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짓기에 따라 변화무쌍한 밥맛
한양조는 이름으로 볼 때 한양과 근교에서 재배되었을 것 같은데, 1911~12년 조사된 '조선도품종일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한양의 식민지식 이름인 경성부는 물론이고 전국 어디에서도 이 시점에선 기록된 바가 없다. 그래서 한양조가 한양의 쌀인지는 현재로서는 확실치 않다.
확실한 것은 이 쌀이 진상미로 사용되었다는 자광도와 같이 현미 빛깔이 흑자색이었다는 것. 그래서 한양으로 진상하던 쌀이라 한양조라고 했을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 까락이나 겨의 색은 진하지 않은데 현미만 흑자색이라는 것도 특징이다.
현미를 도정해서 백미를 만들면 개량종 쌀은 하얀 백미가 나오지만 토종쌀은 원래의 색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쌀도 7분도 도정을 해도 핑크빛이 역력한 것이 특징이다.
쌀알의 크기는 작지 않고 조금 기룸한 면도 있다. 씨막걸리에서 나왔던 한양조 막걸리는 핑크빛이 돌면서 은은한 단맛이 있어서 재미있다 느꼈다. 밥을 지으면 어떨까?
처음의 밥짓기는 내 취향대로 물을 살짝 적게 잡았다. 물이 좀 적어도 압력솥 밥짓기니까 그렇게 극단적으로 고두밥이 나올 것은 아니겠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왠 걸. 나온 밥은 안남미와 비슷한 식감이다. 고두밥과 다른 푸슬함이다. 겉으로 보면 윤기가 촉촉해 보이지만 푸슬푸슬 계열의 식감을 숨길 수 없다. 자세히 보면 쌀알이 인디카 정도는 아니지만 길이가 좀 길긴 하다. 국립농업과학원의 자료에 아밀로스 함량이 26~7퍼센트를 찍는 쌀이니까 확실히 인디카적인 성격이 두드러지긴 한다. 밥을 지으니 그런 특징이 더 드러난다. 글쎄, 그렇다고 딱히 인디카 같은 밥이 잘 나온 것도 아니니 이건 잘 한 밥짓기가 아니다.
두 번째는 물을 좀 더 넉넉히 주고 지어본다. 이렇게 하니 적당히 찰진 밥이 나온다. 토종쌀에 공동인 은은한 단맛은 물론이고 구수한 향도 있는 데다가 은은한 핑크빛은 어떻게 지어도, 막걸리를 만들어도 떡을 뽑아도 그 자리를 지킨다. 이런 사랑스런 색이라니.
밥쌀이라는 면에서 보면 물과 불을 조절하기에 따라서 다양한 개성이 나오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인 쌀이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밥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보다 더 뛰어난 쌀이 분명 있는데, 은은하고 고소한 향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엇보다 그 은은한 핑크, 홍분(紅粉)의 느낌을 어찌할거나.
개량종의 개발에도 쓰였다고 하고, 이미 여러 곳의 막걸리 양조장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다.
국립유전자원연구원에 보관된 볍씨를 되살린 것이지만 실은 정확한 내력은 아무도 모른다. 조선도품종일람의 1451종 쌀 이상의 다양한 품종이 있었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것, 요즘 흔히 하는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만 좀 해도 내력이 거의 다 나올텐데, 이런 것에 국가적 관심이 있어본 적이 없는 나라니까 어쩔 수 없다. 촛불 들고 대통령을 갈고 어쩌고 해도 농사쪽으론 바뀐 게 없었다. 이번에도 뭐가 달라지겠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