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날의 머리는 개 같았지만

너무 당연한 하루

by 서민혜


한국에서 뽀글뽀글하게 볶은 머리가 어느새 풍덩하게 자랐다. 북슬북슬한 것이 동네에 많이 보이는 강아지 같다. 우리 동네에는 개들이 제법 많다. 과장하자면 주먹만 한 강아지부터 나보다 덩치가 커 보이는 개까지. 개들은 주인을 따라서 위풍당당하게 동네를 산책한다. 주인이 개를 따라 산책하는 건가? 아무튼 지금 내 머리 스타일은 동네 개들 중에서도 꽤나 복슬복슬한 축의 강아지 같다. 굽실굽실한 머리는 뒤통수부터 목을 뒤덮었다. 자유롭게 마구 뻗은 머리카락들 덕에 내 머리통은 두 배는 더 커 보인다. 그래도 괜찮다.


"히피펌은 층을 좀 내야 이뻐." 미용실 아줌마가 말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유님미용실의 단골고객이다. 단골이라고는 하지만 매번 어마무시한 할인을 받기 때문에 장사에 도움이 좀 될는지는 모르겠다.


"오늘 머리 할 수 있어요?"라는 물음에 "그럼. 오늘 괜찮아. 아직 미국 안 갔나 보네. 결혼식 때문에 왔지! 어서 와~"라는 집사님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답했다. 할 일은 많은데 뭐부터 해야 할지 고민하며 갈 곳 잃은 나는 부리나케 버스를 타고 미용실로 갔다. 이번 한국 방문은 제법 짧았다. 이주 안 되는 시간이었고 절반의 시간을 고향에서 보냈다. 시간은 총알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게 이번 한국 방문의 주된 목적이지만 건강검진도 하고 싶고 치과치료도 받고 싶고 오래 못 본 친구들도 보고 싶었다.


입국하고 바로 며칠 뒤가 동생의 결혼식이었다. 예쁜 모습으로 참석하고 싶었지만 나는 퀭한 얼굴로 둥둥 뜬 누런 화장을 한 채 오가는 사람들을 맞았다.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은 민혜 얼굴이 좀 바뀐 것 같다며 웃었다. '미국 물을 먹어서 그런가~'라는 말에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몸이 좀 아픈 탓에 볼이 움푹 파여서 그런 걸까. 동생의 결혼식은 점심 먹기 좋은 시간대였다. 나는 시차적응 탓에 밤 열두 시에 잠에서 깼다. 그리곤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퍼뜩 떠올라 다급하게 새벽 시간 동안 과제를 했다.


손가락은 부지런히 자판을 두들겼다. 제출 마감을 결승선으로 백 미터 달리기를 하는 기분이었다. 새벽에 잠이 깬 엄마가 방문을 열었다.


"일찍 일어났네. 수영 같이 가자." 부지런한 엄마는 수영 갈 짐을 챙겨서 말했다.


"안돼. 나 바빠 이거 바로 제출해야 해." 퉁명스럽게 나간 말은 짧은 순간에 후회로 돌아왔다.


"좀 같이 가자."라며 엄마가 다시 권했다. 나도 엄마도 수영 가는 걸 좋아하니까. 아마 조금만 덜 바쁘고 몸이 괜찮았다면 나는 분명 엄마를 따라나섰을 것이다.


"나 진짜 못가."라고 말하는 내 미간에는 못나게 찍찍 세로줄이 그어져 있었을 거다. 내 머릿속에는 '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을 과제를 제출 시간에 맞춰서 하는 주제에 성질은.' 같은 생각이 지나쳐간다. 엄마를 따라갔더라면 시원한 수영장 물에 몸을 담그고 뻗어 나오는 열기를 조금 식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 년 만에 만나는 엄마는 사실 귀한 사람인데 지겹도록 매일 본 듯 대한 내가 밉다. 어떻게 했었어야 할까. 조금 더 다정하게 대해줄 수는 없었을까. 지구 반대편까지 떠나가버린 딸이 여전히 같은 시간에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줄 수는 없었을까.


다시 나는 미국에 돌아와 야밤에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고 엄마는 새벽 수영을 간다. 조용한 밤공기에 조심스럽게 여닫는 문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음엔 같이 수영 가야지. 한번 더 같이 웃어야지. 바보같은 후회와 지켜질지는 알 수 없는 다짐만이 마음에 남았다.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