉아 있었다. 쌀쌀한 날씨에 도톰한 회색 코트를 입고 나왔는데 실내로 들어오니 따뜻했다. 내 주변 사람들 역시 검정, 남색, 짙은 회색 계열의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었다. 추운 날의 풍경은 무채색으로 차분했다. 앞에 앉은 대학생 커플은 나란히 붙어 앉아 각자 핸드폰을 보고 있었고 그 들사이에는 무심한 온기가 흘렀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모두가 자기만의 조용한 세계에 머무르고 있는 게 순간 너무 부러웠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특별하지 않았지만 이상하리만치 나를 안심시켰다.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아무 말 없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