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은 명절에 손님이 많아 항상 북적이고 일손이 부족하다. 그래서 경희와 나는 명절마다 친구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떡집에 나가 떡 판매를 돕는다. 명절날 떡집은 손님이 많아 자칫 주문이 밀리기 쉬워 모두가 한껏 예민한 상태이다. 체력적으로도 힘들어서 작은 소란 하나에도 날이 곤두선다. 예를 들어 포장 중인 떡을 마음대로 집어 드시는 분들, 예약된 떡을 보고 그거로 담아달라고 조르는 분들, 제사상에 올라가는 3장에 한 세트인 콩 편을 그중 한 장만 팔면 안 되냐는 분들의 다양한 형태의 요구들이 난무한다. 바쁘지 않고 피곤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좀 달랐을까? 내가 좀 더 부드러울 수 있었을까?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들을 하는 손님들 앞에서 나는 단호박이 된다. ‘한 장만 팔면 안 될까요?’에 ‘요’ 자가 미처 다 들리기도 전에 ‘안돼요’라고 해버린다. 안돼요 세 글자에 단호함을 가득 담아 타협의 여지가 없음을 표현한다. 나는 나름 다년간 쌓인 나의 고객 응대 노하우라고 생각하여 단호박 응대법을 고수한다. 그러면 손님의 표정에는 당황함과 언짢음이 동시에 드러난다. 이내 안 되는 게 어딨냐며 한 장만 팔면 파는 거지 3장을 다 사서 배불러서 어떻게 하냐고 따져 묻는다. 나는 다시 감정 없는 얼굴에 단호함을 한껏 묻힌 채 3장이 한 벌 세트인데 한 장만 팔면 남은 두 장은 누가 사냐고 얘기하며 맞선다. 자존심이 상한듯한 손님은 싸울 듯 따져 묻다가 함께 온 가족이 말리면 기분 나쁜 표정으로 다른 떡으로 눈을 돌린다. 나야말로 기분이 상한다. 그 손님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이렇게 바쁜데, 그런 무리한 요구를 꼭 해야 하나 싶었다. 세트 상품에서 하나만 빼버리면 남은 건 어떻게 판매하라는 건지 왜 가게 입장은 생각 안 하고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성났음을 저렇게 표현해버리는지 이해하지 못해 화가 났다.
일이 끝나고 외갓집 가는 길에 엄마 아빠에게 명절 음식을 먹으며 핏대 높여 이야기했다. 내 얘기를 듣고 엄마 아빠가 동시에 한 입으로 내가 너무 단호한 거절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거절당했는데 기분 좋을 사람이 어딨겠냐고 하물며 망설이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을 해버리면 누구라도 반감이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손님의 기분이 언짢아지면 말이 곱게 나올 리 없고 그걸 들은 나도 기분이 나빠지고 기분 좋은 사람이 하나 없는 그런 상황을 왜 만드냐고 좀 더 요령 있게 웃으며 넘겨보라고 하셨다. 고민하는 척 완곡하게 거절의 의사를 전달하는 게 포인트이다. 고민해보는 제스처나 사장님께 여쭤보겠다는 액션을 취한 후에 해드리고 싶지만 어쩔 수 없겠다는 뉘앙스를 전달하는 게 부모님이 전수해준 거절의 팁이었다. 어차피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라 거절이라는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더라도 그 사람의 부탁에 대해 고려해보았음을 티 내야 한다.
듣고 보니 너무나 일리 있는 조언에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다음날 써먹었다. 안 그래도 잔돈이 부족해서 옆 가게 기웃대며 잔돈을 바꿔온 상황인데 어떤 손님이 만원을 천 원짜리 10개로 바꿔줄 수 없느냐 물으셨다. 천 원 지폐의 개수가 많지 않아 어차피 바꿔드리지 못할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앞치마 주머니를 살피는 척을 하다 눈썹을 팔자로 만들었다. 바꿔드리면 좋겠는데 우리도 지금 천 원짜리가 부족하다고 진작에 많이 바꿔놨어야 됐는데 못 그랬다고 조금 더 능청맞게 얼굴 근육을 한껏 사용한다. 그렇게 해드리지 못해 나도 참 아쉽다는 리액션을 곁들이면 이 구역의 판매왕이 될 수 있다. 뭐 가끔 아쉬워하는 ‘척’ 오버하는 게 티가 난다고 해도 대부분 요 정도의 가면은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주는 애교로 봐주신다. 고개 빳빳하게 들고 대치하는 싸한 상황으로까지 몰아가지 않으려고 갖은 능청을 떤다. 부드럽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상황으로의 전환은 모두에게 좋다. 기분 좋은 삶의 노하우를 또 하나 얻었다. 좋게좋게가 가능한 상황에서는 좋게 좋게 가보자. 내가 거절을 당할 때에는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거절을 반기고, 내가 거절을 할 때에는 최대한 완곡하게 그리고 능청맞게 아쉬움의 가면을 써보기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