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Oct 21.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2부 -11-

하지만 그는 권력을 쟁취했어. 투쟁의 승자라고 할까. 전리품은 당연한거야

17

 최연경과 후배기자는 공단관리위원회를 취재하고 로비로 걸어 나왔다. 일정은 순조롭게 마무리 되는 듯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연재기사를 어떤 흐름으로 작성할지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기사의 핵심 인터뷰를 고민하고 있었다.    

 

선배 무슨 생각해요? 후배기자는 연경이 고민하는 듯 보여 슬쩍 말을 꺼냈다.

응. 아무것도 아냐.

내일 제보한 여자를 만나는 생각 때문에 그러죠? 후배는 연경의 고민거리를 눈치 챈 듯 했다. 이번 공단 방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그 때문이라는 것을 김희수 사진기자도 이미 알고 있었다.

내일기사는 내일 고민해 보자. 연경은 그렇게 얘기하고 정문을 나서 차에 올랐다.

잘 마무리 된 거요? 림영수가 퉁명스럽게 말을 꺼냈다.

말 좀 부드럽게 하시면 안돼요? 가이드님은 참.

아니 내가 무슨 말을 세게 했다는 거요? 이곳 사람들은 남조선처럼 낮 간지러운 말은 잘 못하오. 림영수는 슬쩍 웃었다.

자 암튼 취재가 잘 되었다면 나도 기분은 좋은 기라. 이제 다시 호텔로 가면되나? 개성 시내로 가면 내가 좋은 곳으로 한번 데려가 주겠소. 그기 내만 아는 비밀 같은 곳이지. 림영수도 처음 이들을 만났을 때 보다 한결 대하기가 편해진 모습이었다.

일정은 낼까지지?

네 낼 공단 근처 시장에서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한명 진행하고 오후에 월경하면 됩니다. 아, 개성시내의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서해 산업을 한 번 더 들러야 해요.

그래요? 림영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는 공단 방향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이 업체에 대해서 잘 아시오?

의료용품과 약품과 약품 원료와 각종 부자재를 생산하는 기업이죠. 공단에서 가장 매출이 많은 업체이기도 하고요. 국가주도 정책사업을 하는것으로 알아요.

대표가 아는 선배라고 하지 않았소?

네, 그건 왜 물으세요?

사실 내가 안전성에 있을 때 좀 알아본 게 있는데 평판이 그리 좋지는 않았소. 그냥 참고만 하라고 하는 얘기니 뭐, 그리고 깊게 생각하지는 말고. 대표가 아는 사람이라서 얘기하기가 조심스럽구만.

 뭔데요? 그냥 한번 얘기나 해보세요. 연경이 말을 꺼냈다.

 그기 그러니까 말이지. 림영수가 말을 하려는 순간 차는 서해산업에 거의 도착했다.

 그럼 이따가 숙소로 갈 때 영수님이 얘기를 해 주세요. 연경은 오랜만에 선배를 만나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학창시절 추억과 얽힌 이야기를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둘은 차에서 내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경비는 연경과 후배기자를 보고 인사를 했다. 경비는 두 명으로 늘었고 오전에 보았던 경비와는 달랐다. 한눈에 봐도 근육질의 건장한 180에 가까운 큰 키가 눈에 띄었다. 교대 근무자의 체격이 상당히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문을 걸어 들어갔다.

여, 연경이 왔나? 김수필은 집무실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주변에는 서류뭉치들이 쌓여 있었다. 어느새 옷을 갈아입었는지 말끔한 수트 차림이었다.


연경과 후배 기자는 잠시 소파에 앉아서 멀리 보이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산등성이의 일부는 나무가 없어 뿌연 흙이 그대로 보였다. 서쪽부터 서서히 노을이 지기 시작해 산과 하늘이 거의 하나처럼 보였다. 수필은 작업을 마무리 하려는 듯 서둘렀다.

잠깐만 정리 다 됐어. 컴퓨터의 종료 소리가 들리고 그는 연경 쪽으로 걸어왔다.

이야, 그때 그 모습 그대로네 다시 보니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진짜. 나만 세월을 맞았네. 맞았어.

뭔 소리야. 내 얼굴의 주름을 봐. 옆에 있던 후배기자가 거들었다.

선배님은 사내에서도 동안으로 소문났죠.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의 롤모델이기도 해요. 열정이 식을 줄 몰라요. 끊임없이 뭔가를 하시는 분이에요.

연경의 그런 모습은 대학 때도 유명했지. 여학생회도 만들고 말야. 집회에서도 앞에서면 경찰들이 연경을 보느라 다들 정신을 못 차리고는 했지.

아. 다 지난얘기는 왜 그렇게 꺼내. 연경이 말을 막았다.

자자. 일단 자리를 옮겨서 저녁들을 하러가지. 김수필은 그들을 3층의 회의실 비슷한 곳으로 안내했다. 암갈색의 나무로 된 미닫이 문을 열자. 테이블에 열 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호텔의 미니 뷔페처럼 붉은색의 테이블보가 깔려 있었고 차려진 음식과 질이 하나같이 고급졌다.

연경과 후배기자는 차림새에 놀라와 잠시 음식을 살펴보았다.

선배 미쳤어? 아니 여긴 북한 개성 아냐?

내가 좀 까탈스럽잖아. 구하려고 하면 다 구하지 뭐. 이것저것 준비하고 남은 게 있어서 조리사한테 좀 부탁을 했지. 귀한 손님이 계시다고 좀 잘 부탁드린다고. 그러니까 이렇게 해 놓더라고.

아니 이건 너무 황송한데.

부담 갖지 말고 호텔가서 먹지 말고 여기서 먹고 간다고 생각해. 김수필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걸 우리 셋이 다 먹는.....

자. 일단 음식이 식기 전에 간단하게 먹으면서 얘기하자. 그는 대동강 맥주의 병을 따고 연경을 상석으로 안내했다.

개성에 왔으니 대동강 맥주를 마셔봐야지? 아님 류경 소주로?. 그는 둘에게 매주를 한잔씩 따라주었다. 맥주를 두어 잔 먹고 이들은 음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이 십여 년 전의 기억과 추억들을 떠올리자 긴장이 풀어지고 어색한 분위기는 금세 누그러졌다. 후배기자는 연경보다는 술을 자제하고 있었지만 취기는 어느 정도 있어 보였다. 후배가 화장실에 가는 듯 회의실을 나가자 연경은 수필을 보며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선배는 그런데 왜 그때 갑자기 사라졌어? 난 아직도 그 대답을 찾지 못했어. 그때 함께 했었던 사람들 다 군대에 끌려갔고, 진영이 다 붕괴됐지. 준비할 틈도 없었어. 남은 사람들의 열정은 다 사그라들고... 선배가 신촌 사거리에서 잡혀 가고 나서 며칠 뒤 아무 일없이 풀려났어. 우리들은 그때 그렇게 생각했지. 저 사람이 그렇게 풀려날 수 있었던 것은 줄을 잡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거다. 아니면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배신했다. 두 가지였어. 이후 선배는 어느 순간 우리한테 발길을 끊었지.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가 모아둔 비밀스러운 자료들과 활동내역들을 경찰들이 들이닥쳐 압수수색하고 사람들을 다 잡아갔어. 그때 다들 그랬어. 선배가 프락치였을 거라고. 그런데 난 믿지 않았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 선배가 처음 우리를 찾아왔을 때가 생각나. 순수한 얼굴이었지. 김수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취재하는 거야? 수필은 빙긋이 웃었다. 연경아. 내가 왜 운동을 했는지 아니? 수필은 갑자기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난 소심하고 세상일에 관심이 없었어. 그냥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지. 다들 총통의 독재와 민주주의에 대해서 성토를 하더라고 그때 말이지. 그런데 사실 지금에서 하는 말 인데 말야. 총통이 집권 한 게 왜 문제가 되지? 난 도통 그걸 잘 모르겠어. 총통의 통치가 있었던 그때 우리 경제가 얼마나 성장했지? 뭐, 다들 외적인 요인이 좋았다. 국제 유가가 낮았다 세계적인 경제 상황의 도움이었던 아니든 간에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렸지. 결과론적일지도 모르겠지만.    

선배가 그렇게 얘기하니 좀 낯설다. 그 강철같던 사람이. 연경은 갑작스런 그의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무슨말을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내가 선배를 잘 못 보고 있었는지도 몰라. 독재가 나쁘다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고 자신의 권력과 부를 누리려 사회시스템과 신뢰를 무너뜨린 총통의 통치와 독재를 옹호하는 거야?

그게 옹호라고 한다면 나는 독재를 무너뜨리겠다는 치기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며 그것만을 절대적 기준으로 만들어 배타적 태도를 취했던 그들도 자격이 없다고 봐. 수필이 말했다.

아냐 선배, 선배가 못마땅해 하는 그들의  배타적 태도 선민의식과 총통의 독재를 어떻게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어. 그때 일부가 그런 면을 보인적도 있었을 거야. 뭐든 양면은 존재하니까. 하지만 그게 총통의 짓거리에 비하면. 자신의 권력을 위한 총통의 정치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지 알잖아. 대의와 타인을 위해서 희생했던 사람들은 그럼 뭐가 돼. 선배가 여기서 이렇게 큰 업체를 운영하다 보니 아예 사고가 바뀐 거야? 변절했어? 내가 선배를 잘 못 알고 있었네.


연경아, 나는 말야. 변절한 적도 없고. 이런 회사를 내가 꾸려나갈지 상상을 해 본적도 없어. 그냥 이렇게 흘러 온 거라 할까. 내가 그때 그 학생회에 들어간것은 너 때문이었어. 순수했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어리석었다고 해야 할까. 그들의 대의에 나도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지. 하지만 나는 너를 보기 위해서 그곳에 들어갔지. 알고 있었어? 연경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수필은 웃고 있었지만 씁쓸한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나는 몰랐는데. 항상 선배가 뭔가 열심히 하려고 하는 모습은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하하, 그때 너는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항상 있었으니까.

그렇지. 나는 그때...

뭐 이제 와서 다 지난 얘기지만. 수필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내가 전투경찰에 맞아 걷지 못할 때 머리가 터져서 피가 흐를 때 네가 감아주었던 붕대, 나를 부축해 걷도록 해 준 어께의 감촉 그게 그때의 내 전부였지. 나의 정의와 대의는 그런 것이었어. 뭐 비웃어도 좋아. 사실 총통이 누군지. 그가 하는 정책들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반대편들을 억누르는 것도 마땅찮았어. 하지만 그는 그 권력을 쟁취했어. 투쟁의 승자였다고나 할까? 일종의 전리품을 그가 갖고 나눈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 아직도 나한테 너는 일종의 뭐랄까? 가수들이 잘 하는 말 있잖아. 뮤즈같은 느낌? 그는 웃으며 장난치듯 말했다.

헛소리 그만해 선배. 다 늙어서 무슨 뮤즈야. 그때 우리가 그때 같이 잠깐 친했다고 생각했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믿었는데 선배는 그게 아니었네. 나 혼자 착각한 거였어.

아니지 나의 대의는 너였던 거였지. 그것만은 분명해. 언제였던가. 네가 쓴 기사가 처음으로 신문에 나오더라고 조금씩 비중이 커지기 시작 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논조가 바뀌기도 하고. 내 생각에 아마도 너의 의지는 아니었겠지. 누군가가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손본 것처럼 어색한 문맥도 있었고. 정부의 정책이나 유력한 여당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이 드러나는 부분이 특히 그렇더라고. 연경이는 변하지 않았구나 했지. 그 수많은 변절자들 중에서.

잘 봤네. 그건 맞아. 연경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도와주려했어. 네가 언제부터 전면에 나서서 뭔가를 하려 했을 때 후원도 진행하고.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동원했어. 네가 유명 인이 되어 스스로를 지키려고 하는 것도 알았고. 이번에 개성에 취재에 오려고 하는 것도. 개성 공단에서 20대의 여자가 익명으로 제보를 한 것도 알아?

뭐, 선배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연경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그때 후배 사진기자가 연경을 부르며 응접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연경에게 이제 가야 할 것 같다는 눈치를 주고 있었다.    

혹시 선배가 시킨 거야? 나를 여기로 부르기 위해서? 연경은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그 고액의 후원자도 이번기획기사의 핵심인 약에 중독된 미연이도 선배가 만든 거야?

연경아 난 그냥 네가. 그때 최연경은 가방을 들었다.

미안해 선배 이제 그만 가야할 것 같아. 내일 일정도 있고.

연경아.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

아냐. 더 들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선배가 대체 왜? 연경은 그 말을 하고 후배기자를 잡아 끌었다. 업체의 정문근처에 림영수는 운전석에 앉아 잠을 자고 있었다. 차 문을 덜컥 열고 그녀는 뒷 자석에 앉았다.놀란 표정의 림영수가 무슨 일이냐고 따져 물었다. 연경은 다짜고짜 숙소로 가자고 말을 꺼냈다. 아직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탓인지 온몸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뭔 일이 있었나보네. 림영수는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차의 시동을 걸고 철문으로 된 정문을 서서히 빠져 나갔다. 최연경은 아무말 없이 혼자 골똘히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림영수는 연경의 눈치를 보며 천천히 차를 몰았다. 공단을 빠져 나가자 가로등 하나 없는 칠흙 같은 어둠이 덮쳐왔다. 간간히 보이는 길가의 가로수는 팔을 늘어뜨린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고 차를 집어 삼킬 듯 사나워 보였다. 상향등을 켜고 림영수는 차를 몰았다. 연경이 말을 꺼냈다.


림영수 기사님. 서해산업에 대해서 아까 뭐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어떤 거예요?

아 그기요. 뭐 그냥 조사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음 확실하지는 않소. 거 뭣이냐. 공단근처 시장하고 평양이나 함흥 사리원등에 약이 갑자기 좀 퍼졌는데 갑작스레 물량이 증가 한 거요. 그래서 알아보니 저기 공단에서 비밀리에 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얘기와 소문이 돌고 있는 거지. 누군가 대량의 물량을 빼돌린다 뭐 그런 거요. 조사를 하려하는 순간에 그만 둔거고.

약이요? 연경이 놀라 되물었다.

뭐 종류야 많지. 대부분 중국산 동남아 산이었는데 어느새 시장에서 그게 밀려나더라고 그리고 뭐라드라. 영어로 뭐라 하든데. 펜다닐? 펜타닐 뭐 그런 거로 불리더라고. 원래 아편은 여기서 종종 거래됐지. 얼음하고.

 잠깐만요. 차 좀 세워주세요. 연경은 속이 거북한지 손으로 입을 막았다.    

아 왜? 뭐가 불편하오. 그럼 잠깐 바람 좀 쐬시오. 연경은 차에서 내려 길가 수풀로 들어가 먹은 것을 토해 냈다. 잠시 앉아서 찬 바람을 맞으며 정신을 차리려 하고 있었다. 그때 연경의 뒤로 누군가가 다가와 천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 그녀는 자신의 입을 막은 손을 떼려 했지만 완강한 완력에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악악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그녀는 곧 정신을 잃었다. 그녀의 손은 풀숲으로 힘없이 축 쳐져 늘어졌다. 림영수와 후배기자는 그녀를 몇 시간동안 기다렸지만 연경은 돌아오지 않았다. 둘은 근처 곳곳을 샅샅이 뒤졌지만 어디서든 그녀의 모습은 찾을 수가 없었다. 새벽까지 둘은 길가 주변을 수없이 찾으며 돌아다녔다. 후배기자는 언덕에서 굴러 타박상을 입었고 목이 터지도록 연경을 불렀지만 암흑에서 아무런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김희수는 결국 자리에 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연경은 그렇게 갑자기 증발하듯 사라졌다.


이전 19화 [장편소설] 붉은 눈 2부 -1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