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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누님 오신 날

감식초를 위한 오마주 

밀양에 사시니 밀양누님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꾸준이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고, 홍천에서 잠시 팬션을 하던 시절에 처음 찾아주셨다. 그후로 한두 해에 한 번씩은 내가 어디에 있던 찾아와 주시는 반가운 분이다. 이번엔 새로 오픈한 가게로 오시마 하신다. 동행한 분도 전에 한 번 뵈었던, 민요 하시는 친구분. 


이번엔 제대로 내가 한 음식을 대접해드릴 최초의 기회다. 


얼터렉티브살롱의 통상적인 예약프로세스에 따라 취향과 기호를 여쭈었더니 대략 그냥 알아서 부탁한다는 정도 대답이시다. '문어스테이크'는 언급을 하셨기에 메인으로 넣기로 하고, 그 다음엔 진짜 알아서 맘대로 준비해야 한다. 예산도 넉넉히 책정해주신 편이다. 이럴 경우가 더 어려운데 이번엔 확실한 테마를 하나 잡았다. 바로 식초.


<청귤드레싱의 파프리카 샐러드>


우선 청귤드레싱에 감식초가 들어간다. 오늘은 평소에 쓰는 붉은 바나나 파프리카가 없어서 녹색 파프리카를 썼다. 청귤드레싱은 짜릿함이 시간차를 두고 밀려오는 것이 자랑하는 고안. 거기에 필수적인 것이 강력하지만 찌르지 않는 신맛의 식초다. 


얼음이 담긴 잔에 든 술은'소금강의 눈'. 소금강의 눈같이 깨끗하고 하얀, 마시는 순간 그런 시각과 촉각까지도 느껴질만큼 서늘하고 맑은 박의 향이다. 이것도 해보니 어린 박을 써야 향이 좋더군. 다행히 이날은 어린 박으로 담근 버젼이고, 지금은 늦여름 박이라 향의 고운 맛은 좀 덜한 편이다.


<참치 그라탕>


'샐러드 다음으론 슾' 이 코스요리의 절차라면, 그런 기분을 내고 싶기도 했다.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슾을 끓이거나 국물요리를 낼 분위기는 아니라(국물은 뒤에 나온다) 그라탕을 하기로. 그라탕에는 홈메이드 그릭요거트와 리코다 치즈를 썼다. 

이 리코타 치즈를 만들 때에도 감식초를 사용했다. 리코타 치즈에서 식초를 무엇을 쓰는가는 기본적으로 치즈의 인상을 결정하는 문제다.


<문어스테이크>


'궁극의 피시케이크' 글에 나오는 문어 스테이크. 

두 분 다 만족도가 있으셨던 듯. 여긴 초를 끼워넣을 여지가 없군. 하지만 초라는 것은 술 이상으로 많이 먹으면 부담이 가는 식재료이기도 해서 줄창 초를 쓸 수는 없기도 하다.


맛있다고는 하시는데 음식을 꽤나 남기셔서 혹 뭔가 입맛에 안 맞으신가 여쭤보니 그게 아니라 요즘 위염이 있어서 많이를 못 드신다고 한다. 그렇다면 식초 음식은 더욱 부담스러우시겠네.


<자연산 섭미역국과 송철국수>


알고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자연산 미역과 섭을 넣어서 담백하게 끓인 국물에 송철국수 탄력 넘치는 중면을 말았다. 간도 담담하게 하고 약간의 참기름과 10시간 넘게 끓인 미역 국물의 녹진함이 속을 달래줄 요리. 그런데 이것도 많이 못드시고 남기시네. 하, 어쩌나...


디저트는 로코코의 사과, 여기에도 식초가 들어간다.  그리고 식초음료 초시원. 둘 다 호평을 받았다.

두 분이 다 술을 드실 수 있게 숙소는 우리집 근처로 추천드리고 내가 대리운전을 맡았다. 음식 다 내고 나서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 그리고 바닷가 길을 따라 차를 몰아 모셔다 드리며 또 이런저런 이야기. 



개업선물로 보내주신 감식초와 감잎차. 감식초는 그전에 주신 것도 잘 쓰고 있는데 사실 이 정도 분량이면 가정에서는 1년에 한 병 쓰기 어렵다. 이 감식초가 새로 온 것이 이전 것보다도 훨씬 좋아서 여기저기 요긴하게 쓰고 있다. 오늘의 주제로 식초를 택했다지만 그런 목적으로 특별히 따로 요리를 구상한 것은 그라탕 하나. 나머지는 원래 해봤고 해왔던 음식들이다. 이 식초를 그만큼 두루두루 요긴하게 잘 쓰고 있다는 말씀. 


메뉴가 늘 바뀌는 원테이블 레스토랑에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요리사의 기술 이상의 능력이 필수적이다. 그 중 하나는 소금, 장류, 식초, 기름 등을 좋은 것을 쓰는 것, 요리사의 '치트키' 들이다. 이 식초는 정식으로 판매하는 것은 아니지만 귀띔해 드리니 위의 연락처로 한 번 문의해보시라. 식초 하나만 바꿔도 요리의 품격이 많이 달라진다. 

감잎차는 소화가 안 될 때 마시면 퍽 효과가 있는 것 같다. 


홍천, 서울, 강릉으로 몇 번이나 찾아주셨는데 정작 밀양에 찾아가 뵌 적이 없네. 밀양이 양조장이고 책방이고 딱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그렇긴 한데, 정말 시간을 내서 한 번 찾아가야겠다. 조만간 꼭 갈께요.



요리를 하다보면 사진을 찍을 정신 같은 것은 없다. 그래서 음식 사진은 찍어주시길 부탁드렸고, 위의 감식초 사진을 제외한 모든 사진들은 모두 밀양누님 제공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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