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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다섯 번째 이야기 가자미식해

단 맛은 없어도 탄산은 있어야 해!


식해를 만들기로 했다. 동해안의 대표음식, 최소 대표 발효음식 정도는 되는 위치다. 어디 식당에 가도 비교적 흔히 밑반찬으로 제공한다. 적당히 달고 새큰한 맛이 특징이다. 내가 이제껏 먹어본 바로는 그렇다. 


나같은 서울사람은 상상도 못할 얘기지만, 여기 동해안 바닷가는 확실히 생선이 흔했던 모양이다. 전혀 부잣집에서 자란 것도 아니지만 가자미나 꽁치를 물리도록 먹어서 이제는 돌아보기도 싫다는 사람들도 봤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서울로 활어차 같은 것이 다니던 시절도 아니고, 가자미 같은 것은 지금도 잡어 취급이라 활어차 태워서 서울 보낼 일도 없는 생선이다(꽁치는 이제 거의 잡히지 않는다). 그러니 우선 어떻게든 많이 먹고, 그래도 남으니 반건조를 시키고, 또 발효식품도 만든다. 발효란 저장을 위한 궁여지책에서 비롯되어 우리의 입맛을 문화적 유전자 수준에서 사로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정석은 가자미, 특히 물가자미를 사서 직접 꾸덕하게 말리는 것이지만 말릴 장소도 만만치 않고(냐옹이들만 좋은 일 켜주긴 싫어서)해서 그냥 반건조한 것을 샀다. 계속 강조하지만 일부 품종을 제외한 가자미는 잡어라 반건한 것도 가격이 제법 헐하다. 만 원이면 식해 만들고 구워먹고 조려먹고 다 할 만큼 살 수 있다.


내장은 이미 처리 되었으니 머리 잘라내고 지느러미 가위로 끊어내고 하면 된다. 


우선 소금을 적당히 뿌려준다. 이미 반쯤 건조된 것이라 소금을 뿌린다고 물이 흥건하게 나오고 하진 않고, 나중에 절임양념이 들어갈 때 간 맞추는 등의 용도.



그리고는 비장의 한영석 누룩. 보통 엿기름을 지만 나는 누룩을 쓰기로 했다. 엿기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 누룩이 더 좋은 맛을 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도 했다.


가자미 무게로는 500그람 정도, 누룩은 3테이블스푼 정도, 통속에서 잘 섞이도록 밀폐용기 뚜껑을 닫고 탈탈 흔들어준다.



본래 이 지역 식해는 조밥을 지어 쓴다고 했다. 아니, 이 지역 강릉은 정확히 모르겠다. 좀 더 북쪽으로 함경도 식은 확실히 드렇다고 한다. 쌀은 귀하고 조는 흔한 것이 강원도에서 함경도에 이르기까지 공통적인 형편이긴 했지만 강릉은 들이 넓어서 조금 예외였을 수도 있다. 엿튼 지금은 보통 쌀보다도, 토종쌀보다도 더 비싼 것이 국산 좁쌀이다.


순좁쌀밥은 지어본 적이 없어서 약간 당황스럽긴 했다. 하지만 너튜브 찾아보니 뭐 크게 다른 것도 없다. 조밥 지을 땐 물 조금 적게 잡는 것 정도가 포인트. 사실 다 삭힐 예정이니 물기가 좀 많은들 어떨까 싶다. 냉장고에서 보기 싫게 웅크리고 있던 간마늘 큐빅을 이참에 처리한다.



설탕 대신 생강청. 

설탕을 쓸 때는 생강을 따로 넣는 것이 좋다. 산뜻한 느낌을 더하기 위해서.



채썬 무는 필수. 이걸 칼로 썰고, 넓적하게도 썰기도 하고 동치미에 들어가는 사이즈로 썰기도 하고 이런 것은 다 취향의 문제. 나는 그냥 편하게 강판에 갈아서 상당히 얇게 나왔다. 이렇게 하면 잘 삭는데, 어찌나 잘 삭는지 거의 눈에 안 띄는 수준. 그건 누룩의 발효효과가 좋은 탓도 있을 것이다.



누룩을 고루 바른 상태. 여기에 모든 양념을 다 넣어서 버무리면 된다.



고추가루도 필수. 비닐이라 잘 안 쓰지만 이번만은 손이 직접 들어가야 해서 간만에 비닐 위생장갑 끼고 힘차게 버무리버무리 했다.



조밥으로만 담근 식해는 다른 곳에선 본 적이 없다. 뭔가 이 상태로도 참 귀여운 느낌.



늦가을의 상온에 며칠 두니 어느 정도 삭은 것 같아서 냉장고로 이동시켰다. 식당에서 먹던 것들과 비교하자면 단 맛은 없고 물기도 적다. 강릉사람이 아닌 나로서는 어떤것이 맛있는 식해인지는 모른다. 그저 좋은 재료로 담았더니 나름 발효는 잘 되었다고 할 수는 있지만.



다음 라운드는 밥식해. 밥식해는 좀 더 남쪽으로 포항에서 많이 담는 방식이다. 확실히 경상도는, 안강들 끼고 있는 포항은 쌀이 좀 흔했었나 싶다. 

이번에도 반건 가자미를 사왔는데 조금 더 작은 것을 사왔다. 같은 만 원에 마릿수가 제법 더 늘어난다. 구워먺고 조려먹으려면 좀 너무 작은데, 식해용으론 이게 한입에 쏙 들어가고 낫다싶다. 뼈를 삭혀야하는 식해에서 가자미 등뼈 너무 굵은 것은 좀 부담도 된다. 시간 두면 삭기는 다 삭지만.



용기는 처음 식해 담었던 것을 비우고 그대로 쓰기로 했다. 나름 발효결과에 만족했기 때문이다.



이번엔 향온곡이다. 앞의 누룩보다 훨씬 더 고오급. 조청만들기에서 엿기름과 같이 써도 된다는 설명도 있다. 



반건 가자미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소금과 누룩 넣고 쉐킷쉐킷. 이번엔 누룩 투하에 손이 훨씬 컸다. 이건 나중에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기도 하다.



쌀은 토종쌀 백팔미다. 이 쌀의 특징은 찹쌀과 현미가 많이 섞여있어서 물양이 조금 달라도 나오는 결과는 비슷하다는 것. 씹기에는 느낌이 비슷비슷해도 물을 많이 잡으면 밥 전체가 머금은 물기는 더 많겠지? 식해용으론 물을 조금 더 잡아서 밥을 지었던 것.


 밥과 누룩은 대놓고 알콜발효 조합이다. 잘 익은 동치미같이 시원하게 탄산이 올라오는 상태가 목표다.



무우, 생강청, 마늘, 고춧가루 등 양념재료는 비슷하다. 다만 쪽파를 좀 잘라넣었다. 그냥, 쪽파가 좀 남아서.


이것도 상온에서 며칠 두었더니 발효가 제법 되었다. 그런데 나름 의도긴 하지만 그 의도보다도, 처음 조식해 보다도 아주 물기가 많다. 무우를 처음보다 좀 더 넣은 것도 있겠지만 역시 밥이, 그것도 향온곡에 잘 삭은 밥이 물기가 엄청 많다.

 

그나저나 이 ㅏㄹ효과정은 재미있다. 단백질 발효가 주가 되겠는데 누룩은 물론이고 엿기름도 단백질 발효에 효과적인 발효제는 아니다. 탄수화물 전용에 가깝다. 어쨌거나, 곡물이 발효되면서 산도 생겨나고, 아니 ㅡ런데 이 산이란 것과 마늘, 생강, 고추 이런 것은 다 발효균 잡는 효과가 있어서, 그래서 술이 안 되는 것이고 그 산이 뼈는 부드럽게 삭혀주는 것인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이 식해란 물건은 참 신기한 발효식품인 것이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드디어 먹어보자고 개봉하는데 새큰한 향과 함께 탄산이 충실히 올라온다. 아, 이거다!



이게 맛있는지 아닌지는 역시 강릉사람들이 판단해줄 문제. 심야식당 기본반찬으로 나갔는데 강릉 토박이분들이 맛있다고 칭찬해 주셨다. 단 한 분도 예외 없이(라고 해봐야 서너 분 정도지만)! 장칼국수 때도 그랬지만 '요즘은 이런 것 못 먹는다'고 하신다. 식당에서 주는 것들이 많이 달아졌다는 평이다.


강릉 토박이 아닌 분들의 반응은 거의 시큰둥 수준이다. 식해라는 음식의 지역성과 역사성, 나름 좋은 재료로 정성스레 만든 음식이라고 강조를 해도 몇 번 젓가락이 오가다가 태반이 남아서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다음 버젼은 좀 더 달게 담긴 했는데, 솔직히 내 입맛에도 원래 버젼이 더 좋다. 식해는 달 필요가 없다. 탄산은 필요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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