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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장, 혹은 소스에 대해서 (feat.나물전)

어떤 음식이 주연이냐 조연이냐, 그것은 감독의 구상에 따라


예전에 이태리에서 요리유학을 하고 돌아온 후배가 가게에 온 적이 있다. 제법 배운티를 내며 거드름을 섞어 하는 말이


"이 가게는 술이 너무 강해서 주인공 같네요."


라더라. 나의 대답은


"술은 뭐 오달수냐? 맨날 조연만 해야해?"


내가 요리보단 술을 먼저 업으로 삼아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술이 주연이냐 조연이냐 혹은 대등한 듀엣이냐 같은 것은 다 감독의 구상에 따라 다르다. 



전과 간장, 혹은 메인 식재료와 소스의 관계도 그러하다.


이것은 봄나물전이다. 강원도의 봄을 듬뿍 실은 봄나물미식회의 한 파트를 담당한 친구. 이 사진은 실제 행사때 음식이 아니라(정신이 없어서 실제 행사 때는 사진도 못 찍는다) 그 전에 연습삼아 스탶밀로 한 것.  미나리, 참나물 같은 것들만 보이는데 실제 행사 때는 취나물이며 부추도 들어갔던 듯. 내가 좋아하는 바삭한 스타일로 잘 구워졌다.



전을 무엇에 찍어먹을 것인가. 세 가지가 차려졌다. 오이를 박아뒀던 된장, 초고추장, 그리고 한가지. 


이 한가지는 꽁치젓갈, 등초유, 어간장, 그리고 달콤한 청의 네가지가 조합되었다. 그리고 약간의 깨. 사실 꽁치젓갈은 내가 싫어하는 부패취(갈치속젓 생각하면 된다) 심한 종류의 젓갈이라 이걸 소비하기 위해서 약간 고육지책을 낸 것인데 의외의 대호평. 


명인의 꽁치젓이 감칠맛 하나는 확실히 폭발시킨다. 거기에 마랴향이 느껴지는 등초유를 조금 넣고 강강으로 솟아오른 맛을 생강청과 어간장으로 사포질을 해준다는 느낌. 그것 참, 어디가서 순한맛 재료는 아닌 생강청과 어간장이 사포역할을 한다니 그 강렬함은 짐작이 갈 것이다. 드시는 분은 뿐만 아니라 김도 저기에 찍어먹는다(근데 목포에서 사온 곱창김이라서 향이 강한 양념장에 찍긴 아쉬운데...). 


전간장은 옛적 장사할 때 쓰던 레시피도 있고, 그냥 좋은 간장에 참기름이나 또로록 떨어뜨려도 괜찮겠지만 그래도 신경써서 배합을 했으니 먹는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긴 원치 않는 것이 요리사의 마음. 적어도 향이 강한 나물전과 개성 강한 양념장은 듀엣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회무침이나 물회 같은 것은 초고추장 얀념맛으로 먹고 순두부도 간장이나 된장 맛으로 먹는 것이 현실이라고 볼 때, 이런 양념장류의 역할은 결코 조연이 아니다. 그게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요리사는 이런 음식들의 역할의 고정관념을 깨는 것만으로도 꽤나 자유도가 높아지는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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