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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ki Jul 09. 2024

나르시시스트를 피하는 방법

그 사람을 이해하려 들지 않아도 괜찮아요.

우울증인 나는, 생각보다 남들을 이해하며 살았다.


말도 안 되는 얘기 같은가?


하지만, 이전 회차의 글 '회피형과 대화하는 방법'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남들을 이해하는 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환경을 바꿀 여력도, 환경을 일굴 힘도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필사적으로 회피형과 불안형을 이해해야 했다.


그리고 이해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솔직히 장점이 더 많다.


왜냐고? 그들을 이해하고 나면, 세상에 일어나는 이유 모를 일 절반 정도는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기게 된다. 게다가 그들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나면, 나를 좀 더 사랑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나중에 한번 제대로 적어보겠지만, 나를 좀 더 사랑하게 되면, 인생이 정말 드라마틱하게 바뀐다.)


정말이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각자 아픈 구석이 있다.

우울증 검사를 하러 가면, 온갖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정장을 입은 사람들, 손에 알코올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을 상대하느라 지친 간호사들, 각자의 불안과 슬픔이 있다. 그 슬픔이 내가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나면, 정말 괜찮아진다.


그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어찌할 수 없는 환경에 의한 불안으로 우울증이 걸린 사람치곤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의사 선생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다. 하지만 경도의 우울이 늘 지속되는 편이라, 주의가 필요했다.


주의가 필요했는데 말이다....


정말 우연찮게 만나고 말았다. 나르시시스트의 기질이 있는 회피형을 말이다. 그것도 친가 쪽의 재산분쟁, 조부상, 어머니의 입원 등등 각종 안 좋은 상황이 몰아치던 순간에.








나르시시스트 기질이 있는 사람이 우울증에 좋지 않은 이유는 별거 없다. 


진짜 의도를 알아차릴 수 없기 때문이다. 회피형은 회피한다는 '의도' 하에 모든 행동과 말이 결정되기 때문에 그 사람의 행동 패턴을 파악할 수 있는 편이다.


그리고 파악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행동을 예측을 해서 사람에게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종의 통제와 예측을 통해, 상대방의 행동을 예측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이고,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멀리하며, 사람에게서 오는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거다.


나는 우울증이지만, 동시에 멘탈이 세다는 말도 많이 들어봤는데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대로 찾았던 이 방법들로, 멘탈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회피형과 대화하는 방법도 이 중에 하나다) 나는 내가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굳이 만들지 않으려 했고, 겪어야 한다면 그 스트레스를 이겨낼 대책을 강구하고 상황에 임했다.


그런데 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이 방법이 먹히지 않았다. 그 사실을 인지했을 땐, 나르시시스트와 멀어질 수도 없었다. 왜냐고? 나를 비롯한 주변을 자신이 원하는 방법으로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걸 왜 몰랐는지 아는가?






1. 나르시시스트는 겉보기엔 정말 완벽한 사람처럼 보인다.


회피형은 완벽한 자신이 있는데, 완벽한 자신이 되지 못한다는 걸 '인지'는 하고 있다. 그 말은 즉, 행동에 일관성은 있다는 거다. 근데 나르시시스트는 다르다.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이 정말로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실제로 나르시시스트가 완벽하지 않다는 거다. 초라한 진실에, 과장을 섞고, 그 과장을 진실처럼 말하다, 끝내 진실이 되어버린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사고방식은 그렇다.


 그래서, 나르시시트는 '인지' 하지 못한다. '인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과장한 자신을 믿는다. 마치 그때그때 상상한 자신이 진실인 것처럼 얘기한다. 문제는 나르시시스트의 상상은, 진실이 일부 가미되어 있기 때문에, 자세히, 그리고 집중해서 듣지 못한다면 진실처럼 들린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영화관에서 어떤 영화를 보았는데,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말했다.


 '내가 만들고 일했던 영화야.' 


되게 멋있어 보이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 사람이 나르시시스트면, 영화 제작과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일을 맡았을 확률이 높다. 방송팀이라거나, 홍보팀이라거나. 방송팀이나 홍보팀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제작사에서 일한 명함만 보여준다. 그럼 당신은 당연히 믿게 된다. 이 사람이 영화 제작 관련 일을 했구나! 즉, 나르시시스트는 쉽게 말해서, 그럴듯해 보이는 거짓말을 한다.


그래서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르시시스트가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친해지려 들거나, 나르시시스트에게 의견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사실, 거짓말을 하는 것에서 끝나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가장 그럴듯하게 상상한 완벽한 자신을 믿고 얘기하는 나르시시스트 특성상, 언젠간 들킬 수밖에 없어진다. '정말 영화 제작한 거 맞아요?' 이런 식으로.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들은 사람들에게서 오는 관심을 놓고 싶지 않아 그래서 그때그때 말을 지어내고, 부풀리고, 수습하려 든다. '맞아요. 근데 A 씨는 원래 사람 말을 쉽게 의심하는 편이에요?'. 그뿐만이던가? 어제는 MBTI가 F였다가, 오늘은 T가 된다. 바뀐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결국, 사람이 종잡을 수 없어진다.


이게 무슨 말인 줄 아는가? 예측은 일종의, 이해다.


즉, 나르시시스트는 평범한 사고방식으로 이해할 수 없단 말이다. 이해할 수 없다는 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말과도 같다.







2. 결국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에게서' 문제를 찾는다.



사실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멀어지면 된다. 그래. 말은 참 쉽다.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을 즈음, 나르시시스트들이 시작하는 게 있다.


바로 가스라이팅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상상한 자신이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진실을 말한다면 회피형에 비해 엄청난 모멸감과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회피형 기질까지 섞여 있다면 자신이 나르시시스트인 사실을 인지한 당신을 없애려 들것이다. 당신만 사라지면 나르시시스트는 가상 속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진실을 알고 있는 당신을 없애는 방법은 2가지다.


온갖 비난과 공격으로 당신이 나르시시스트가 속해 있는 그룹에서 나가게 하거나, 당신을 세뇌시키는 거다.


아마, 후자를 먼저 시작할 것이다. 진실을 알고 있는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나르시시스트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에, 가장 먼저 당신의 생각을 바꾸려 들것이다. 아주 사소하게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당신과 나르시시스트가 소속된 팀이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상급자에게서 프로젝트 피드백을 받았다. 피드백이 좋지 않다. 피드백이 좋지 않은 이유는, 나르시시스트가 맡은 업무가 미숙하여 발생한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신이 물었다.


"그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할까요?"


이럴 경우,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의 질문을 업무가 아닌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한마디로 나르시시스트와 대화가 통하지 않게 된단 말인데, 이 경우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을 따로 불러 몰래 말할 확률이 높다.


"사실, 우리 팀 업무 프로젝트에는 문제가 없었을 거야. 내가 한 업무도 문제가 없었을 거야. 상급자님이 진짜로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예의상 피드백을 한 건데 네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거야. 적당히 무시하고 넘겨도 돼. 상급자님에게 그렇게 잘 보이려 굴 필요 없어."


정상적인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당신을, 감정적이라고 말하며 이상한 취급을 한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만약 나르시시스트가 상급자라면 당신은 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 점을 노린다.


사실 프로젝트의 경우, 문제의 원인이 된 부분을 무시하고 지나가면, 그 부분이 나중에 전혀 다른 문제로 터지기 때문이다. 당신의 업무가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업무가 될 수 있다. 그때가 되어 나르시시스트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남몰래 문제를 수정한다.


결국 결과적으로, 나르시시스트의 말이 옳다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이 상황이 지속되고,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인지가 정확하게 되어있지 않으면, 당신은 나르시시스트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다.


이 상황에 익숙해진 당신은 나르시시스트가 없을 때 당신은 옳은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


당신은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선택을 하도록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으니, 나르시시스트가 없을 때 한 선택이 당연히 옳게 굴러갈 리가 없다. 좋은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마치 머피의 법칙처럼, 당신은 나르시시스트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된단 말이다.






그래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싶을 거다.


그냥 멀어져라. 처음엔 화가 나고 억울해도 따지지 말고, 그냥 조용히 멀어져라. 안정적인 심리 상태를 가지고 있을 때에도 나르시시스트와 대화하는 건 버겁다고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을 인정해 주고, 자신의 말이 옳다고 말해줄 대상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그 대상을 찾고 나서도 소름 끼칠 정도로 인정을 갈구한다.


우울증인 당신이 그 감정을 충족해 줄 수 있겠는가? 그 감정에 맞서 싸울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나르시시스트는 멀어지는 게 상책이다. 게다가 나르시시스트와는 평범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상상 속 자신의 모습을 진짜라고 믿기 때문에 대화할수록 온갖 모순 상황에 도달한다. 결국 당신은 애를 써서, 그때그때 나르시시스트가 생각하는 이미지에 맞춰 대답을 해야 나르시시스트와 대화할 수 있다. 그런 나르시시스트에게 익숙해지면, 당신이 평범한 사회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아니다. 당신은 평범한 말까지 꼬아 듣게 되는 옹졸한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나르시시스트가 원하는 대답을 생각하느라, 골똘히 골몰하는 것 자체로도 온갖 심력을 소모해야 한다.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회피형처럼 추구하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나르시시스트의 앞에선 그 어떤 사람도 진짜 모습으로 있을 수 없다.


그럼 이 나르시시스트를 어떻게 피해야 할까?






나르시시스트를 피하는 방법은 사실 간단하다. 나를 나답게 해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도망치는 것? 처음부터 친해지려는 사람이면 도망치는 것? 아니다. 그냥 겪어보고 느낀 건데 말이다.


세상엔 나를 이해해 줄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야, 당신이 나르시시스트를 만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나는 내가 일부 회피형 기질이 있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생각하는 완벽한 친구, 애인, 혹은 상사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건 없다. 완벽해 보이는 조건과, 완벽해 보이는 만남이 있다면 그건 솔직히 사기다.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한다.


사기의 시작은 대부분 피해자를 '만족' 시키면서 시작된다고 한다. 가장 완벽한 거래는, 모두가 만족하는 거래가 아니라 모두가 불만족스러운 거래로 끝나야, 완벽하다고 한다.


즉, 나르시시스트와의 만남은 일종의 사기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조심하는 방법 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이 괜찮은 사람이 되자.


왜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괜찮은 사람이 나에게 그렇게 쉽게 다가올 거라고 생각하는가? 사실 괜찮은 사람은, 괜찮은 사람에게만 간다. 정서가 안정적인 사람들은 불안형처럼 거절을 허락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회피형처럼 거절을 허락으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괜찮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길 원한다면 나를 위해 존재하는 완벽한 무언가가 있을 거란 생각을 버리고,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도록 해보자.


나르시시스트에게 복수하고 싶다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당신이 멀쩡한 사람이 되어있다면, 어느 날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연락이 흘러들어올 것이다. 혹은 나르시시스트가 과거를 생각하며 당신에게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럼 보인다.


당신이 멋지다고 생각한 나르시시스트가 얼마나 초라해져 있는지.


실제로 난 그랬다.


우울증이 완치된 상태라곤 볼 수 없지만, 그냥 친구들과 가끔 놀고, 밥을 먹고, 여행을 가고, 일을 하고, 평범한 하루를 평범하지만 즐겁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나르시시스트는 진 기분을 느끼는지 멀어진 나에게 자꾸만 확인 차 괜찮냐며 계속 연락을 해왔다. (물론 그 연락을 모두 씹었지만). 그뿐만이던가. 얼마 전 나르시시스트가 회사를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그 회사 사람들에게 들었다. 이유는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혼자 맡았던 프로젝트가, 그야말로 쫄딱 망했고, 그로 인해 쌓여있던 일들이 한 번에 터지면서 회사에 별종으로 소문이 났단다.


그러니까, 그냥 소중한 당신을 위해 인생 대충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최고의 복수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상상한 완벽한 자신을 위해 주변을 악착같이 통제하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간다. 그러니, 당신이 대충 평범하게 산다면 그들이 미쳐버리지 않고 배기겠는가? 그들은 평범한 삶조차도, 통제해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래서 다음 편엔 소중한 당신을 위해, 세상을 대충 살아가는 방법을 하나를 소개하려 한다.


자취경력 10년의 우울증 환자가 말하는,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살림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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