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Oct 13.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2부 -3-

평양에 있는 놈들을 쓸어버리지 않는 한 공화국의 인민들은 잘 살수가 없어

12

 김병철은 24사단 사령관 실에서 탁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가늠하려 했다. 조금 전 개성에 온 남한의 수사관놈이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아무래도 이병수를 처내는 것이 어떨지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위험부담을 핑계로 가져가는 이익은 말할 것도 없고 일처리에 대한 불만이 점점 누적되고 있었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노을의 붉은 색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피 냄새가 느껴졌다. 자신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만든 피를 뒤집어 쓴다면  이 건물 전체를 덮어씌울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늦가을 오후가 되자 금세 어두워졌다.


멀리 서쪽 하늘에서 금성이 빛을 내고 있었다.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부관과 함께 강석철이 문을 열고 사령관실로 들어왔다. 부관은 조용히 문을 닫고 집무실을 나갔다. 그는 흑인과 같은 검붉은 얼굴이었고 마치 검은 피를 뒤집어 쓴 듯 보였다. 노을 빛을 뒤로하고 있기에 바로크 풍 화가의 다크사이드 조명이 비춘 것처럼 그의 각진인상은 도드라져보였다. 매끈한 피부는 마치 마네킹을 보는듯 했다. 사람의 온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 기묘한 표정이  얼굴에서 묻어났다. 석철은 왼쪽 얼굴에 칼로 인한 상처가 있었다. 그는 김병철의 탁상위에 있는 핏기가 있는 고깃덩어리를 보고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일은 잘 마무리 했나? 김병철은 강석철을 보며 포크를 내려놓았다. 실수가 없어야 할 거야.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면 다시 남조선 놈들 몰아내고 우리식 사회주의로 가야지. 석철이 너도 공화국에서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할 거 아냐. 판매책은 어떤가? 김판수가 요새 좀 잔머리를 굴리는 것 같은데 여차하면 좀 손을 봐줘. 아무래도 금액에 차이가 있는 것 같아.

 거래가 잘 되는지 물량을 좀 더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보내 준다고는 했는데.

 그런데 금액을 제대로 안 맞춘다는 말이지. 그는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음......당분간 그놈들이 원하는 만큼 보내주는 것은 문제가 없지. 약속한 수익만 보내준다면 말이야. 그는 탁자위에 음식 접시를 옆으로 밀어 놓았다.   

남조선에서 온 수사관이라는 놈은 처리를 한 것이 낫지 않았을까요? 아예 없애 버리는 게 좋은데. 조용히 사고로 처리해도 좋고.  사령관실을 나갔다 들어온 부관이 말했다.

아냐 아냐. 그놈을 없애면 일이 더 시끄러워 질수 있어. 남쪽에서 보냈는데 죽어서 돌아가면 귀찮아지지. 없앤다고 해도 남조선에서 없애는 게 나아. 그놈이 알아낸 건 없을 거야. 제깟 놈이 들쑤셔봐야 겉핥기 밖에 더 하겠어. 이병수는 요새 어떻게 하고 있나? 김병철은 무심한 듯 물었다.

조용합니다. 별다른 움직임은 없고. 서해 산업쪽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송을 위한 물량은 잘 나오고 있습니다.

그놈은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냐. 다만 이병수가 요새 좀 못마땅하게 구는 게 좀 걸려.

강석철은 묵묵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병철이 지시하면 석철은 바로 실행에 옮길 태세였다.

그놈은 언제 밖으로 나오나? 개성시내에서 일을 벌이는 건 좀 위험하고 외각에서 좀 떨어져 있을 때를 노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조만간 다시 한 번 얘기를 하지.

김병철 사령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석철은 갑자기 몸의 한기를 느꼈다. 발작이 다시 시작되는 듯했다. 그의 눈은 붉게 물 들었고 몸을 떨기 시작했다. 강석철은 최근 한번 발작이 시작되면  한 시간정도는 정신을 잃고 꼼짝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의식을 잃는 과정에서 폭력성이 급격하게 증가해 스스로 제어가 되지 않고 그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기도 했다. 최근 그 빈도가 점점 늘어났다. 강석철은 쏜살같이 집무실을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온몸을 비틀며 경련을 하고 있었다. 비명소리와 외마디 고통소리가 화장실 문을 넘어 복도로 물처럼 흘러 넘쳤다. 강석철은 잠시 후 몸을 추스르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괜찮아 졌는가? 의식이 돌아온 듯 그는 원래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네 별 문제 없습니다.

상태가 악화되는 것은 아닌가? 강석철은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목례를 하고 집무실을 나갔다. 부관은 김병철을 바라보며 의심쩍은 눈길로 말을 꺼냈다

저놈을 믿어도 되갔습니까?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놈인데. 혹시 의식을 잃었을 때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이는지도 모르잖습니까?

믿든 안 믿든 간에 그게 뭐가 중요한가. 저들은 내가 지시한 일을 하면 돼. 그게 전부야. 우리는 그렇게 서로 얘기를 했고 저놈이 갈 때가 어디 있갔어? 고난의 행군시절을 우리가 들은 얘기가 뭔 줄 아나? 우리식의 사회주의를 고수하자는 거였지. 그런데 알고 보니 그런 바보 같은 짓이 없었어. 인민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이념이 무슨 소용이야. 평양 놈들은 지 배때기만 채우고 외화만 벌어들여 주머니 불리기에 바빴지. 얼마나 사람이 죽었어? 수 십 만 이야. 그들이 내건 사회주의는 뭐였나 말이야. 저기 고깃덩어리 보이나. 남한 놈들은 저걸 먹는다지. 저 비릿한 핏 냄새를 맡아가며. 내가 혁명을 다시 일으킨 이유를 아나? 저 평양에 있는 놈들을 쓸어버리지 않는 한 공화국의 인민들은 잘 살수가 없어. 평양 놈들이 하는 짓 보면 남조선과 다를 바가 없는 거야. 그들이 먹는 고기가 결국은 인민의 피와 땀인 거지. 흡혈귀 같은 놈들. 김병철은 내뱉듯 중얼거렸다.


 강석철은 집무실 계단을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아직까지 오한과 발작의 여파가 남아 있어서인지 쉽게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오래된 목조건물의 계단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집무실을 올라갈 때 들은 낡은 나무를 밟을 때의 소리. 개성으로 오기 전 강석철은 함경북도 강계군 근처에서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하지만 보급과 배급이 제때 나오지 않았고 작업량은 많았다. 잦은 구타와 학대는 만연했다. 결국 강석철은 정치장교를 폭행하고 부하와 함께 군을 탈출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새로 온 정치장교는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짓을 벌이도록 했다. 이렇게 살 바에 남쪽으로 가자는 얘기를 꺼냈지만 차마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그럴 수는 없었다. 하지만 결국 정치장교는 그를 끝까지 몰아세웠다. 석철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다만 그를 완전히 손보고 내려오지 못한 게 한이었다. 강계에서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은 험난했다. 그들은 능선을 따라 잠시도 쉬지 않고 걸었다. 동굴로 들어가 불을 피우기도 했고 나뭇가지를 모아 잠잘 곳을 만들고 모닥불을 피워 비박을 했다.


근처 야생동물을 잡아먹을 때는 운이 좋은 날이었다. 가끔 민가에 가서 밭작물을 뽑아 먹으며 허기를 버터 낸 것도 여러 번이었다. 양강도를 지나 하루에 산길을 20여 킬로를 걸어 그들은 드디어 함흥 근처 신흥군에 도착했다. 반복된 훈련으로 단련된 몸이었지만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든 여정이었다. 시내에 도착해 이들은 옷을 구해 갈아입었다. 보위부와 사회 안정성의 검문에 걸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함흥시내 장마당에서 이들은 여비를 벌고 굶주림을 채우며 날품을 팔았다. 모임 장소를 정해 정보를 공유하고 이들은 개성을 최종 목적지로 삼았다. 개성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소문을 이들도 듣고 있었고 남조선의 공단이 들어온다는 얘기도 장마당을 통해 얻어들을 수 있었다. 한 달 후 이들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여비가 마련되자 사람을 수소문했다. 개성까지 태워줄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들은 공사지역으로 파견을 떠나는 인력으로 신분을 위조했다. 검문을 통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한 달 여 동안 이들이 모은 여비의 거의 전부가 이 계획을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돈은 아무것도 없었다. 개성에 도착하면 풀뿌리라도 캐 먹어야 할 판이었다. 낡은 군용트럭에 앉아서 강석철은 멍하니 밖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빠르게 멀어져가는 아스팔트를 보며 앞으로 자신에게 펼쳐질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어머니와 동생이 고초를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밤 열시가 넘어 이들은 비밀리에 접선 장소에 도착했다. 이들을 데려다 줄 사람은 전직 사회 안정성 출신이라고 했다. 오래된 인민복 차림에 모자를 썼지만 흰 머리가 군데군데 삐져나와 있었고 모자 사이로 얼핏 날카로운 인상이 드러났지만 권력기관 출신답게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약속된 금액을 확인하고 그는 건조한 말로 타라고 외쳤다. 차량은 털털거리는 엔진소리를 내고 출발하기 시작했다. 한밤중이라 엔진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는 듯 했다. 차량은 전조등을 키고 어둠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산길은 어두컴컴했다.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굽이굽이 돌아나갔다. 마치 장어가 돼 물길을 따라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멀미가 나는 것 같았지만 이들은 꾹 참았다. 두 시간 동안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천으로 된 트럭의 바람막이 사이로 찬 바람이 스며들었다. 석철은 뒷 자석 천막의 지퍼를 열어 밖을 한 번 내다보았다. 컴컴한 암흑만이 눈에 들어왔다. 가끔씩 차량의 전조등에 비치는 앙상한 나무만이 그의 시야에 물체를 넣어 주어 이곳이 현실임을 짐작케 만들었다. 오랫동안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더니 좀이 쑤셨다. 강석철은 잠시 몸을 일으켰다. 출발한지 얼추 세 시간 가까이 되었을 즈음 개성초입인 황해군 쯤에 도착했을 때였다. 굉음과 함께 섬광이 반짝였다. 황급히 천막을 열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분명 총소리와 곡사포 소리처럼 들렸다. 연발 음이 이어졌다.

‘전쟁이다’

일행 중 한명이 소리쳤다. 트럭은 급격하게 멈췄고 이들의 몸은 앞으로 쓸렸다. 잠시후 앞문이 열리고 운전자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뭔 일이가? 혹시 남조선하고 전쟁이라도 하는 건가?  암흑 속 에서 누군가가 말을 꺼냈다.

하늘에서 조명탄이 터졌고  가까운 곳에서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점점 총성과 포탄이 터지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곧이어 강력한 폭발음과 함께 50미터 근처의 계곡에 폭탄이 떨어졌다. 쿠웅하는 폭발음과 함께 개천의 물이 수 십 미터 튀어 올랐고 산 중턱이 무너져 내렸다. 갑작스레 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철의 몸은 앞으로 쏠렸다. 급가속으로 인한 거친 엔진음의 진동이 온몸을 따라 흐르는 듯 했다. 이후 한층 더거대한 폭발소리와 함께 차는 중심을 잃고 좌측으로 기울어졌다. 폭발소리가 커 마치 진공에 빠진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거대한 소리가 고막을 때리자 아무런 소리도 느껴지지 않았다. 차는 왼쪽으로 중심을 잃고 쓰려졌다. 석철 일행은 트럭에서 몸이 겹쳐지며 바닥을 나 뒹굴었다.

이전 11화 [장편소설] 붉은 눈 2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