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아찌는 간장이 중요한 거죠 2
주변에 개두릅 농사짓는 분이 계셔서 비오는 날 비까지 맞으며 직접 수확해다 주셨다. 이 귀한 것을 다 데쳐서 먹기엔 역부족이고, 역시 장아찌를 담그기로.
손질할 때는 잘 씻어서 밑동만 잘라내면 된다. 난소화성일 것으로 짐작되는 꽃받침 모양의 저 부분을 싹둑 잘라내면 줄기들은 분리가 쉽게 된다.
귀한 것이니 간장도 역대급 귀함으로 담아본다.
우선 어느 집의 집간장이 메인으로 보디를 잡는다.
이 간장은 밑에 깔린 정도로 적어서 물을 넣고 달달 긁어모아 첨가. 어차피 물도 좀 들어가야 하니까.
간장과 물의 비율은 1:1을 권하는 경우가 많던데, 개인적으론 그보단 조금 적게 잡는 편이다. 장아찌는 짠 맛에 먹는 것이니까.
장아찌 단맛은 생강청으로. 시트러스 계열로 해봤는데 나는 좋지만 호오가 좀 있더라.
초밥용 초인 하쿠쥬. 사실 이게 최고급품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트에서 파는 식초들은 전부 꿇릴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팔각은 달콤쌉싸름한 향, 감기약 느낌, 고기 느낌 중 어느 것으로 나올지 모르는데, 일단 넣자.
캄폿후추가 빠지면 내 장아찌가 아니지.
단맛과 신맛을 첨가하면서 뭔가 부드럽게 중심을 잡아줄 술로는 청명주. 이만하면 진짜 재료는 올스타.
개두릅은 살짝 데친다. 최대 1분 안 넘는다.
물기는 좀 빼주고.
맛을 보니 약간 섭섭한 점이 있다. 들어가는 채소가 씁쓸하니까 단 맛이 좀 더 있어도 좋겠다 싶어서 호주에서 공수된 루밥 비네거 추가. 이 식초는 단맛이 꽤 강해서 식초라기보단 음료 베이스에 가깝다는 정도 느낌이다.
명이는 통째로 밑에다 깐다. 잘라서 넣어도 상관은 없다.
그리고 그 위에 개두릅을 덮는다. 장아찌든 뭐든, 처음에 상온에서 좀 시간을 두고 발효 효과를 내려면 액체 위로 뭔가 올라오면 위험하다.
젖산 박테리아 일부는 상당한 염도와 산도에서도 활동을 하기 때문에 좀 더운듯한 날 밖에 두면 하루이틀 만으로도 상당히 활발히 번식을 한다. 미심쩍으면 뭔가 젖산균주를 좀 투여해도 되겠지만 아마도 일반 요거트에 든 박테리아로는 식초와 간장에 미생물에 대체로 안 좋은 씁쓸한 물질 뿜뿜하는 명이와 개두릅에 버티진 못할 것 같지만.
한 이틀만 밖에 두어도 분명 풍미는 달라진다. 좀 더 둥글해지고 맛이 풍부해진다.
간장 속으로 모두를 밀어넣게 도와주는 다이소에서 산 진공김치통. 이것 없으면 공기 중에 노출된 부분으론 거의 곰팡이 핀다고 봐야한다. 이렇게 한 이틀 두었다가 냉장고로 이관하면 끝. 물론 상온에 계속 보관해도 안 될 것은 없는데 여름이 되면 간장이 이 밀폐용기 위로도 자칫 넘쳐나더라. 발효와 열에 의한 액체의 팽창은 이런 허술한 용기의 틈쯤은 금방 밀어내고 올라온다.
냉장고에 들어간 후부터는 언제든 먹을 수 있다. 결과물은 당연히 호평. 그야 싸구려 간장, 식초, 설탕으로 버무려서 최소한의 발효도 안 거치고 나오는 시판 장아찌와는 비교도 안 된다. 장아찌와 된장, 고추장에 채소 몇 가지만으로도 밥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옛날 사람들 그렇게 먹던 게 꼭 가난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