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ofs Nov 06. 2024

[장편소설] 붉은 눈 -에필로그-

대한민국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서고 있었다.

에필로그

 석철은 강계군 경계에서 처음으로 군 생활을 했다. 강계위에 만포시가 있었고 그곳은 중국 지안과 맞닿아 있었다. 하급병사 시절 선임병사의 명령으로 석철은 먹을 것이 부족해 나무뿌리와 더덕을 캐러 자주 산으로 올라갔다. 굶주림과 비인간적 대우를 버티고  5년 후 상급병사가 되고 사관교도를 몇 번 다녀왔다. 석철은 상사계급을 달았다. 특임상사는 한 중대에서 거의 1,2 명 정도가 달수 있는 병사로서는 가장 상위 계급이었다. 특임상사는 군에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말과 같았다. 몇 개의 소대를 통솔하는 능력이 필요했고 소대원들의 존경도 받았다. 특임상사가 된지 1년이 지나고 석철은 제대를 곧 앞두고 있었다. 그는 군 내부에서의 평판도 좋았다. 비리에 연루된 적도 없었다. 관행처럼 국경지역에서 누구다 다 하는 밀무역의 뒤를 봐주고 작은 이익을 취하거나 이권을 노리지도 않았다.


 일부 장교들은 그에게 군에 남아 있기를 권했다. 석철은 무술실력이 뛰어났다. 반복된 실전 훈련으로 능력을 키웠다. 일부는 그에게 무술사범으로서 장교 복부를 추천하기도 했다. 그 시기에 국경 대량 탈북사태가 발생했다. 당에서는 이를 심각한 상황으로 보았다. 탈북은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이번처럼 수 십명이 조직적으로 한꺼번에 두만강을 넘나들고 그 과정에 군이 조직적으로 이들의 탈북을 묵임 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석철의 부대에도 비상이 떨어졌다석철의 소대도 국경강화 임무에 투입됐다. 여기에 새로운 정치장교가 부임했고 부대는 벌집을 쑤신 듯 시끄러웠다. 정치장교는 인민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다며 석철의 부대를 몰아세웠다. 석철은 6개월이 넘도록 정치장교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봄철이 가까워오자 반동분자를 차단해야 한다는 이유로 국경수비대의 인원 교체를 상부에 올리기도 했다. 이후 국경경비업무는 계속 바뀌었다. 석철은 그날 소대인원과 함께 야간 경비를 서고 있었다. 시간은 10시가 넘었고 특이한 점은 없었다. 부대원들은 석철에게 상황을 보고 했다. 밤 12시가 넘어 정치장교는 경비소대의 복부를 감시하러 방문했다.


아무 이상이 없는가? 경비 업무는 철저해야 할 거야. 그는 무심한 말투로 소리쳤다. 석철을 비롯한 경비소대는 일제히 대답했다. 하지만 소대원들도 새로운 정치장교의 융통성 없는 대처에 불만들이 많았다. 이곳에서 5년이 넘게 복무한 이들도 있었고 석철은 사관교도를 포함하면 이곳에서 8년 이상을 있었다. 상황을 알아도 자신들이 더 잘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무조건 당의 지침을 따르라는 말만 반복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석철은 사병들이 불만을 제기하면 자제를 시켰다. 병들은 석철을 존중하기에 가급적 그 앞에서는 말조심을 했다. 당의 지침은 명령의 거부하면 무조건 사살하라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경비지역을 돌아보고 있었다. 석철은 그를 보좌하며 하급병사 그리고 초급병사 2명 그리고 리호영 상급병사 10여명 함께 걷고 있었다. 이들이 탈북의 주요지역인 두만강 국경 근처를 순찰하고 있을 때 강어귀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됐다.


조명을 밝히라. 정치장교가 말했다. 그는 무전으로 경비초소에 위치를 알렸다.

저건 뭔가? 일가족으로 보이는 대 여섯 명이 보트 같은 부유물을 잡고 강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막아야지. 정치 장교가 소리쳤다. 이들은 확성기로 탈북하면 사살하겠다고 말을 꺼냈다. 돌아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들은 앞으로 계속 나아갈 뿐이었다.

총을 가져오라. 정치장교가 옆에 서 있던 리호영의 총을 빼앗아 탈북가족을 조준하고 있었다. 석철은 그를 말리려 하고 있었다.

대좌동지 이미 너무 벗어나 있습니다. 석철이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들은 척을 하지 않고 가족을 향해 조준 사격을 하고 있었다. 타타타 하는 총격음이 들렸다. 아직은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열 살쯤 된 아이 두 명이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시 정치 장교의 조준 사격이 이어졌다.

안 돼. 석철이 그의 총을 잡고 들어 올렸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죽고 싶어? 명령 불복종은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특임 상사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어. 그는 개머리판으로 석철의 가슴을 때렸다. 석철은 정치장교의 왼쪽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그는 다시 조준사격을 했다. 석철은 일어나 다시 그의 총을 잡았다.

저 가족이 죽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슨 잘못이 있습네까?

 정치장교는 그의 말을 무시하고 다시 총을 쏘았다. 석철이 그의 총을 빼앗으려하자 보트 옆으로 총격이 가해졌다. 타다닥 소리와 함께 흰 보말이 튀어 올랐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높은 음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울부짖는 소리가 강가 근처까지 들렸다.    

저것들도 마저 못가도록 해야지. 그는 나머지 인원에게도 조준사격을 가했다. 잠시 후 수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없어졌다. 어둠속에서 조명이 멀리 물에 뜬 고무튜브만을 비추고 있었다. 보트는 물결을 따라 왼쪽으로 두둥실 떠내려가고 있었다.

얘기해서 사체를 처리 하라우. 그는 병사들에게 말했다.

석철 동무는 명령 불복 죄와 경비임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정치 장교는 통보하듯 말하고 자리를 떠 버렸다. 석철은 더 이상 버틸수 없었다. 정치장교는 석철에게 부대에서 벌어진 불법 관행에대한 모든 죄를 덮어 씌웠다. 당시 보위 사령부가 보위부로 개편되고 수사부가 확대되기 시작할 때였다. 석철은 본보기가 되어야 했다. 부대에 조사부원들이 들이 닥쳤다. 석철은 군 영창부로 끌려가 몇 주 만에 복귀할 수 있었다. 그의 외모는 초췌했고 체중은 5kg이상 빠져 보였다. 결국 석철은 몆 주 뒤 부대를 떠날 결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석철은 떠나기 전 모든 사항을 보위부에 보고했다. 하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는 군대 계급과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뒤 보위부에서 석철을 잡아 유치장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심문을 통해 있지도 않은 비리를 대라고 다그쳤다. 뒤에는 정치 장교가 있었다. 며칠을 버티자 이들은 결국 석철을 소대로 돌려보냈다. 유치장에서 풀려난 석철은 몸을 추슬렀다. 시간이 필요했다. 석철이 돌아온 날 그를 괴롭히던 정치 장교는 다시 석철을 몰아세웠다.


한번 만 더 기어오르면 그때는 내가 스스로 목숨을 끊게 해 주갔어. 그는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석철에게 얼굴을 들이댔다. 며칠 후 석철은 야간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는 근무가 끝나자 장교숙소로 이동해 정치장교를 찾았다. 장교 숙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손을 써 두었다. 잠에 빠져 있는 그를 발로 툭툭 쳐 일으켜 세웠다. 공포에 질린 그는 석철이 들이대는 칼을 보고 오줌을 지리고 있었다.

네놈이 여기서 죽으면 어케 될까?

 그에게 군인다움은 없었다. 단지 위태로운 순간 목숨을 구걸하는 비열한 사내만이 그 앞에 있을 뿐이었다. 정치장교는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그는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는 풀썩 쓰려졌다. 동시에 석철은 짐을 챙겨 군 부대의 담벽과 철망을 넘었다. 그때 마주친 게 동식이었다. 둘은 한 밤중에 산길을 뛰었다. 석철은 그렇게 함흥을 거쳐 개성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총통정부는 결국 계엄을 선포했다. 군과 경찰은 주요 도로를 막았고 공포를 서서히 주입했다. 사람들의 모임 자체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려 했다. 하지만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시위를 모두 막지는 못했다. 모든 정보가 통제되는 일이 이제는 불가능했다. 상황을 눈치 챈 일부 군인들은 시민에게 몰래 길을 터 주었다. 틈새가 생기면 사람들은 여지없이 집회를 하고 구호를 외쳤다. 사회시스템이 마비되어 가고 있었다. 김희수 부장과 연희는 승부수를 던졌다. 총통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진행했던 사업들을 심층 리포트 형태로 하나씩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방송은 윗선을 거치지 않고 순식간에 이뤄졌다. 동시에 외신에도 자료를 보냈다. 김연희 기자의 특종보도는 큰 파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키메라 프로젝트>는 그렇게 세상에 숨겨진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는 통치의 효율을 위해 의식을 통제하고 인체실험을 자행했으며 젊은 경찰을 도구로 활용에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었다는 부분. 약물과 관련된 규제를 느슨하게만들어 수익을 세수로 확보한 내용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권력의 조직범죄에 대한 수사 요구가 빗발쳤다. 사람들은 방송국으로 몰려가 자리를 지켰다. 기사에서 제기한내용은 빙산의 일부였다.  곧 안보실에서 수행했던공작에 대한 보도가 예고 됐다. 안보실이 APA파견업체를 설립해 시작된 김경섭 박사 사건이 다뤄졌다. 타 방송국도 특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취재에 들어갔다. 며칠 후 주요 언론사 보도국에 투툼한 문서가 배달되었다


 연희는 내용을 확인하고 김판수나 김수필이 의뢰한 것이라고 직감했다. 주요 스포트라이트는 연희에게로 쏠렸다. 차츰 권력의 비리는 속속들이 맨살을 드러내 보였다. 계엄은 유명무실해 지고 있었다. 민간인 사찰과 정치 탄압 수많은 권력형 범죄가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CBN의 경영진과 김희수 부장에게 김연희 기자의 보도를 두고 외압이 들어왔지만 상황을 바꿀 수는 없었다. 보도를 막으려는 압력은 점점 줄어들었고 정보국은 결국 손을 놓았다.  아무도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기 시작했다. 연희는 정엽의 인터뷰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김연희 기자의 인터뷰에 등장해국수본 수사요원으로 권력을 위해 어떤 일들을 했는지를 진술했다. 반향이 일자 그는 곧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연희가 말렸지만 정엽은 그게 최소한의 도리라는 말로 그녀를 설득했다. 그는 자신이 안보실에서 진행했던 작전들을 상세하게 밝혔다. 자료와 함께 내용을 실명으로 공개했다. 처벌을 감수하고 사태에 정면으로 걸어 들어가는 방식을 택했다. 의심의 눈초리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신분을 밝힌 국수본 수사요원의 공개 기자회견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말과 인터뷰 영상은 여러 언어로 번역돼 유튜브에 올라오고 퍼지기 시작했다.


 몇 달 후 최연경 기자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많은 사람들의 그녀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정엽은 묵묵히 방문자들을 지켜보았다. 권력으로 피해를 보거나 누명을 썼던 사람들의 사면 복권과 피해보상 과정도 예정되고 있었다. 몇 달 후 김기림은 독재에 대항했던 정치 지도자로서 추대를 받았다. 그는 ‘해내기 전에는 항상 불가능해 보이기 마련’이라는 넬슨 만델라의 말을인용하며 정치 전면에 나설 것이라 선언했다. 총통 취임 20주년을 맞아 그를 석방한 것이 예상치 못한 나비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여론을 등에 업고 추대된 새로운 사정기관과 수사진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시민들의 추대와 지지로 특별검사가 위촉되었다. 특별검사와 수사팀은 가장 먼저 김수필과 관련된 업체의 사람들과 관계자들부터 수사를 진행하고 점점 윗선으로 수사를 확대해 나갔다. 정엽도 수사에 협조했다. 김주영 경위 사건에 대한 재조사도 예고되었다. 수원은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 명예를 회복시킬 수 있는 기대에 부풀었다.


대한민국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서고 있었다.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재야 세력과 일부 야당세력들은 정치를 재개했다. 총선까지 임시정부가 선거와 행정을 관리하는 것으로 각 분야 대표자들은 합의를 했다. 선거제도와 권력구조의 개편 일정이 속속들이 마련되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시민사회와 함께 개헌을 약속했다. 제 8공화국을 앞두고 있었다. 사회는이해관계의 충돌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활력이 넘쳤다대한민국의 노선이 바뀌고 있었다. 권력의 중심이었던 총통 집무실에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시위가 자주 벌어졌다. 과거 자신의 행적이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사람들은 스스로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총통은 오래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허수아비에 불과했으며 전경호 부총통과 안보실장 김전호가 권력을 행사했다는 사실도 곧 밝혀졌다. 총통 집무실에 쓰레기를 던지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외신은 한국에서 새로운 민주주의가 실험에 들어갔다고 쓰고 있었다. 서울과 개성 그리고 평양과의 관계에 대한 전망을 밝히는 기사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개성의 김병철은 건재했다. 그는 공단 운영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제도와 체제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 중심에는 마르크박사가 있었다. 마르크는 김병철에게 급속하게 경제체제를 바꾸는 것보다 키부츠 형태의 생활공동체를 우선 제안했다. 이후 점진적으로 자본주의 경제체제로의 이행이 필요하다고 했다. 사회 혼란을 줄이고 급속한 체제의 변화가 가져올 위험성과 사람들의 불만을 없애기 위한 시도였다. 김병철은 그의 견해를 따랐다. 개성일대와 개풍군 개평군 연안군 일대는 농업과 경공업분야에서 새로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제도 시행 초기지만 인민들은 김병철과 마르크의 의도를 잘 이해하고 따랐다. 생산량도 증가하고 있었다. 평화의 기대감이 보이자 공단은 더욱 활기를 띄었다. 외자유치도 늘어나고 노동 생산성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평양과의 국지전도 종종 벌어졌지만 사람들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정도였다. 김병철은 마르크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제도를 손보았고,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집단이나 범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다고 선포했다. 개성은 평양과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 체제가 만들어 지는 중이었다. 김병철과 마르크는 체제전환을 위한 준비작업이 이뤄지는 키부츠 농장과 공장을 다니며 사람들을 격려했다. 멀리 붉은 노을의 색채가 뚜렷하게드러났다. 내일은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마르크는 생각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