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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Nov 05. 2017

우연과 필연 사이

비카스 스와루프- Q & A (슬럼독 밀리어네어)

이 책은 내가 이등병 때 두 번째로 읽었던 책이다. 첫 번째는 뭐<바보 빅터>란 소설이었는데 그닥 기억에 남지 않았던 반면이 책은 나중에 짬 먹고 시간이 나면 꼭 독후감을 써야지 생각했던 책이었다. 바쁜 이등병 시절에 남은 분량을 읽고 싶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영화도 재밌다고 하는데 아직 보진 못했다.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 기자가 이렇게 묻는다. 

“이 종목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인가요?”  

믿을 수 없는 연기를 선보인 배우에게 평론과 세계 각국에서 이렇게 묻는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무엇입니까?” 

그 종목을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선수에게, 태어났을 때부터 연기 외길을 걸어온 것 같은 배우에게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뭐냐고 물었을 때 한결같이 나오는 대답이 있다. 

“그냥 우연히 시작했어요.”    

그 사람에게 그 직업은 누가 봐도 필연인데 우연이라니. ‘우연과 필연은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일까’란 질문의 답을 나는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상 최대 퀴즈쇼에서 우승한 대가로 체포된 람 모하마드 토머스의 이야기로 구성된 <슬럼독 밀러어네어>는 인생에서 우연의 씨앗이 어떻게 필연으로 발아되는지 잘 보여주는 소설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이고 우리는 그 당연함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사람을 공허 속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예상치도 못한 호재가 그 사람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기도 한다.   


주인공인 람은 아시아 최대 슬럼가의 일자무식 웨이터에 불과하지만, 퀴즈쇼에 참가해 우승을 차지, 억만장자 퀴즈왕이 된다. 퀴즈쇼에 나온 문제들이 람의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들과 관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람은 상금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나간 퀴즈쇼에서 12개의 문제를 12개의 우연으로 풀어내면서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된다. 마치 퀴즈왕이란 운명이 필연적으로 람을 기다린 것처럼 말이다.     

우연들이 겹쳐져 만들어낸 필연은 무서우리만큼 짜릿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비단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우연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우연과 우연이 모여 삶을 이루며 개인의 인생부터 인류의 역사까지 우연에 의해 바뀔 수 있다. 우연히 떨어진 사과에서 필연처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나 기상조건의 악화로 우연히 지나친 곳을 기점으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대항해시대의 수많은 항해가가 이를 입증한다.   

이런 역사적 예를 보자면 우연과 필연이라는 정반대의 개념이 과연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필연은 우연이란 날실과 또 다른 우연의 씨실이 만나서 완성하는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앨리사가 그랬어요.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대로 되지 않는 건 참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 생기잖아요.’라고 말한 빨간 머리 앤처럼 계획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해할 필요가 없다. 이 우연의 물감이 세상을 바꿀 걸작을 만들어낼지 누가 알겠는가?  

우연과 필연의 하모니를 감상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연한 존재인가? 필연적인 존재인가?’    

곧 결론을 내렸다. ‘난 우연한 존재다.’

세상의 모든 행동이나, 결과의 시작은 우연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세상만사가 다 우연인데요, 가치를 부여하면 필연이 되겠지요.   

황순원 <개밥바라기 별> 中    


필연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누군가가 정해놓은 운명이란 게 있다는 뜻이 되고, 운명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아등바등하면서 살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운명이 정해준 길대로 흘러가면 되는 것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면 필연처럼 누군가를 만나고, 어떤 일을 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그것을 우리는 필연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런 필연들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연립 방정식의 해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라는 식의 해는 무수히 많다. 필연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있는 답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슨 숫자를 집어넣든 그에 맞는 Y값이 나온다.  

라는 식의 해도 마찬가지다. 두 식이 연립되지 않고 따로 존재한다면 각각 방정식의 해는 무한하다. 그러나 이 두 식이 연립한다고 생각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X=Y(1)  

 2X=Y(2)  


이 두 식이 연립된다면 이 연립 방정식의 해는 이라는 단 한 가지의 해를 갖게 됩니다. 이를 다시 우연과 필연으로 생각해보면 두 가지 우연이 만나는 교차점을 필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난 것은 우연이다. 내가 어떤 부모님은 만나고, 자아를 형성할 시기에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떤 은사를 만나는 것 모두 우연의 산물이다. 그러나 두 가지(혹은 그 이상) 우연이   물리적으로 동일한 시공간에서 이루어졌을 때, 즉 두 사건이 교차점을 갖게 됐을 때 우리는 그것을 필연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내가 우리 부모님의 아들로 태어난 것, 내가 주변의 사람들과 친구가 된 것은 모두 필연이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이다.   


개개인은 우연한 존재이지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필연적인 존재가 된다. 누군가의 친구, 제자, 사랑이 되는 것은 우연이지만 그때 만난 그 사람과 그런 관계가 되는 것은 필연입니다. 동일한 시간 선상과 공간상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같은 목표를 향한다면 더 빠르게)   

이렇게 보면 어쨌든 우리는 결국 필연적인 존재라는 결말에 이르게 된다.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우연과 필연은 정반대에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론 등을 마주대고 딱 붙어 있다. 우연과 우연이 만나는 그 순간 필연이란 이름으로 세상에선 또 다른 이야기가 탄생한다.   



“넌 아직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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