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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손질 쉽게 하기와 방풍죽

쉽게 하면 되는 걸 어렵게들 한다

<자연산 섭>

이것이 섭. 섭이라고 하는 순간 자연산이다. 섭이 진짜 홍합이다. 껍질 맨질한 작은 홍합들과는 사촌지간이지만 크기도 맛도 가격도 확 차이가 난다. 섭은 살아있는 것을 사는 것이 좋다. 죽으면 입을 꽉 다물고 살은 쉽게 썩는다. 냉동을 하면 썩지는 않겠지만, 산지에서 바로 사서 요리해 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여기는 강릉, 요리사에겐 복받은 환경이다.

 

모든 식재료는 손질을 해야 먹을 수 있다. 섭도 그렇다. 손질하려니 부담이 확 들어온다. 거의 굴껍질 방불하게 하는 울퉁불퉁한 표면. 무언가 각질, 물풀들, 더 작은 조개류 같은 것이 단단히 달라붙어 있다. 이걸 어떻게 손질할까? 고민이 될 수도 있겠다.


<이걸 어떻게?>

저 표면에 붙은 것들을 다 어쩌라고? 답은 간단하다. 어쩌지 않으면 된다.

그냥 섭을 마주잡고 대충 비벼서 떨어준다. 물에도 몇 번 헹궈주고. 그러면 끝. 이걸 다 제거하겠다는 건 망상이니까. 어디 유튜브 보니까 남편분에게 이거 손질 시키시는 분 있던데 남편분은 섭 두 개를 맞잡고 하염없이 문데고 계시더라. 그런다고 깔끔히 정리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시나 몰라. 몇 개 손질하다보면 손 부상은 거의 필연적일 듯.


섭 손질 쉽게 하는 방법은 쉽게쉽게 하는 것이다. 껍질에 붙은 것들은 다 바다와 갯바위에서 나온 것으로 먹는다고 그다지 해로울 것 없다. 물론 석회질 같은 것을 먹을 필요는 없다. 


<찬물에 삶기>


섭은 찬물에 삶아야 한다. 섭이 죽으면 입을 굳게 다문다. 그러니 찬물에서 서서히 죽여야(?) 입을 연다. 

뒷편에 칼을 넣으면 어렵지 않게 열 수는 있지만.


<거품 걷어내기>

섭 삶을 때에 한해서 거품은 열심히 걷어내주면 좋다. 섭 표면의 미세한 이물질들이 거품과 같이 떠오른다. 이물질이나 피거품 같은 것이 아니면 거품 굳이 열심히 걷어낼 필요가 없다.

짠 음식에 대한 특이한 취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간도 안 해도 된다. 섭삶은 물은 충분히 간간하다. 아니면 나중에 간을 해도 되니 걱정은 ㄴㄴ.


<육수로 죽 끓이기>

섭 삶은 물로 죽 끓이기. 

섭 끓인 물을 채에 내려서 불순물을 걸러낸다. 단단한 껍질이나 석회질 같은 것이 씹히는 건 곤란하니까. 하지만 고운 채로 거르면 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 채가 못 미더우면 면보를 쓰면 확실하다. 섭 손질을 쉽게 해도 괜찮은 이유다.

섭육수에 밥을 넣는다. 쌀가루로 죽을 쑤는 법도 있지만 약간의 텍스쳐가 있는 죽이 좋으니 밥알을 살린다. 약식 코스의 메인으로 나갈 것이라 너무 환자식 같으면 곤란하기도 하고. 


<수염, 혹은 족사>


여기서 섭 삶은 알맹이를 손질하기. 큰 것은 어른 손바닥만한 거대한 조개지만 알맹이는 약간 과대포장 느낌. 게다가 삶으면 추운날 무슨 알같이 쪼그라 들어서 볼품이 없다. 섭 1Kg을 사면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알맹이를 서너다섯 개 얻게 된다. 


녹색의 수염을 어떻게 손질하는가에 대해 인터넷에 이상한 정보가 많이 돌아다닌다. 

초기 손질 단계에서 가위로 잘라내라느니 잡아당겨 뽑으라니 하는데 전부 답이 아니다. 이건 섭의 근육 조직에서 바로 뻗어나온 분위라 껍질 밖으로 잘라서는 상당한 길이가 남게 된다. 잡아당기다가는 소중한 섭의 살이 뭉터기로 딸려나올 수도 있다. 손질을 안 하자니 섭은 이 수염(족사라고 한다)으로 바위에 단단히 달라붙는 것. 사람이 소화시킬 수 없는 물질이니 반드시 제거해줘야 한다.


이 족사는 껍질을 다 제거한 후에 알맹이를 잡고 칼로 삭 잘라내야 한다. 그래야 로스가 없다. 섭은 이 알맹이만 따지면 무게 단위로 쇠고기 등심보다도 비싸다. 그러니 손톱끝만한 섭의 살이라도 아쉬운 것.


<관자>

그런 의미에서 관자도 열심히 잘라낸다. 칼이든 가위든 이용해서 잘라내면, 아니 긁어내면 된다.


<째복>


그리고 이건 옵션이지만, 째복을 추가한다. 째복은 동해안에서 흔한 조개인데 모르는 사람 눈에는 모시조개로 보인다. 도감에는 그거랑 그거는 다르다고 한다. 째복은 크기도 색깔도 다양해서 뭐라고 딱히 정의하긴 힘들다. 하지만 이 동네에선 어시장 가서 째복 주세요 하면 누구나 안다. 옛날엔 그냥 해변가에 앉아서 모래 파헤쳐 잡았을 정도로 흔했다는데, 요즘은 깊은 물에 들어가 조업해와야 해서 겨울에는 잘 나오지도 않는다. 

겁질은 두껍고 알맹이는 작은 것이 섭과 비슷하지만 국물 낼 때 좋은 조개다.


<방풍죽>

방풍은 풍을 막아준다고 방풍이다. 향만 맡아보아도 무언가 강한 약효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재료는 약이 아니니 약효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가 없겠지만.


강릉사람 허균은 방풍죽을 좋아해서 어디에 가나 현지에서 방풍죽을 끓여먹었던 모양인데 역시 강릉의 방풍만한 것이 없어서 섭섭했다고 한다. 강릉의 방풍죽은 먹으면 3일간 입에서 향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3일은 문필가의 과장이고, 강릉방풍 사랑은 애향심이라고 하겠지만 외지인 출신인 내가 봐도 강릉의 방풍은 다른 지역과는 향이 클라스가 다르다. 이걸 '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대체로 오도함에 가깝다. 텍스쳐도 질기고 향이 강해서 허브에 가깝다. 


죽이 거의 다 된 상태에다 방풍을 넉넉히 넣고 잘 뒤섞어서 뚜껑을 덮고 조금 기다리면 된다. 서빙을 위해 뚜껑을 열면 피어오르는 향을 즐기는 것은 요리사의 특권.


방풍죽의 향은 과연 3일은 아니라도 저녁을 지배하기에는 충분하다. 다만 이 향은 호오가 있고 너무나 강력한지라 방풍을 메인 음식으로 내는 것은 앞으론 자제하려 한다. 손님들 반응은 대체로 반타작 정도. 호오가 갈린다지만 이런 정도 확률이면 주메뉴로 쓰긴 곤란하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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