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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권목 Aug 05. 2022

찍는 사람

에세이_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일상들

티 없이 맑은 파란 하늘, 

저 혼자 핀 들꽃과 사람의 손길로 자리 잡은 꽃, 

둥둥 떠다니는 오리와 나른하게 퍼진 고양이, 

오묘한 색을 만들어 내는 노을, 

사람들은 잠시 발길을 멈춰 폰을 꺼낸다. 

그리고 각각 멈추게 만든 것을 향해 이쪽저쪽 위치를 옮겨가며, 

저마다의 구도를 잡고 ‘찰칵’, 다시 또 ‘찰칵’.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올 때까지 집중하는 사람들이 참 귀엽다. 


세상 무뚝뚝하게 생긴 중년은 강아지와 꽃을 함께 찍고 싶어 애를 먹는다. 

이리저리 펄쩍 뛰는 강아지가 쉽게 그의 요구를 들어줄 리 없다. 

퇴근길 횡단보도의 직장인은 하늘을 보더니 급하게 폰을 꺼내 

누구나 바라보게 되는 노을 가득한 하늘을 2장 찍고 만족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발걸음이 더 가볍다. 

간만의 외식, 지인과의 모임에서 꼭 누군가는 모든 것을 정성스레 배치한 후 

사진을 찍는다. 

음식, 장소, 만난 사람들… 그 정성과 재능(잠재력)에 협조하고 싶어 

몸을 비키고 가만히 기다린다. 

무엇을 찍는 건지 아리송한 사람도 있다. 

저 사람은 뭐에 꽂힌 걸까? 

그의 시선을 쫓아보지만 끝끝내 그 사람만의 발견이 된다. 

찍는 사람들을 찍어 주고 싶다. 

사진에는 내가 느낀 감정들이 고스란히 담기면 좋겠다. 

"당신들 이만큼 사랑스러워요!"

  

처음 사진전에 갔다. 사진전은 어떻게 감상하는 것이 좋은 걸까? 

아직도 처음 전시회에 들어가면 괜히 쭈뼛쭈뼛하다. 

무엇을 어떻게 느껴야만 한다는 답은 없다고 하는데, 

혼자 부담을 느끼며 설명을 읽고 작품을 보고 제목을 확인한다. 

그러다 보면 유독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은 작품이 있다. 

쉽사리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동행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저 순간을 포착하려고 얼마나 고민하고 기다렸을까?" 

"저 사람 시선은 꼭 따뜻한 방학 같은데 고요해." 

"저 사람이 찍은 서울과 제주가 궁금해."

 

사진을 보며 우리는 꼭 부다페스트 온천과 스페인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이게 우리가 찾던 여름방학이야.” 하면서.

 

그날 우린 작가의 시선을 흉내 내며 아름다운 것을 더 아름답게 보기 위해,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역시 다들 오랜만의 나들이인지 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았다. 

그 사람들도 우리랑 비슷한 것을 담아가는지, 좀 다른 걸 발견했는지 궁금해졌다. 

아무튼 사진을 잘 찍는 사람들이 부럽다.

 

고민한다. 멈출 수밖에 없는 것들과 간직하고 싶은 것들을 마주할 때, 

사진을 찍어야 할지 아니면 어차피 지금 보는 그대로를 절대 담지 못할 테니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아야 할지…. 

똥 손을 탓하며 후자를 택하지만 

다수의 찍는 사람들 속에서 가끔은 외롭고 결국은 후회한다. 

옆 사람은 주저 없이 폰을 꺼내 든다. 

역시 찍는 것이 나았을까? 

옆 사람에게 “나도 보내죠~!!”라고 말하는데 조금 빚지는 느낌이다. 

무엇도 포기하지 않고 욕심을 부리는 느낌. 

내 눈으로 실컷 그날을 즐기고 보내준 사진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같이 본 것들도 있지만 그 사람만 본 것도 있다. 

역시 찍는 사람은 받아만 보는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나 보다. 

“덕분에 사진 부자 됐어 고마워:D” 

다음에는 나도 찍는 사람이 되어 보내줘야지 다짐해본다.

 

거의 10년 만에 스티커 사진(?) 같은 것을 찍었다. 

‘인생 네컷’이라고 쓰여 있었다. 

궁금하기는 했지만 늘 교복 무리들만 가득해 들어가지 못했는데 

비슷한 나이의 전 직장 동료들이 먼저 찍자고 나서 주었다. 

한 명 빼고 정말 오랜만에 찍는 스티커 사진이기에 

처음에는 소품을 만지작거리며 쑥스러워했다가 

오고 가는 추천 속에서 다들 소신껏 무언가를 집어 들어갔다. 

출입구 앞에서 급하게 만 원짜리를 천 원짜리로 바꿨는데 카드 결제도 가능해서 당황했다. 

기계는 경험자가 다뤘다. 

처음에 우리는 렌즈도 못 찾아서(경험자 빼고) 바닥으로 눈을 내리까는 사진을 찍었는데 

새로운 기계는 너그러워 재촬영의 기회를 주었다.

우리는 결과물에 신이 나 소품을 바꿔 들고 한 번 더 찍었다. 

출력된 사진과 카톡으로 받은 짤까지!! 

마치 해리포터 세계에서 움직이는 사진을 찍은 것 같이 흥이 오래 가 

한참 그곳을 나오지 못했다. 

깔깔거리며 서로의 프사를 만들어 주겠다며 연사를 찍은 우리는 

아무도 그것을 프사로 하지 않았고 추억으로만 남겼다. 

다음에는 드레스 코드를 정하고 하트 선글라스도 쓰고 찍자며!

 

낯선 곳에 혼자 가면 나도 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 본다.

이 낯섦과 혼자만 아는 기분이 더 이상 찾아올 것 같지 않아 

이렇게라도 잡고 싶어 과할 만큼 찍어 본다. 

날씨가 좋으면 찍었던 것을 똑같이 여러 번 찍기도 하고 

지금까지 봐온 찍는 사람들에 이입하여 구도를 찾아보기도 하지만 

뭐가 뭔지 잘 몰라 그냥 찍고 남겼다는 것에 만족해본다. 

가는 길마다 멈춰 찍고 싶은데 너무한가 싶어 애써 단념하기도 한다. 

그래도 역시 사진을 보면 찍는 게 남는 거다.

직접 눈으로 느낀 것 과는 아무래도 다르지만 

그때 내가 무엇을 잡고 싶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되새기게 된다.  

분명 일상에서도 새로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데 알면서도 뭐가 그렇게 바빠 

안 보이는 척, 못 본 척 바삐 걸었을까. 

이제 잠깐 멈춰 더 많이 찍어보기로 한다. 

나만의 발견을 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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