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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 오리 미역국

미역국의 품격은 무엇으로 완성되는가?


자연산 오리미역

오늘은 개업날로 첫 손님들이 오시는 날이라 음식준비.

며칠 시운전을 한다고 했는데 아직도 세팅이 제대로 안 된 주방이라 마음만 급하다.


식사로는 미역국에 자가배합 커리.

미역국은 자연산 오리미역이다. 삼척 신남, 장호 근처에서 채취한 미역이다. 당연히 양식산보단 제법 비싸다.

오리미역이란 무슨 뜻일까? 꽥꽥 오리와는 상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지명도 딱히 아닌 듯 하다. 한 올, 두 올, 할 때의 그 올이 변형된 말이 아닐까 싶다. 


이쯤에서 자연산 우와아 하고 물러나야 장사꾼으로 소질이 있겠으나 사실 미역은 자연산이냐 양식산이냐보다 생김에 따라 쓰임이 다르다는 생각이다. 비싸다곤 했지만 양식산도  두텁고 진한 것은 자연산 이상 비싼 것도 있다. 애초 양식산이라고 무슨 농약비료를 뿌리는 것도 아니니 잘 자란 것은 그만큼 생육환경이 좋은 곳에서 자랐다는 것 뿐.


오리미역은 이것만 그런지 어떤지 모르지만 좀 얇은 편이라 냉국이나 미역무침 같은 것을 하면 좋지만 국을 끓이기엔 썩 좋지는 않다. 좀 더 북쪽으로 화진포 미역이 국용으론 좋아서 앞으론 바꿔볼 예정(나중에 심곡에서 채취한자연산 미역을 발견하고 그쪽을 주로 쓰기로 했다).


참깨그대로 참기름

미역국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바로 참기름.

양평에서 나오는 참깨그대로 순참기름인데 향이 황홀하다.

이걸로 미역을 먼저 볶은 다음에 끓인다.

안 깐 마늘


일종의 미역기름을 먼저 만드는 것이다. 빠질 수 없는 조연은 마늘.

깐마늘은 뭔가를 대량으로 만들어야 할 때를 제외하곤 좋아하지 않는다. 줄기 밑에 옹기종기 붙은 마늘을 한쪽씩 뜯어내서 손톱으로 껍질을 벗긴다. 단단히 알맹이와 밀착된 껍질을 벗길 땐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모습을 드러낸 알맹이의 윤기와 향은 깐마늘과는 비교 불허. 2/3나 절반 분량만 써도 된다. 묵은내가 안 나는 것도 장점.

이렇게 안 깐 마늘을 사면 냉장고 채소칸에서 몇 주 정도는 거뜬하지만 혹시나 남을 것 같으면 뒷뜰에 파종한다.


여담이지만 우리집 뒷뜰은 전에 살던 분이 텃밭으로 쓰던 곳이고 거기에 잡초며 우리가 이런식으로 무계획적으로 심은 것들이 무성히 자라 지금은 가히 춘추전국. 이 숲에서 사는 두꺼비가 세 마리로 늘었다. 그만큼 뭐 먹을 게 있는 생태계라는 뜻이겠지.


자가배합 커리와 오리미역국

미역이 좀 얇은 것의 단점은 오래 끓였을 때 식감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래 못 끓이면 맛이 비는 부분은 다른 단백질로 보충해야 한다. 참기름도 그런 역할을 하지만 기름은 과하면 맛을 망치기도 하고, 비싼 고오급 참기름을 무작정 쓸 수도 없다. 섭미역국 대신으로 홍합살을 넣어봤는데 그걸론 턱없다. 여기 동해안식으로는 가자미를 많이 넣기도 하고 그걸로 충분하지만 역시 쇠고기미역국의 밀도엔 좀 못 미친다.


동해안 다이닝이니 가자미를 쓰는 것을 선호하지만 그 경우엔 가자미를 좀 더 부각시키는 장치가 필요하겠다.

어차피 밥에 따라가는 부차적인 것 정도로 인식되는 국의 위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도 되고.


사실 이런저런 고민 한방에 해결하는 것은 째복과 칼조개 넣고 끓인 미역국이다. 그건 언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


양산의 해인사통의 간장을 넣어서 미역국은 그런대로 맛있게 나왔다. 같이 서브된 것은 자가배합한 커리. 이것도 또 나중에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 이날은 동남아 향신료들이 주문진 오징어를 제대로 못 잡은 형국이라 마음에 썩 들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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