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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May 12. 2024

전하지 못한 편지

한 선생님께



한 선생님은 아름다운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사랑에 대한 짧은 글귀에는 대상을 바라보는 당신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하고 사랑하지만 그런 사랑의 속삭임을 표현하는 사람은 참 드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는 한쌤의 글귀의 수려함뿐 아니라 표현할 수 있는 용기의 팬이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한 선생님의 친구인 차 선생님은 당신의 장례식장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서 제게 “선생님, 한이 좀 감정과잉이죠. 오래된 친구 입장에서 걔에게 오글거리는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것을 그만두라고 해도 듣질 않아요..”라고 합니다. 저는 “그런가요?”하고 웃고 말았습니다. 사실 저는 한 선생님이 오글거린다기보다는 그 재능을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가끔은 질투하기도 했고요. 어떻게 이렇게 글을 예쁘게 쓸까? 어떻게 세상에 내보일 수 있는 예쁜 글을 쓸까? 못난 질투였습니다.



  밥과 수육을 먹으며 차 선생님과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차 선생님은 반갑다는 듯 근황을 이야기했지만 눈물이 그렁그렁했습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 매니저님이 도착했습니다. 그는 영광에서 광주까지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아시다시피 그는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현장에서 늘 최선을 다하는 소방관이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도착할 때 다행히도 그는 비번이었나 봅니다. 뒤이어 공주에서 전주로 얼마 전에 학교를 옮긴 송 매니저님도 단정한 검은 자켓을 입고 왔네요. 우린 정말 한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온라인 메신저로만 소식을 주고받았을 수도 있었는데. 오랜만에 평창에서 같이 근무했던 이야기를 나누었네요. 한 선생님이 같이하지 못한 것은 두고두고 아쉽습니다.



  한, 당신의 빛나는 눈빛이 이젠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빈소를 찾기 위해 광주로 내려가는 길에도, 다시 세종으로 올라가던 기차에서도, 그 뒤에도 때로 당신을 떠올릴 때 제 마음은 푹 가라앉고 맙니다. 너무 아름다워 하느님이 먼저 데려간 걸까요. 모든 생에 그 무게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당신은 세상을 등지기에 너무 안타까운, 아쉬운 사람이었습니다. 친구로서도 그렇고, 좀 더 오래도록 그녀의 글을 보고 싶었던 한 독자로서도 말입니다. 거기다 예쁘고 나이도 어리고. 



  저는 강원도 평창에서 올림픽이 열리기 전날 스물넷의 한 선생님과 차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응급구조학과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푸릇푸릇한 애기들로 보였습니다. 드물게 풀타임으로 올림픽 슬라이딩 센터에서 의료지원을 맡겠다고 나섰었지요. 열심히 일 하겠으니 꼭 뽑아달라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실 그때 의료진 구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였습니다. 제가 뽑고 말고 할 것도 없었지만, 꼭 뽑아달라는 다정한 이메일에 피식 웃고 말았네요.



  대부분 의료진들은 각자 일하는 병원을 비우기가 어려워 미리부터 일정을 조율하고 연차를 내서 일하거나, 공식적으로 올림픽을 지원하는 병원에서 차출되는 식이었습니다. 특히 설상 종목인 슬라이딩 센터에서는 사고가 나는 경우 빠른 속도로 트랙에서 이탈하여 선수가 크게 다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응급상황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생님들은 의료계에서는 그 수가 현저히 적잖아요. 병원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들인 경우가 많지요. 그들의 일상만으로 벅찬 사람들이 일정을 조정해서 온다는 것이 또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는지.



  어떤 의사는 사고가 없어서 다행이지만 너무 경기만 가까이서 보고 가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토템 같은 존재라 거기 서있기만 해도 사고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사고가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도 말했습니다. 아마 그냥 서있는 것처럼 보였을 그들은 썰매가 비틀비틀 내려올 때, 속도가 애매하게 느리다 싶을 때, 경기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관중들이 트랙 쪽으로 붙을 때 꽤나 긴장했을 겁니다. 



  사고가 일어나는 단 몇 초에 대응하기 위해 그 오랜 시간을 버텨주는 게 그네들의 삶 같기도 했어요. 한 선생님도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작은 몸에 거북이 등딱지마냥 의료기기가 가득 들어있는 빨간 가방을 짊어지고 노란 부목을 차선생님과 나누어 들고 신발에 착용한 아이젠이 내는 찰박찰박 소리에 신나 했습니다. 



  어느 날은 차 선생님 하고 짝꿍을 지어달라고 한 선생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스켈레톤, 봅슬레이나 루지 선수들 덩치 큰데 혹시 사고 생겼을 때 들어서 옮기려면 남자선생님과 둘이 근무하는 건 어떤지 되물었어요. 응급구조사는 할 수 있다며 결의에 찬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실제로도 다 하더라고요. 몇 번의 시뮬레이션에서도, 실제 상황에도 착착 대응하더라고요. 괜한 걱정이었구나 싶었습니다.



  처음 연습 경기에는 선수들도 경기장 적응 겸사겸사 연습을 하니 멀리서 보면 사고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았죠. 한 번은 루지 썰매가 속도를 못 내서 점점 느리게 내려왔어요. 가장 빨리 달려야 하는 포인트까지 도달하지도 못하고 썰매가 멈춰 섰어요. 사고인가 싶어서 열심히 한참을 뛰어올라갔어요. 괜찮냐 아픈데 없냐 하니 선수는 민망해하며 어깨를 으쓱하더군요. 금방 털고 일어나 터벅터벅 썰매를 짊어지고 걷는 모습이란.. 상황을 공유하느라 불통 터지던 무전기가 민망해하더군요.



  혹시 사고가 생기면 썰매가 여기저기 부딪히며 빠른 속도로 움직이잖아요. 이동하던 썰매가 멈추면 의료진과 주변에 배치된 장병들이 투입되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곳곳에 배치된 엠뷸런스가 이동해서 환자를 옮겼죠. 슬라이딩 경기 특성상 관중이 계속 돌아다니며 경기를 볼 수 있고, 엠뷸런스 동선에 관중경로도 일부 포함되어 있어 경기 중 사고가 일어나면 밀집한 곳에 차가 들어가다가 또 2차 사고가 일어나는 경우도 조심해야 했고요. 응급 처치와 관중통제, 그리고 사고 현장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 등 신경 써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런 일을 한쌤과 제가 같이 했네요.



  가끔 저는 사무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도 그때의 기억들이 불현듯 떠오릅니다. 하루는 어떤 날이 또 하루는 다른 날이 생각납니다. 평소에는 잠잠하다가 어느날 문득 전등이 켜지듯 밀려온 기억은 머릿속을 헤집어 놓습니다. 원래는 그런 날들도 있었지하고 넘어가졌는데. 한 선생님의 죽음 이후에는 무언가 그저 가끔 그리워할 수밖에 없어서 무력하네요.



  아마도 윤성빈 선수가 메달을 따던 날, 설날이었나 아무튼 연휴의 어느 날, 사람들이 경기를 보러 정말 많이 왔던 날 축제의 장에서 들떠 발그레한 그 얼굴과 춥고 맑았던 그날의 날씨가 가끔 떠오릅니다. 그날 진짜 우리 엄청 긴장하고 바빴습니다. 그죠? 하지만 그 순간들이 가장 완벽한 순간이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숨 막히게 아름다운 순간을 선사해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전하지 못한 마음이 아쉽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지만 또 한 동안 잊고 살다가 불현듯 떠오르겠죠.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던 그 경기장을 다시 걸어보고 싶네요.







처음 한 선생님의 죽음을 알게 된 건 한 선생님의 친구가 올린 인스타그램 게시물이었습니다. 평창에서 찍었던 사진과 함께 도로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글을 봤어요. 평창 갔다 온 지가 언젠데 트랙 얘기를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우절도 아닌데 뭔가 싶었어요. 당신과 죽음을 연관짓지 못했어요. 저는 지금도 한 선생님이 어디엔가 숨쉬고 있을 것 같아요.



  뉴스에서 봤던 고속도로 연쇄 추돌사고와 한 선생님의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아수라장에서 한 선생님은 친구 한 분을 터널 밖으로 내보내고 정신을 잃은 친구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는데,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울며 거길 들어갔을 모습이 떠올랐어요. 너무 속상했고요. 시간이 제법 지난 지금은 한 선생님답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누군가를 구하는 선택을 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한 선생님은 작고 말간 얼굴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죠. 학교에서도 조교로 일하고 있다고. 참 훌륭한 스승님이 되었을 텐데. 교수, 부교수, 조교수 같은 직함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선생님으로 남을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또 구했겠지요. 그냥 저는 많은 사람이 당신의 이야기를 알고 애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벼랑 끝에 있는 응급환자를 구하고 싶어 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생과 사의 전선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나 많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이전에 누군가가 구한 삶들이 모여 지금 시간을 이루고 있다는 걸 가끔 떠올립니다. 누군가 내 아버지를 아버지의 아버지를 그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를 또 어머니를 어머니의 어머니를 ··· 과거의 나의 조상을 한 선생님과 같은 사람이 구한 우연들이 모여 지금이 되었다면 너무 과한 의미부여인가요? 한 선생님은 오글거리는 얘기도 잘하시고. 이에 대한 좋은 답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이 편지를 처음 쓸 때도 마음이 참 괴로웠는데, 고쳐 쓰는 지금도 목울대 어딘가가 뜨끈합니다. 



  멀리있지만 저는 당신의 영원한 안녕을 빌며 매일 조금씩 한 선생님의 곁으로 가고 있습니다.



2018, 평창 슬라이딩센터




* 저는 올림픽 기간 전후로 6개월 간 평창에서 지원근무를 했었습니다. 당시에 같이 일하셨던 지금은 하늘나라로 먼저가신 한 선생님이 가끔 떠올라 괴로웠던 어느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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