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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식당 열한번째 이야기 명이버터 램숄더 스테이크

강릉이주상담소 시작할 겁니다


주문진은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통계로도 그렇지만 통계 이상의 인구 증가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 뭘 보면 아냐하면 수백 세대 아파트(혹은 생활형 숙박) 단지가 지난 삼 년간 연 두세 개 꼴로 들어섰다.  인근의 연곡 사천까지 합하면 그 아파트와 생숙으로만도 인구가 만 단위가 늘었을 것이다...라고 하기엔 집은 사두고 세컨드홈이나 에어비엔비로 활용하는 사람도 많긴 하다. 어쨌거나 그 많은 집들이 비지는 않고 돌아간다는 것은 사람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


그리고 또 한 가지, 대형마트가 새로 들어온다. 주문진에 새로 들어온 마트는 주문집 최대 크기라고 할만 한데다가 개장초기 폭탄세일까지 어우러져서 자주 갈만 하단 생각이 든다. 특히나 세일을 주도하는 정육부는 가격이 너무 싸서 국산이 다른 곳 수입산 고기보다 더 싸게 풀린다. 그래도 고기를 즐겨 먹지 않는 나는 오호 재미있군... 하고 잡채용 한우 홍두께나 한 팩 집어들고 가다가 양고기에 눈이 멈춘다.


주문진은 물론이고 강릉까지 나가도 마트에서 양고기 보기가 쉽지 않다. 서울도 코스트코나 트레이더스 같은 곳이나 가야 보는 양고기가 엄청 싼 가격에 나와있다. 나로선 드믈게도 고기를 가격보고 질러버렸다. 


냉동육 숄더랙. 이게 머튼인지 램인지는 표기가 안 되어있는데, 사이즈 보면 램일 것 같긴 하다(1년 미만 어린양고기가 램). 어쨌거나 냉장고에서 정성스레 저온해동. 냉동고기도 해동만 잘 하면 괜찮다.


오늘은 친구가 오는 날이다. 애매한 시간에 오고 저녁 약속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 끝나고 나면 밥 먹고 가라고 하려고 두 쪽을 준비했다. 


'강릉이주상담소'가 우리가 의논하려는 일이다.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은 열심히 하면 스스로도 잘 될 거라 믿기도 하는 모양인데 내 경험으론 혼자는 '갈아넣기'하고 있는 거고, 잘 된다는 것도 기준이 뭐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우리는 생활의 질과 인생의 행복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라 어디서 상 준다 돈 준다 한들 그런 자금이나 상 주는 단체 눈치보며 인스타용 사업을 하고싶진 않고, 뭔가 내실있는 사업을 위해서는 어쨌거나 여러 사람이 협업을 해야한다는 깨달음에 푹 담궈진 사람들이다.




일단 친구가 오기 전에 양고기 양념부터 해놔야지. 소금은 잘 안 쓰던 허브솔트에 후추 추가.


그리고 버터와 작년 여름에 만들어둔 잘 익은 명이 패스토를 버무리면 시즈닝용 양념 완성. 명이 패스토에 명이 말고도 올리브오일, 약간의 소금, 치즈 등이 다 들어가 있어서 이렇게만 조합해도 상당히 호화로운 시즈닝이다.


친구와 이야기는 잘 되었다. 강릉에 정착한 사람들이 운영하는 공간(얼터렉티브 살롱 포함)을 위주로 투어를 짜고 정착민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를 맺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골자. 강릉이나 다른 곳으로 이주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네트워크이자 진짜 현지 라이프를 접할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강릉에 오는 사람들은 귀향하는 케이스 아니면 다들 약간의 달콤한 환상에 젖어서 오긴 한다. 그런 환상의 단 맛은 쉬이 물리거나 정말 환상적으로 사라지기도 하는데 그 대신 매콤쌉싸름하고 감칠맛 나는 삶을 가꿀 수 있다는 것이 강릉생활의 장점.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느끼기 힘든 '친구되기'가 쉬운 것도 그 중 하나다. 어디 가든 결국 삶은 사람이 중요하다. 우리는 친구가 좋고 필요하면 친구가 되어줄 준비가 되어있다.


날이 추우니 버터가 너무 딱딱해 쿡탑에 잠깐 올려서 녹였다. 뒤적뒤적 잘 섞어서 녹인 다음 양고기 앞뒤로 고루 바르고 키친타올로 덮어둔다. 삼십분 정도면 충분하겠지만 이야기를 하다보니 한 시간 정도 놔뒀네. 문제 될 것은 없다.



프로그램에서 내가 맡은 부분은 역시나 '먹거리'. 


이번에도 시장에서 식재료를 사오면 그걸로 즉석 생 라이브 요리를 접대하는 것. 이런식으로 원하는 요리를 해주는 곳은 거의 없으니 오시는 분마다 다들 기억에 남는 경험이라며 좋아하신다.


이야기가 끝나고 저녁 약속 있냐니 남자친구가 서울에서 오는 시간을 체크해 본다 한다. 나는 시간 맞으면 남친도 같이 밥 먹자고 하고 고기를 굽기 시작한다. 팬에다가 구울 거긴 하지만 가니쉬도 만들고 그레이비도 만들고 하려면 시간이 만만찮게 들어가기 때문에.




양이고 소고 뭐고 간에 이 시즈닝이면 맛이 없으면 요리사가 정말 잘못 하는 거지. 


고기는 원래 맛있는 거고, 그걸 보완해줄 가니쉬와 그레이비를 만든다. 감자와 양파를 썰어서 고기 굽고 남은 기름에 다시 볶는다. 여기에 서양식으론 와인이나 애플사이더 같은 것을 쓰기도 하고, 속편히 워스터셔 소스 같은 걸로 때우기도 하는데 나는 냉장고에서 고히 묵어가고 있던 오미자씨 남은 것을 투하한다. 이렇게 하면 농도 맞춘다고 전분 따로 안 넣어도 되고,  산미와 향이 짱짱한 것이 와인 보다 임팩트가 있다. 물론 그 임팩트는 데우다보면 다 날아가고 아주 미미하게만 남지만.



고기만 먹긴 그러니까 샐러드와 파스타. 비건라구소스로 만든 펜네파스타를 샐러드 위에 올렸다. 무슨 바람인지 색이 예쁜 채소들을 조합해서 보기 좋은 샐러드를 만들었는데 펜네가 다 가렸네 ㅋㅋ. 이것, 한 가지 자랑이라면 사람들이 비건소스인줄 모른다는 것. 부러 치즈도 안 뿌렸다. 친구는 소스가게 해보라는데 그거 신박한 아이템이긴 하다. 소스 위주의 리필샵 같은 생각도 해본다.  


남친은 강릉에 늦게 도착이라서 그냥 둘이 먹기로 했다. 사실 친구가 '강릉이주상담소'로 의기투합하게 된 데는 남친이를 강릉으로 이주시키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라고 한다. 남친은 얼마전 공연(이 친구와 나는 낭독공연도 같이 한 사이다) 때 왔고 뒷풀이도 같이 해서 잠시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무척 번듯한 사람이란 인상이었다.


그래 우리 잘 해서 남친과 행복한 강릉 라이프를 누릴 수 있게 해보자구. 이미 많은 사람들이 강릉으로 와서, 서울과는 다른 환경과 가치관으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같이 했으면 좋겠다. 와일드와일드웨스트건 엘도라도건 멀리 있지 않은 것. 사는 방식을 바꾸면 인생도 사회도 바뀐다. 그 방식을 바꾸자면 속해있는 곳이 변할 필요도 있다. 사람은 서있는 곳 따라서 보는 것이 달라지니까.



양고기는 생각보다 품질이 괜찮다. 연하고 육즙이 적당히 있어서, 냉동티가 거의 안 난다. 흔히 말하는 양고기 냄새도 딱 적당한 정도. 유통 상태가 괜찮은 고기다. 거기에 감자, 양파에 자랑의 명이버터 시즈닝에 오미자막걸리가 들어간 그레이비소스. 친구는 진심으로 칭찬해 주었다. 나도 스스로 만족스럽다.


요즘 드는 고민인데, 역시 음식도 예뻐야 잘 팔린다는 것. 팔리는 음식을 만들자니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데, 예쁘게 만드는 재주가 없는 건 둘째 치고, 보기보다 먹기가 더 좋다 싶으면 외모를 과감히 희생하는 스타일이라 내 음식은 좀처럼 예뻐지질 않는다.


좌우간, 아직도 남은 양고기가 제법 있는데 이걸로 스테이크도 또 하고, 스튜나 커리도 만들고, 수비드도 해보고 해야지. 주문진 ㅇㄷ마트 세일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가서 고기를 확보해야 하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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