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irk Nov 05. 2017

읽으면 부끄러워지는 박완서님의 단편소설

박완서- 나목, 도둑맞은 가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최근에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살짝 되다가 잠잠해진 뉴스가 하나 있었다. <달동네 체험> 이런거였는데 왜 우리의 가난이 누군가에게 체험되야하냐, 돈이면 다냐라는 식의 리플이 달리다가 조만간 잠잠해진 기억이 난다. 그 기사에서 박완서님의 <도둑맞은 가난>이라는 단편 소설을 인용했었다. 그런갑다 하면서 지내고 있다가 우연히 작은 도서관에서 박완서님의 단편소설집이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와 기사에 나온 <도둑맞은 가난>을 읽었다. 그리고 두 단편 소설을 읽고 나는 몹시 부끄러워졌다.


단편소설이라 분량이 많지 않은데, 4문장 당 모르는 단어가 하나씩 있는 거다. 물론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1974년, <도둑맞은 가난>은1982년에 발표했기 때문에 지금 쓰는 단어와는 갭이 좀 있겠지만, 그정도 핑계로는 부끄럼움이 가시지 않았다. 


지척, 신접살림, 뜨악하다, 일부종사, 종주먹, 양갈보, 드난, 대거리, 서름질, 시척지근, 처연, 우두망찰, 열락, 비로드, 멕기 기술 등등 


누군가는 저 단어도 모르냐, 문맥을 파악해서 뜻을 유추해야지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어쨌든 몹시 부끄러웠다. 대충이야 단어가 풍기는 느낌을 아는 것과 뜻을 정확히 아는 건 많이 다르니까.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의 주인공이 종로인가 인사동에서 "아노 미나사바, 고찌라 아다리까라 스리니 고주이나사이마세"라고 외치는 명량한 가이드의 말을 듣고 심한 부끄럼움을 느끼는 장면과 <도둑맞은 가난>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가난을 도둑맞은 후 멍하니 생각하는 장면이 백미다. 


수오지심이란 수능 과목이 있으면 주인공이 원하는 것처럼 '부끄러움을 가르쳐주는 학원'이 꽤나 생길텐데라는 생각 하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만날 부잣집 도련님이 신부을 숨기고 가난한 집이나 동네에 들어가서 눈맞은 여자를 구해주는 신데렐라 스토리가 주였는데, 여기서는 가차없다. 게다가 주인공은 남자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한다고 '감사합니다'를 외치면서 넙죽 갈 인물도 아니고 말이다. 

가난하다고 해서 자존감과 인생의 비전과 염치를 모르는 건 아닌데 부잣님 도련님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면서 짓밟히는 가난한자의 자존심을 보면 좀 마음이 씁쓸하다. 

하지만 난 10억을 준다면 만수르의 발가락을 빨거야. 박완서님이 저 글을 썼을 때 보다 돈의 가치와 힘이 더 커진 것일까, 내가 속물인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문송해서 눈물이 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