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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9. 2017

영국 남자가 아닌 영국 환자

앤서니 밍겔라-잉글리시 페이션트


<잉글리시 페이션트> 주인공 알마시(레이프 파인스)를 어디서 봤지, 어디서 봤지 기억 날 듯 말 듯했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에 생각났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M. 구스타프였다. 배우의 변신이란 건 대단하구나라고 느끼고 있던 찰나에 <쉰들러 리스트>에서 살인광 나치 대위인 아몬 괴트 역도 랄프 (혹은 레이프) 파인스였다는 걸 알고 순간 오싹했다.



1996년 개봉해 IMF가 터진 1997년에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스리랑카 출신 영국 작가 마이클 온다티에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살짝살짝 책과는 다른 설정이 있긴 하지만 광활한 사막, 알마시의 절규, 한나와 이름 모를 환자의 미묘한 관계를 영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불편함으로 시작한다.  



배경은 2차 세계대전. 한나는 연합군의 간호사로 복무하고 있다. 한나를 포함한 중대가 이동하던 중 지뢰가 터져 자신과 친했던 전우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사고는 안타깝지만 대원들은 추가 폭발을 우려해 모든 움직임을 멈추고 지뢰 제거반이 투입되는데 정신 나간 한나가 갑자기 지뢰밭일지도 모르는 곳으로 걸어간다. 지뢰 제거반 사람이 살살 구슬린 후 겨우 안전지대로 한나를 대피시키는데, 한나가 그곳으로 간 이유는 전우의 군번줄인지 악세사리를 줍기 위해서다. 추가 피해를 생각하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깊은 분노가 일었다.



그리고 한나는 영국 출신 환자의 안전을 위해 무리에서 이탈해버리는데 이게 무슨 당나라 군대인가. 영관급도 아닌 일개 간호병이 자기 멋대로 무리를 이탈해 환자를 돌보겠다고 말하고, 그걸 받아주는 장교를 보면서 역시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 것인지, 원래 체계가 개판인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알고 있는 기본 상식이 뒤틀리는 기분.   


 어쨌든 말괄량이 한나는 버려진 성당에 영국 환자를 돌보기 시작한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인 카라바지오와 함께. 




<잉글리시 페이션트>는 화상으로 인해 볼드모트가 된 이 사나이는 자신의 이름을 모른다. 이름 빼고는 다 안다. 영국군은 이 환자가 영어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영국인이겠거니 생각해 영국 환자(잉글리시 페이션트)라고 기입한다. 심하게 의심스러운 이 환자의 과거 이야기가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주된 이야기다.   


 이 환자의 이름은 알마시. 영국 지리학회 연구의 일원으로 사막의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친구인 매덕스 등과 함께 사막에서 일한다. 그러던 중 영국 정부의 후원금과 제프리, 캐서린 부부가 합류한다. 저녁에 모임에서 캐서린의 이야기는 이 영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암시한다. 



캐서린은 알마시에, 알마시는 캐서린에 호감을 느끼지만 알마시의 성격, 유부녀인 캐서린의 상황 때문에 탐색전만 벌이다가 결국 둘은 사랑에 빠져버린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했던가. 제프리는 둘이 불륜을 저지르는 것을 알아챈다. 그런데 둘은 전혀 죄책감이 없다. 심지어 캐서린은 아직도 제프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보면 우정과 사랑을 확실히 다른 감정인 듯싶다. (제프리는 어렸을 때부터 캐서린과 알고 지낸 사이다.)


(불쌍한 킹스맨)


제프리는 알마시에게 복수하기 위해 캐서린과 함께 경비행기에 탄 후 자라니처럼 알마시에게 돌진한다. 알마시는 무사히 피했지만 제프리는 즉사하고 캐서린은 중상을 입는다. 불행히도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알마시는 캐서린을 자신이 발견한 알타미라 동굴 같은 곳으로 옮긴다. 그리고 캐서린에게 조금만 기다리라고, 의사와 차를 끌고 오겠다고 약속한다. 캐서린은 자신을 이런 곳에서 죽게 만들지 말라고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둘은 헤어진다.



3일 밤낮을 걸어서 마을로 도착한 알마시는 영국군에게 자동차와 의사를 요구한다. 여자가 죽어가고 있다고. 그러나 때는 2차 세계대전. 신분이 불분명한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순 없다. 게다가 알마시라는 이름은 영국 이름이 아니다. 독일의 첩자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영국군은 그를 체포한다.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막기 위해 알마시는 탈출한 후 독일 군에게 자신이 만든 지도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비행기 한 대를 얻는다. 비행기를 타고 알타미라 동굴로 향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싸늘한 캐서린의 육체와 그가 쓴 편지가 전부였다.



그녀를 안고 동굴을 나와 울부짖는 알마시의 절규는 음소거 처리해 관객의 감정을 더욱 흔든다. 그리고 캐서린을 그녀의 바람대로 묻어주기 위해 비행기를 타다가 기체 이상으로 비행기가 폭발해 알마시는 화상을 입게 된 것이다.   


사실 카라바지오는 알마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독일군에게 잡혀 엄지 손가락을 잃고 수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복수. 그러나 알마시는 뻔뻔하게 ‘수천 명의 목숨을 어떻게 책임질 거냐’라고 말하는 카라비지오에게 그렇지 않았다면 다른 수천 명이 죽었을 거라고 대답한다. 



개인의 사랑을 위해 2차 세계대전의 원흉인 독일에게 사막 지도를 넘긴 알마시의 행동은 정당하다고 보는 사람은 히틀러를 제외하곤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를 위한 변명을 찾아주고 싶었다.   


들뢰즈는 개인과 국가 간 관계에서 ‘배신’을 불가피한 윤리적 행위로 보았다. 이른바, ‘배신의 윤리’(ethics of betrayal)이다. 반역자 혹은 배신자가 국가 내 규칙과 규범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잠재성을 지닌 긍정적인 인물이 된다. 이것이 배신의 긍정적 측면이다. 알마시가 연합군을 배신하고 독일군에게 사막 지도를 넘겨주는 일은 개별적, 창조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선택이라는 점에서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자 잘 들어봐.)


그리고 들뢰즈는 사람은 국가 권력이나 권위에 편입하지 않는 소수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들뢰즈가 평생 주장했던 탈영토화, 유목적 사유를 위해선 기존 권위 체계에 저항하고 말대꾸할 여유 공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독일도 거대한 국가 권력이지만 적어도 영국처럼 알마시를 옥죄거나 사유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영국은 그를 국가 권력에 편입하려고 했지만 독일군은 그에게 경비행기를 제공해 노마드적 삶을 도와줬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알마시는 영화에서 국적이 어디인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알마시가 속해있는 모임은 사막을 사랑하는 이유로 모인 다국적, 다민족 모임이다. 그에게 국가 권력의 억압은 전쟁만큼 끔찍했을 것이다.   

화상을 입은 알마시는 하루가 다르게 약해진다. 자신이 죽을 때를 안 알마시는 치사량의 모르핀을 놔달라고 한나에게 말없이 부탁한다. 한나는 울면서 알마시의 부탁을 들어주고, 그는 한나에게 캐서린이 자신에게 써준 글을 읽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인도인 중위와 새로운 사랑을 꿈꾸는 한나, 복수를 포기하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카라바지오는 각자의 삶을 위해 떠난다. 



캐서린이 편지를 통해 알마시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린 진정한 국가예요. 강한 자들의 이름으로 지도에 그려진 선이 아니에요." 



고향을 감미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허약한 미숙아이다. 모든 곳을 고향이 라고 느끼는 사람은 이미 상당한 힘을 갖춘 사람이다. 그러나 전 세계를 타향이라고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완벽한 인간이다. 

He whose own homeland is sweet to him is a mere beginner; he to whom every soil is as his native land is already strong; but he to whom the whole world is a place of exile has achieved perfection.     성(聖) 빅토르 휴고의 <학습론>(Didascalicon) 


누구의 소유도 아닌 사막이란 공간에서 완벽한 사람을 꿈꿨지만 강대국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목숨을 잃은 연인들의 시대의 아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은 국가와 인종으로 편을 가르고 개성은 묵살하는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사막이란 공간에서 완벽한 사람을 꿈꿨지만 강대국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자신의 목숨을 잃은 연인들의 시대의 아픔.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각기 다른 삶의 방식은 국가와 인종으로 편을 가르고 개성은 묵살하는 시대의 아픔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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