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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rk Oct 23. 2017

나는 누구?

스파이크 존즈-존 말코비치 되기



1억 주면 만수르 발가락 빨 수 있어? 에 대한 질문에 


빨지 않을까?  혀 돌려도 돼?  만수르 발가락에 내 혀보다 깨끗할 듯. 손가락은 얼마야? 등등의 답글이 달렸었더랬다. 실제로 그럴진 모르겠지만 (99.9%로 할 거라 믿고 있지만) 진부한 질문이자 재밌는 질문이었다. 


가끔 우리는 상상한다. 커리 연봉이 400억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메시의 주급이 몇 십억이라는 기사를 보고, 비가 김태희와 결혼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커리였다면, 내가 메시라면, 내가 비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진부하지만 재밌는 가정 말이다. 


그럼 선비들은 이야기하겠지. 그건 네가 아닐 수도 있어. 그래도 그렇게 되고 싶어? 


스파이크 존즈의 <존 말코비치 되기>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다. 정체성이 관한 이야기. 진부하지만 지루하진 않은 이야기.




더 이상 네가 아닐 수도 있지만 성공한 인생 존 말코비치가 될 수 있다면 넌 어떻게 할 거야? 


짜잔 난 존 말코비치 안에 들어왔어. 그럼 넌 말코비치야? 크레이그야? 아니면 새로운 존재야?



내가 아님에도 성공한 삶을 선택할 것인가, 찌질한 나로 살아갈 것인가. 


이 문제는 죽음의 공포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내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후세계를 만들고 영혼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죽어도 내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희망을 믿고 싶어서. 


정체성에 대한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은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 주인공인 크레이그는 존 말코비치로 살기로 결정한다. 정확히 말하면 존 말코비치의 명성에 자신의 정체성을 담은 전혀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기로 결정한다. 


보통 이런 영화는 타인의 명성에 잠시 눈이 멀었다가 결국 자신을 사랑하면서 개똥밭에 굴러도 나는 나야 라고 외치면서 끝나야 하는 것 아닌가?



크레이그의 영혼이 말코비치의 육체로 들어가 하는 인형극은 왜 세계의 열광을 받고 진정한 예술이라고 칭송받는데, 크레이그가  크레이그의 육체로 하던 인형극은 왜 지나가던 사람에게 주먹질을 당해야 했는가. 


아무리 앤디 워홀이 "똥을 싸라. 그러면 유명해질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지만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다지만 왜 만수르는 나에게 발가락을 허락하지 않는 것인가. 



PS- <존 말코비치 되기>에 7 2/1층이 나와서 해리포터의 플랫폼 9 3/4 가 생각났다. 따져보니 해리포터가 더 먼저 나왔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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