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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토종 안남미 사두초(蛇頭草, 조생종 메벼)

자포니카같이 맛있는 안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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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우보농장 이예호


사두초를 보았을 때 흥분되었다. 아주아주 많은 재미있는 요소들이 있는데, 우선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이 쌀은 토종 인디카, 그러니까 안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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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 쌀은 재배용이 맞기는 한 건가 싶다.


우선 밥맛이 없다는 인디카종이다. 물론 취향이나, 혹은 재배지의 특이한 토질과 미기후상황 같은 것으로 설명을 붙여본다 해도 탈립성이 높고(일부 시험장에서 50% 이상까지 나왔다), 이삭당 낱알 수는 적고, 간장도 낮은 것은 낮지만 1미터가 훌쩍 넘는 재배결과가 나온 것도 있다(127Cm, 국립농업과학원 2015년 시험재배). 알칼리붕괴도는 극상이라서 밥의 호화온도가 높고, 이런 정도 높은 호화온도는 현대의 육종개념으론 완전 불량이다.


한마디로 벼 이름에 도(稻)나 조(租)가 아닌 초(草)가, 그것도 그다지 상서롭지 않은 뱀대가리(蛇頭)라는 이름이 붙어서 전해내려오는 이유가 짐작이 간다. 농사를 짓긴 짓되 수확량도 적고 짓기도 어려운데다가 밥맛도 애매한 애물단지였을 것이다.


조선도품종일람에는 이 쌀의 재배기록이 없고 어떤 연유로 1984년에 국립유전자원연구센터에 등록이 되어는 있는데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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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안남미를 보면 기대가 생기는 것은 첫 째로 안남미도 맛있기 때문이다. 찰기와 윤기가 자포니카좀만 못하다지만 나같이 살짝 단단한 밥을 좋아하는 사람은 찰기 적은 건 꼭 나쁜 게 아니다. 윤기는 밥짓기 나름으로 얼마든 만들어낼 수 있고. 안남미의 경우 오묘한 향도 있는 경우가 많다.


둘 째는 용도의 다양성이다. 어차피 갓 지은 밥만 먹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면 볶음밥이나 덮밥 같은 것으로 2차 요리를 하고싶어지는 것도 사실. 하지만 냉장고에서 애매하게 굳고 노화된 찰기는 볶음밥의 최대의 적이다. 이 밥덩이를 부수느라 웍의 코팅이 다 벗겨지는 것은 순식간이다(그래서 전문점은 코팅 없는 스텐 웍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셋 째는 그 알 수 없는 내력이다. 이것은 먼 옛날 열대의 동남아나 인도에서 들어온 쌀의 형질이 보존되어 온 것일까, 혹은 어떤 교류과정에서 전해진 것일까.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스스로 어딘가에 매혹되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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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짓기도 동남아식으로 물을 따라내고 지을까 했으나 비교를 위해서 그냥 압력솥에 지었다. 보통의 물로 지은 밥.


예상대로의 밥이 나왔다. 고슬한데 윤기는 어느 정도 있다. 외양만 아니고 쌀의 성질이 그냥 인디카쌀 맞다. 그리고 토종쌀들이 공유하는 특징, 밥의 향이 있다. 이 향은 어딘가 고소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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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미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식당에서 갓 지은 밥이 아니라 어떻게든 묵혀둔 밥을 먹었기 때문인 것도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동남아식당들도 갓지은 밥을 내오는 곳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핸드드립 커피 내려서 온장고에 삼십 분이나 한 시간 정도 두었다가 나온다고 상상해보라. 뭐든 맛이 있을 수가 없다.


동남아식으로 자작한 향신료 국물도 곁들여보고, 부러 누룽지도 좀 만들어지게 밥을 했다. 역시 이 식감은 국물이나 소스에 잘 어울린다. 누룽지도 자포니카쌀 누룽지보다 파삭(바삭 아니고 파삭한 그 느낌)하게 잘 나온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인디카쌀 팬이 너무 적어서 의아하다.


의도한대로 맛있는 안남미밥을 지은 오늘의 밥짓기는 89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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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우보농장 이예호


무엇이든 취향이 다양하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의 집다적 경험치가 적다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이다. 사두초를 비롯해서 토종쌀에도 인디카로 분류되는 종이 몇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쓸모가 많고 중식당쪽도 수요가 좀 있을지 몰라서 계약재배라도 해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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