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눈>은 대체 역사 장르<당신들의 조국>, <높은 성의 사나이>, <비명을 찾아서> 등 처럼 역사적 사건을 기준으로 다른 역사가 진행돼 현재에 이른 상황을 가정했습니다. 지인이 개성공단관리위원회에서 일을 한 적이 있었고 북한과 공단에 관련된 소식들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고요. 10여년전 중간 정도 써 놓은 상태에서 사정이 생겨 글을 쓰지 못했고 2년전쯤 그 파일을 꺼내 처음부터 다시 손을 보고 브런치에 올렸습니다. 이제서야 약속을 지킨것 같네요. 소설은 결국 취향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자신이 선택을 하는 이유는 따로 있더군요. 스티븐 킹이< 유혹하는 글쓰기> 에서 처음 몇 챕터를 읽고 몰입이 되지 않으면 포기한다. 세상에는읽지 못한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 말처럼 자기에게 맞는 작품을 읽는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니까요.
소설은 긴 글을 몰입해서 읽어야 하고 주인공과 감정이입 동화의 과정을 거처야 그 세계속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붉은 눈>은 웹소설로 시작한 작품이 아니라 호흡이 길어 집중력이 더 요구 됩니다. 소설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능동적이 적극적 구매행위와 선택이 필요합니다. 읽는것, 상상하고 동화되고 몰입하는것도 많은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저는 순수와 장르소설의 경계의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잭리처 시리즈도 좋고, 한강의 작품도 대부분 다 읽어 보았고 그 과정에서 취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습니다. 1997, 8년쯤 여수의 사랑이라는 소설집을 읽고 이 작가의 작품은꾸준히 봐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있고 그가 새로운 앨범을 내면 기대와 흥분으로 노래를 들어보는 것과 비슷한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90년대 후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한강은 리퍼런스 중 한명이었습니다. 쓰고 싶은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하다 한동안 생업을 핑계로 스스로 한 약속을 미루고 있기는 했습니다.
한강이 핫하니 덧붙이면 <내 여자의 열매> , <채식주의자> 가 인상깊었고 <소년이 온다>보다 이전 작품들이 좋았습니다. 저는 드라마와 극적구조 잘짜인 서사를 좋아합니다. 강의를 하면 종종 문학이나 독서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하는데 한강열풍이 불지만 작가의 작품이 취향에맞지 않는다면 굳이 스트레스를 받으며 읽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세상에는 즐길거리가 많죠. 제가 올린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고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름은 들어 알고 있지만 거기까지인. 굳이 스트레스 받으며 고전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것이지요.
도서나 문화상품을 구매하게 되면 자신의 비용을 지불한 부분에 기대가 미치지 못했을때 실망감이 들때가 있습니다. 작가는 항상그 부분을 고민해야 해야 합니다. 이 책이 내가 비용을 들여 살 가치가 있는가 하는 질문이죠. 브런치는 유로 플랫폼이 아니라 다행이고 작품과 관련된 피드백에서 스트레스는 덜하겠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작품 하나를 완성해 올리게 되었습니다.긴글 읽어주셔서 감사의말씀을 드립니다.
작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소설의 3요소는 인물, 사건, 배경입니다. <붉은 눈>은대한민국 민주화의 분기점을 1987년 6월 항쟁으로 봤습니다. 대체역사와 관련된 작품에서처럼 가장 중요한 역사적 분기점이 그때인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2차대전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일본과 독일이 승전국이 된것, 대한민국이 일제에서 독립하지 못했다면 아직도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상태로 살아가게 됩니다. 광화문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동상이 있고요. <당신들의 조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됩니다. 2차대전은 서구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되는 모양입니다. 저는 1987년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붉은 눈>은 6월 항쟁이 실패한 대한민국이 배경입니다.
1990년대 이후 독재와권위주의 체제는 시민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부당한 비민주적 권력을 유지하려는데 몰두하지 않았을까. 권력은 필연적으로 스스로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군사독재는 그 모습을 달리해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습니다. 작품 속 ‘국수본’이라는 새로운 권력기구는 통치를 수월하게 하기 위한 장치였죠. <붉은 눈>의 시작은 광장입니다. 마지막도 그곳입니다. 광장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은 석철일행이 남한의 안보실과 협의해 이미 여러번 일어났습니다. 이 작품 서사는 비선형적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후 그 원인과 배경이 이후 서술되고 독자가 추론할수 있도록 배치했습니다.
<붉은 눈>을 완성한 후 20여곳에 투고를 했습니다. 몇몇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최종 미팅까지 갔지만 서로생각하는 부분이 달랐습니다.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우라는 지적 등등 편집자와 다양한 견해차이가 있었습니다. 편집자의 지적은 중요합니다. 분량과 구성 등 작가가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독자의 관점에서 제시해 주니까요. 하지만 작가인 저는 시대적 배경과 사건을 입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인 정엽과 강석철 마르크의 이야기가 번갈아 등장하는 형태가 좋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얼음과 불의노래 <왕좌의 게임>의 형식으로 <붉은 눈>을 쓰려고 했습니다. 정엽이라는 인물만큼 강석철과 마르크박사에게도 일정한 비중을 두고 싶었죠. 각각 상징하는 부분이 다르니까요. 작품속 인물을 통해 북한의 현실 및 갈등하는 인물의 고민이 생생하게 독자에게 체현돼 공감이 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아래는 출판사에 보낸 작품 설명 중 일부 입니다. 한주 정도 쉬고 다음 장편을 올려볼까 합니다. 브런치 같은 비소설 플랫폼에 작품을 연재하는 소설, 창작분야 작가분들에게 힘내라는 말을 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작품이나 기타 다른 문의가 있다면 글을 남겨 주세요.
—————————————————-
그 사회에서는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하는 정책이 만들어지고 마약성분의 진통제 처분이 수월해진다. 동시에 의료보험 제도의 개편 및 사회여러 분야의 민영화도 확대 된다. 광장에는 약에 취한 사람들이 좀비처럼 수없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다. 안보국의 검열과 보도지침으로 언론의 자유는 위축되고 제한된 정보만이 사람들에게 제공된다. 정치적 의사표현을 위한 시위와 집회도 금지된 사회다. 작품 속 권위주의 독재 권력은 자신의 권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공공선을 희생해서라도 그 목적을 이루려 한다. 권력의 입장에서 우선순위는 현재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발적 동의가 없는 권력, 비판과 견제가 부재한 권력은 부패와 권력 투쟁으로 위기를 맞고 사람들은 결국새로운 시대를 준비한다.
변화의 기운은 이미 응축돼 있었다. 특히 변화를 가져오는 인물을 권력의 중심에 있는 국수본 요원으로 설정해 역설적으로 국가와 권력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하려 했다. 작품은 남북한의 특수한 관계에 주목했다. 남한이 권위주의 독재체제가 되었다면 남과 북의 권력은 대칭적 거울형태의 모습을 띌 것이다. 두 집단은 권력구조의 변화가 없는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며 물밑으로 협상하는 전략을 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소설은 개성공단을 공간적 배경으로 두고 북에서도 쿠데타 상황이 발생했으며 이체제에 반기를 든 군부 권력자가 할 수 있는 선택에 주목했다. 그가 꿈꾸는 전혀 다른 사회체제와 사회주의는어떤 모습이며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한국계 외국인 마르크 박사와 쿠데타를 통해 개성에 새로운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김병철 5군단 사령관을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남한의 부패한 비민주적 권력이 사람의 자유를 억압하고, 북한의 절대 권력이 주민의 생존을 위기에 빠뜨린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방식의 대안적사회체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의 상황을 배경으로 장르적 흥미를 위한 극적장치, 한국적 상황에 대한 관심을 한국 문학의 세계화라는 의미에 맞추려 했다. 남북의 대치와 분단, 한국이 성취한 민주주의라는 소재가 의의가 있을 것으로 여겼다. 마지막으로가독성을 고려한 것도 이 작품의 특장점이다. 빠른 전개와 쉽게 읽히는 문체를 목표로 삼았다.
대체 역사 작품은 역사를 다른 방식으로 사고 할 수 있도록 해 주고 현재의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도록 하는 흥미로운 장르임은 분명하다. 이 장르는 주류도 순수문학의 형태도 아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민주화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그 안에서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욕구를 추구하고 해소할까. 그 상황을 작품 속 주인공에 투사해 소설의 형식으로 풀어보려 했다. 권력의 중심에 있고 권력을 위한 일을 하는 국수본 요원, 제한된 언론의 자유 속에서 그 한계를 극복하려 하는 인물을 설정했다. 이들이 숨겨진 비밀에 다가서려는 모습에서 민주주의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로 만들어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