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으면 부끄러워지는 박완서님의 단편소설

박완서- 나목, 도둑맞은 가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by Dirk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살짝 되다가 잠잠해진 뉴스가 하나 있었다. <달동네 체험> 이런거였는데 왜 우리의 가난이 누군가에게 체험되야하냐, 돈이면 다냐라는 식의 리플이 달리다가 조만간 잠잠해진 기억이 난다. 그 기사에서 박완서님의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단편 소설을 인용했었다. 그런갑다 하면서 지내고 있다가 우연히 작은 도서관에서 박완서님의 단편소설집이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와 기사에 나온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그리고 두 단편 소설을 읽고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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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이라 분량이 많지 않은데, 4문장 당 모르는 단어가 하나씩 있는 거다. 물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1974년, <도둑맞은 가난>은1982년에 발표했기 때문에 지금 쓰는 단어와는 갭이 좀 있겠지만, 그정도 핑계로는 부끄럼움이 가시지 않았다.


지척, 신접살림, 뜨악하다, 일부종사, 종주먹, 양갈보, 드난, 대거리, 서름질, 시척지근, 처연, 우두망찰, 열락, 비로드, 멕기 기술 등등


누군가는 저 단어도 모르냐, 문맥을 파악해서 뜻을 유추해야지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몹시 부끄러웠다. 대충이야 단어가 풍기는 느낌을 아는 것과 뜻을 정확히 아는 건 많이 다르니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주인공이 종로인가 인사동에서 "아노 미나사바, 고찌라 아다리까라 스리니 고주이나사이마세"라고 외치는 명량한 가이드의 말을 듣고 심한 부끄럼움을 느끼는 장면과 <도둑맞은 가난>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가난을 도둑맞은 후 멍하니 생각하는 장면이 백미다.


수오지심이란 수능 과목이 있으면 주인공이 원하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꽤나 생길텐데라는 생각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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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만날 부잣집 도련님이 신부을 숨기고 가난한 집이나 동네에 들어가서 눈맞은 여자를 구해주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였는데, 여기서는 가차없다. 게다가 주인공은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고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넙죽 갈 인물도 아니고 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자존감과 인생의 비전과 염치를 모르는 건 아닌데 부잣님 도련님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짓밟히는 가난한자의 자존심을 보면 좀 마음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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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난 10억을 준다면 만수르의 발가락을 빨거야. 박완서님이 저 글을 썼을 때 보다 돈의 가치와 힘이 더 커진 것일까, 내가 속물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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