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남자와 한 달간 포옹하기 14. 헤어지고 15일차
나는 원래 남자친구가 회사로 찾아 오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는다. 회사에 있을 때는 예민하고 바쁜 ‘업무 모드’인데, 그 모드 전환이 잘 안 된다. 상사나 동료에게 사적인 면을 보여주는 것도 공사가 뒤섞이는 듯 하다. 그래서 그간 회사로 찾아와 준 연인들에게 그렇게 다정다감하게 대하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기에 내 연인의 회사로 가는 건 최대한 지양한다.
그런 내가 오늘 처음으로 네 회사 앞으로 갔다.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 서비스 출시 전날이라 분명 아주 늦을텐데 어제밤 너의 집에서 잠들어 기다리다 현타가 온 사단이 나고서는 그렇게 기약없이 집에서 기다리지 않기로 다짐했다. 매일 보는 패턴으로 겨우 만들어놨는데 듬성듬성 간격을 두는 것이 싫었다. 이렇게 시나브로 안 봐 버릇하다가 날 안 봐도 괜찮다는 사실을 너가 깨닫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팀 모두 야근을 할테니 시간 맞춰 치킨을 시켜줄까, 커피를 사갈까하다가 당 충전용 마카롱과 에너지 충전용 착즙 주스를 바리바리 사 갔다. 혹시나 회사 사람들이 볼까 싶어 더 빼 입고 갔다. 너가 내게 추워보인다고 한다. (멋 부리고 온 사람에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최대한 대화를 짧게 마치고 돌려 보내려는데 너가-
"오늘은 그냥 가?"
하고 묻는다. 와씨.
내심 좋았지만 회사 앞인데 괜찮겠냐고 되물었다. 사실 내가 모드 전환이 안 되었다. 헤어지고 나서 늘 너의 집에서만 만나다가 갑자기 개방된 공간에서 널 안으려니까 어색했다. 게다가 너 회사니까 너가 불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너가 먼저 제안해주니 안지 않을 이유가 없다. 못 이기는 척 안았다.
집에 가는 길에 카톡을 받았다. 퇴근 통보 문자 외에 다른 용건으로 너가 먼저 연락한 건 헤어지고 처음이었다. 너가 아파서 약 사다주고 나서도 못 받았던 연락이다.
"고마워. 다들 힘들 때라 그런지 엄청 좋아하네ㅎㅎ"
15일차는 한 마디로 혼란스러웠다. 너는 왜 굳이 나를 안아줬을까, ㅎㅎ까지 붙인 이 친근한 카톡은 뭘까. 골똘히 생각하다 내린 결론은, 너가 나를 잘 안다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호의로 희망고문당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내가 점점 극복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좀 더 마음 놓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하는 듯한 느낌이다. 미안하지만, 고마운 것과 감정이 생기는 건 다른 것이다.
나는 매번 너를 만나러 갈 때마다 너가 '미안하지만 오늘까지만 와줬으면 좋겠어'라고 말하는 걸 강박적으로 상상한다.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다. 이 관계는 내가 끝내야 한다. 그러려면 내가 정리를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