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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예약손님

요리 잘하는 친구집에 놀러 온 것 같아요

어제는 첫 예약손님이 있었다. 개업날 손님들은 다들 지인들이라 손님인 듯 손님 아닌 손님 같은 느낌이고 이 분들은 무료시음 거쳐서 오신 진짜 손님 느낌의 손님들이랄까.


전날 인스타(instagram.com/alteractives) DM으로 미리 예약을 하고 상의를 해서 메뉴는 확정.

술은 충주 댄싱사이더의 스윗마마, 그리고 춘천 감자아일랜드의 토마토로를 직접 들고 오시는 걸로 예약 전 확정. 얼터렉티브 살롱은 한국술 전문점이니만큼 콜키지는 기본적으로 무료다(다른 전문점께 민폐 죄송합니다 ㅠ). 단, 주인장이 안 마셔본 술이라면 공부 삼아 한 잔 주셔야 한다. 


토마토로 토마토맥주


음식은 두 가지 정도를 원하시기에 전문인 주문진식 감자전과 타마린드 소스의 해산물 커리 및 난을 추천드렸다.


그런데 문제가,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이 감자전은 필히 바삭해야 하고 그러자면 불조절이 생명이다. 바로 그 불조절 노하우가 자랑하는 기술인데 현 업장은 가스불이 아니라 인덕션을 사용한다. 혹시나 싶어서 낮부터 서너 장을 연달아 연습해봤는데 다 실패다. 큰 이유는 인덕션은 가스불과 달리 열판이 있는 곳만 집중적으로 익더라는 것. 그래서 가장자리가 제대로 바삭해질 때쯤이면 가운데는 열판 모양의 시커먼 탄 자리가 생기는 것이다.


이걸 가장자리부터 돌려가며 먼저 굽는 등의 방법을 실험해 보았으나 이 방식으론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데다가 결과물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1인 주방이 아니더라도 감당이 안 되는 방법.



인덕션 감자전은....

그래서 결국 감자전은 실패를 인정하고 다운그레이드 버젼이 나갈 수밖에.

청귤드레싱샐러드

실수에는 항상 서비스 보상.

아삭이 파프리카를 그릇같이 쓰고 자랑하는 청귤드레싱을 발라서 상추와 방풍, 초절임 방울토마토를 속같이 채워 넣은 샐러드를 서비스로 나기로.


강릉은 언제나 상큼해요!

그리고 식전주로는 상큼한 스파클링 레몬주. 이름은 '강릉은 언제나 상큼해요!'라고 붙이기로 했다.


감자전이 좀 덜 바삭해서 원형을 포기하고 조각내어 뒤적뒤적하며 익혔다. 원형으론 두 번 이상 뒤집긴 힘들기 때문. 애초 바삭 상태가 안 되면 한 번도 어렵다.


위에 올리는 오징어젓은 배에서 바로 염장한 오징어를 구해서 1. 레몬청, 큐민씨드, 백후추 등으로 동남아식으로 절인 젓갈과 2. 고춧가루, 마늘, 생강 등을 넣고 한국적으로 절인 것 두 가지. 이 배오징어 절임은 여기 주문진에서도 시장 같은 데서 구하기 쉽지 않고 뱃사람들이나 먹는 것이다. 이유 중 하나는 냄새가 홍어 오리지널급이라는 이유, 또 하나는 어차피 양이 많지도 않다는 것인데 당근마켓에 나오길래 득템한 것이다. 강릉 주문진의 맛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감자전 실패로 은근 패닉이었는지 그 후론 사진도 없다. ㅋ


그 다음으론 타마린드 소스를 기본으로 한 자가배합 커리와 홈메이드 난.

난은 맥주로 발효시켰는데 날이 더운 덕도 있어서 아주 흐뭇한 발효상태.

타마린드 소스는 오늘따라 신맛이 두드러지는 데 향신료 감수성은 매우 뛰어난 분들이지만 이 신맛은 어떨까 싶어 소스만 미리 시식시켜드렸는데 아주 좋다고 하셔서 새우와 관자 투입하고 조리.

타마린드 씨 빼기

난을 굽는 시간이 좀 길어져서 중간엔 방어 초절임(시메부리) 약간을 내어드렸다.

아래 사진에 나온 것은 나 혼자 시식하던 버젼이지만 엿튼 이 음식이다.

방어 초절임

커리와 난은 호평. 아 사진이 아쉽다.


커리까지 요리가 끝나니 나도 살짝 여유가 생겨서 콜키지로 셰어해주신 술들도 같이 하고, 술얘기 음식얘기 사는 얘기도 할 기회가 있었다.

미식평론을 하시는 분이라 아시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으셔서 이야기하는 재미도 있고 한국인 표준으로는 하드코어 할 수 있는 커리와 오징어젓도 즐겁게 드셨다. 감자전의 실패도 너그럽게 이해해주시고 서비스로 나간 음식에선 내가 예상치 못한 패어링 포인트를 알려주기도 하시고.


내친김에 자랑하는 디저트(로코코의사과 참조)까지 내드렸는데 이게 또 히트였던 듯. '바꿀 필요가 없는 디저트'라는 평까지 들었다. 이것도 사진이 없네.


Alteractive Salon의 방침은 손님과 내가 같이 즐거운 추억을 만든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어제 다이닝은 이상적인 첫발이었던 것같다. 최고의 찬사를 받은 느낌은 강릉에서 잘 나간다는 다이닝 레스토랑보다 더 좋핬다는 평가보다도


"요리 잘하는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같아요."


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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