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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ki Jul 12. 2024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살림 방법

여러분 솔직히 귀찮죠?

우울증에 걸리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다.


그러면 당연히 집안은 엉망이 된다. 문제는 엉망이 된 거에서 끝나면 괜찮은데, 엉망이 된 집안을 보면서 자책하게 된다는 거다.


'역시 난 또 그렇지. 뭐.'


집안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을 뿐인데, 또다시 우울에 빠진다.


잔뜩 쌓인 빨래를 보고, 한숨이 나온다. 왜 나는 제때제때 빨래를 하지 못해서 이 상황까지 만든 걸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집어삼킨다. 설거지는 왜 또 해야 하는 걸까? 식세기가 설거지를 대신해 주는데, 식세기에 설거지 거리를 넣는 과정이 너무 귀찮고, 넣으러 가는 길이 너무나 멀다.






혹시 이런 증세가 있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우울증 증세가 처음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내 방은 엉망이었다.


위에 서술했던 것처럼, 엉망이던 방을 보고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살림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었다.


아주 조금씩, 적은 노력으로도 늘 깔끔한 집안을 보며, 자신감이라는 게 조금씩 붙었다.


이젠, 갑작스럽게 손님이 와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다.


그 방법을 지금부터 소개하려 한다.






1. 정리하기 전에 앞서, 내 '취향'인 방을 찾아본다.


솔직히 우울증은, 기분의 문제다. 사실 기분이 좋으면, 의욕이 아주 조금은 생긴다. 정리를 위해 기분을 이용하는 거다. 나 같은 경우, 핀터레스트에서 취향인 인테리어들을 보며 일단 '망상'이라고 부를 법한 상상을 먼저 하며 의욕을 채웠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인테리어 '물품'의 수가 많아선 안된다.


관리가 어려워지기 때문인데, 이에 관련한 설명은 추후에 하겠다. 그리고 이 인테리어 관련 사진들에 나온 제품이 아니더라도, 최대한 비슷한 제품들로 집안을 꾸민다.







2. 취향에 맞는 방을 꾸몄으면, 최대한 물건의 수를 줄이기 시작한다. (사실상 미니멀리즘을 추구한다.)


미안하다. 어쩔 수가 없다. 우울증은 기분상의 문제로 눈앞에 닥친 일들이 버거운 거기 때문에, 버겁지 않기 위해선 최대한 물건 수를 줄이는 수밖에 없다. 나는 방 2개, 거실 하나인 오피스텔에서 살고 있지만 옷방은 없다. 방 안에 물건들이라곤 책상 위에 올려진 것과, 트레이에 담긴 물건이 전부다. (트레이는 두 칸이 비었다.) 화장품도 파우치 하나로 정리했다.


옷은 방에 딸린 빌트인 옷장에 들어간 게 전부다. 정말로 옷방이 없다.



사진에 보이는 옷이 사계절 옷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바지와 패딩, 속옷, 잠옷류가 있지만 빌트인 옷장 하나로 모조리 정리가 가능하다.


주방도 마찬가지다. 상부장은 거의 쓰지 않는다. 프라이팬은 2개, 냄비도 2개, 접시와 대접은 4개씩, 그 이외에 오가닉 버터를 먹기 때문에 생기는 유리병을 반찬통으로 써서 딱히 반찬통 또한 많지 않다. 수저는 손님이 올 때를 대비해 4세트씩 있다.


화장실에도 필요 이상의 물건을 두지 않는다. 칫솔과 치약, 상비해 두는 물품들을 제외하고 잡다한 물품들을 놓지 않는다.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도 크림과 세럼 단 2개뿐이다.


이 정도로 물건이 줄어들면 장점이 뭔지 아는가?


1. 빨래를 미룰 수가 없다.

2. 식세기(혹은 설거지)를 미룰 수가 없다.

3. 정리를 하지 않아도 그렇게 더러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 내가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이유는 '미룰 수가 없다' 와, 물건이 적어 '깨끗해 보이는 걸' 노리는 거다. 물론 중증의 우울증이라면 이것도 안될 거란 걸 안다. 하지만 경도의 우울증이고, 직장을 다니는 중이라면, 어쩔 수 없이 빨래와 식세기를 돌려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다만 식세기를 돌리지 않기 위해 배달을 먹는 경우가 생기긴 한다)


개인적으로 너무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는 것 또한 스트레스였다. 여력이 좀 남는다면, 인테리어 소품이나, 당신의 취미를 위한 제품은 추가하길 바란다.


대신 관리에 용이한 제품들로 먼지가 쌓이지 않는 홈이 없는 제품들을 추구하기 바란다. 식물도 구비해 둘 수 있다. 대신 고무나무, 서양난, 금전수 등 한 달에 한 번씩 관리해도 잘 사는 식물들로 구비해 두면 된다. (이 친구들은 오히려 우울증인 당신의 곁에 있을 때 잘 자랄 확률이 높다. 과습이 쥐약인 식물들이다. 죽어간다 싶을 때 물 한 번씩 주는 게 이 친구들의 생장에 오히려 좋다.)


우울하다면 이런 식으로 어쩔 수 없이 살림을 하게 만드는 상황을 만드는 게 첫 번째다.






3. 하지만 안다. 그래도 귀찮은 거. 그래서, 최대한 사소한 청소를 습관화를 한다.


옷이야, 설거지야, 밀리면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화장실 청소, 집안 청소는 미룬다면 한도 끝도 없이 미룰 수 있는 것들이다. 집안의 물건이 적으니 일주일 정도는 제대로 청소를 하지 않아도, 엄청 지저분하게 보이진 않는다. 그래서, 실제로 나 또한 집안을 본격적으로 청소하는 건 일주일에 한 번씩 한다. 머리카락 정도야 그냥 무시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기간이 길어지면 청소의 답은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장대형 돌돌이를 추천한다.

(돌돌이 말고, 최근 유명해진 살림템 쓰리잘비도 나름 괜찮은데 돌돌이를 더 추천한다)


갑자기 무슨 말이냐 싶을 거다. 하지만 우울증인 사람들은 한 번씩 겪어봤을 거다. 청소기가 정말 무겁게 느껴지는 현상을. 그냥 청소기를 들고 방을 쓱쓱 미는데 한숨이 픽픽 나온다. 그리고 청소기도 사실 관리를 해줘야 한다. 그걸 생각하면 또 한숨이 나온다.


그래서, 돌돌이를 추천하는 거다. 쓱 떼서 버리면 된다. 그러니까 돌돌이를 침대 옆에 두고 자라.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면 쓱 방을 한번 긁으며 물을 마시러 가면 된다. 빗자루는 정수기 옆에 두던지, 하면 된다. 자기 전에 물 한 컵 정도는 마시지 않는가? 그때, 빗자루나 돌돌이를 들고 다시 침대 옆에 두면 된다. 꼼꼼하게 할 생각 마라. 그럼 습관이 아니라 짐이 된다.


즉, 최대한 당신이 청소라는 걸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청소를 당신의 삶에 침투시켜라.


욕실청소도 마찬가지다. 샤워하고 물기를 정리하는 도구로 한번 슥슥 긁어주는 습관을 가지면 된다. 머리카락도 샤워 시 물에 흘려보내지 말고 손으로 머리를 한번 빗어서 그때그때 휴지통에 버리면 된다. 그럼 일주일마다 한 번씩 하는 청소에 그렇게 공을 들이지 않아도 된다. 일주일마다 하는 청소도 대충 하고 싶다면 세제 적당히 뿌려서 샤워 끝낼 때마다 물을 뿌려주거나, 건식으로 쓰는 방법도 있다. (물론 화장실 사용 후 건조하기 위한 환기는 필수다)


사실 혼자 있을 땐, 머리카락 일부 어느 정도 떨어져도 된다. 누가 보는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까 대충대충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청소가 버겁지 않게 매일매일 알게 모르게 청소를 해주면 된다는 말이다.


열과 성을 다해 청소를 할 생각은 하지 마라. 특히 머리카락은 당신이 죽을 때까지 빠질 테니까.








4. 최대한 꼼수를 부려라. 열심히 하려는 생각은 버려라.


현실적으로 생각하자. 당신과 나는 우울증이다.


완벽하게 청소를 할 기력도 없으며, 그만큼의 의욕도 없다.


밥 먹는 것도 귀찮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럼 최대한 머리를 쓰면 된다! 밥 먹는 게 귀찮으면 의욕이 날 만한 메뉴를 찾고, 미리 준비를 해둔다. 그것도 귀찮으면 밀키트를 사면 된다. 그것도 귀찮으면 배달, 혹은 배달 후 청소 용기 정리하는 것까지, 귀찮다면 도시락 배달을 시키면 된다. 혹은 방법이 간단한 요리를 미리 준비해 두면 된다.(땅콩버터를 바른 빵 같은 거 말이다.) 반찬을 하기 귀찮으면 주기적으로 반찬가게에서 배달을 시키면 된다. 밥 하는 게 귀찮으면, 밥을 엄청 많이 해서 냉동을 해두면 된다.


이런 식으로 편하게 살림을 하려는 방법을 생각하면 된다. 화장실이나 싱크대에 물 때가 끼는 게 싫다면 물때가 끼지 않도록 물건을 모조리 장안에 넣거나 걸어둔다던지 하면 된다. 거실 바닥청소가 하기 싫으면 나처럼 돌돌이를 이용하던가, 로봇청소기 이모님을 고용하는 방법이 있다.


우리는 최대한 살림을 편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


실제로 여름철이 되면 (겨울철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거의 가스레인지를 켜지 않는다. 모조리 전자레인지와 오븐으로 조리를 끝낸다. 가스레인지와 후드 청소보다 오븐 겸 가스레인지 청소가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최대한 편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라. 우리에게 중요한 건 조금씩 조금씩, 하루가 나아지는 거지, 하루아침에 급변하는 게 아니다.






중증의 우울증에게는 이 말도 힘들다는 건 안다.


하지만 아주 조금씩 조금씩 변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집이 깔끔해지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하루씩 날 잡아서, 하는 살림보단, 이런 살림이 오히려 더 우울증에 도움이 되었다.


이유는 앞에서 말했던 것과 같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면 집이 깔끔해져 있다는 점이다. 양말의 수가 적으니, 양말을 개켜 넣지 않아도 깔끔해 보인다. 옷이 적으니 그냥 옷장에 던져 넣어도 그렇게 어지럽지 않다. 식기의 수가 적으니, 식세기에 넣으면 주방이 깨끗해 보인다. 전자레인지로 요리를 하니, 가스레인지 주변이 더럽지 않다. 트레이에 빈칸이 많으니, 물건을 때려 넣으면 깔끔해 보인다.


이런 식으로 꼼수더라도, 내 눈에는 깨끗해 보이는 살림 방법을 쓰다 보면 어느 날 당신은 '살림'에 재미가 붙게 된다.


그게 중요한 거다. 살림에 재미가 붙는 것.


그러니까, 사는 거에 재미가 붙는 것.


나는 우울하지만, 죽고 싶진 않다. 진짜다. 죽고 싶었던 우울한 시절은 이미 애초에 지나갔다. 이런 살림을 시작한 이후론, 내 삶이 싫어 죽고 싶었던 적은 없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정리에 재미를 들이고 (나는 청결보단 정리를 중요시하는 편이다), 취미 생활을 찾고 (인테리어와 독서다), 그렇게 살다보니 보니 사는 게 나름 꽤 괜찮아졌다. 실제로 우울증이 다시 심해진 것도 내 삶의 문제가 아니라, 갑자기 다가온 사람 때문이었다. 나는 아직 내 삶이 나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취향인 공간이, 나의 조그마한 노력으로 계속 정리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는 것.  


그 성취가 조금씩이지만, 삶에 재미를 붙게 했다. 그래서 이 감각을 여러분들도 느껴보았으면 좋겠다.


이번엔 삶을 가꾸는 가장 작은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내 삶을 타인에게서 지키는 방법을 다음번에 적어보고자 한다.


쉽게 말해 우울증 환자가 써먹었던, '감정 해소'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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