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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잡러 민수르 Jan 06. 2021

소확행

스무 살에 떠난 세계여행

'소확행'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언제부터였을까. 주변에서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들리기 시작했다. 운동 후 야식으로 먹는 라면 한 봉지에서 느껴지는 소확행, 길을 걷다 마주친 예쁜 해바라기를 바라보며 느끼는 소확행, 퇴근 후 넷플릭스를 보면서 느끼는 소확행. 삶의 회로에 윤활유가 칠해지는 순간을 우리는 소확행이라 칭한다. 그리고  sns에  감정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렇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분할하여 탄생한 신조어. 이는  행복은 누구나 추구하지만 쉽게 잡을 수 없는 목표의 종점이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하루에 평균 300번을 웃는다고 한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서 그 횟수는 점차 줄어들어 성인이 되면 고작 평균 14번을 웃는다고 한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취업 걱정,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푸념을 하는 방향으로 종종 가게 된다. 그러다 말미에는 초등학교 다닐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와 함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이때 화자와 청자 모두 내려갔던 입꼬리를 올리며 그제야 말에 가속이 붙는 경우가 다반사다.


나는 약초 놀이, 딱지치기, 유희왕 카드 모으기, 함정 만들기를 좋아했다. 그 밖에 좋아했던 요소가 정말 많아서 A4용지 앞면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이다. 유치원에서 하원한 후 가장 먼저 했던 건 덕수동 원정대 모임이었다. 동네에 사는 또래 친구들이 모여 하루의 미션을 정한다. 오늘의 미션은 약초 만들기. 주택 단지의 나뭇잎을 뜯어 돌로 내려 찍는다. 그리고 물이 담긴 종이컵에 잎사귀를 넣고 손가락으로 휘젓는다. 그렇게 탄생한 약초물. 이는 덕수 원정대의 생명수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두 번째 미션은 함정 만들기. 이는 덕수동에 침범하는 악당을 물리치기 위함이다. 장소는 빌라 주민을 위해 마련된 배추밭이다. 악당이 출몰하는 저녁 전까지 만들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 땅을 파기 시작한다. 그러다 가끔 100원짜리 동전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일주일 용돈으로 500원을 받던 시절, 엄마에게 용돈 인상을 요구했다가 ''돈 벌기가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데. 땅 파 봐라 돈 나오는지"라는 말에 반박할 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었다.


땅을 파기 위한 연장으로는 소꿉놀이 세트가 주로 쓰였다. 처음에는 쉽게 파이던 땅이 깊이가 깊어질수록 단단함에 막혀버린다. 단단한 땅을 조금씩 뚫을 때마다 쾌감이 몰려온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그 과정에서도 웃음꽃이 가시질 않는다. 1m 정도 팠을까. 키가 가장 큰 친구가 함정 속으로 들어가 본다. 적절한 깊이다. 그 순간 배추밭 주인 아주머니가 고함을 지르며  걸어온다. 악당이 등장한 것이다. 이에 맞춰 덕수 원정대는 빠르게 각자 집으로 흩어진다. 이때가 가장 웃음꽃이 크게 번지는 순간이다.


작은 것 하나에도 웃음꽃이 만개했던 그때의 그 시절을 라오스행 슬리핑 버스에서 떠올려 본다.

2주간의 베트남 여행을 마무리하고 라오스로 향하는 버스에서의 23시간. 포항에서 서울까지의 구간도 길게 느껴져 지루해하던 5시간의 기록을 깨는 순간에 말이다. 배낭여행을 시작하면서 그동안 잊혔던 웃음을 많이 되찾은 듯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 많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인생의 직선 단계를 거쳤지만 행복도는 우하향 곡선을 그렸던 그래프. 힘없이 하강하던 그래프의 머리가 다시 상승한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버스에서 머문 23시간이라는 시간은 생각하기에 따라 교도소 혹은 자유시간의 공간으로 간주되었다.  바깥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점에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타인의 간섭 없이 주어진 좌석에서 편히 쉴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기도 했다.


생애 처음으로 타본 슬리핑 버스의 구조는 신기했다. 좌석이 2층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의자를 150도가량 젖힐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면 베개, 담요, 생수병 1병을 주는데 찝찝함에 발아래 두었다가 이내 접혔던 담요를 펼치기도 했다. 23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5번 정도 휴게실에서 정차했고 운전자는 두 명이었다. 교대근무를 하는 듯했다.  버스에서는 태블릿 pc에 저장해둔  영화를 보거나 옆좌석의 승객과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에서의 23시간은 체감상 일주일처럼 느껴졌다. 창밖을 보며 상념에 빠지기도, 낮잠을 자기도 했지만 버스에서의 시계는 유독 느리게 가는 듯했다. '어쩌면 일상에서는 기계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하루 일과 중 수면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은 각자 신분에 충성하는 시간으로 할애된다. 학생은 공부, 직장인은 회사. 갑작스럽게 바뀐 패턴에 뇌가 적응을 하지 못해 체감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듯했다.


졸음과 독서를 반복하던 찰나에 시선이 과자 봉지로 향했다. 베트남과 작별을 고하며 하루의 양식으로 사 온 과자 두 봉지. 복대 주머니에 있는 동전을 긁어모아 맞바꾼 과자 두 봉지이었다. 아껴먹기 위해 배고픔을 참아야 했던 유혹거리의 입구를 앙칼지게 뜯었다. 그리고 한 움큼 쥐어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과자의 향, 씹을수록 올라가는 입꼬리.


맛있다. 정말 맛있다.


이렇게 오늘의 소확행을 라오스행 슬리핑 버스에서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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