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차게 말아먹은 술술도(戌戌稻)밥짓기(조생종메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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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도(戌戌稻)는 개 술자(戌)가 둘이나 붙어있다. 황백색 이삭이 상당히 긴 편이고 거기에 흰 터럭 같은 까락이 붙어서 그런 것이리라 짐작해 본다. 이삭이 개꼬리같이 보였을 것이다.


조선도품종일람에는 술술도의 기록은 없고 무술도(戊戌稻)라는 쌀은 경기에서 충청, 경북까지 주로 산이 많은 곳에서 재배된 기록이 있다. 이 무술도는 다른 기록도 없고 종자도 남아있지 않아서 무술도와 술술도의 관계는 알 수가 없지만 무자와 술자의 형태가 비슷한 것까지 따지면 어딘가 그냥 넘어가게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키가 큰 벼고 이삭도 길다. 농부 입장에선 손이 많이 가고 마음 편하지 않은 벼였을 것 같고, 그래서 태풍이 휩쓰는 평야지대보다 내륙의 산지에서 많이 재배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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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밀로스 함량이 높은 쌀이다. 시험재배시 최대 26%까지도 나왔다. 그 정도면 인디카 중에서도 높은 수준이다. 그러니 찰기가 쫀득한 스타일은 아닐 것이다.


밥을 지어먹다 보니 취향도 다양해진다. 원래도 인디카쌀에 금방 적응해서 중국이던 동남아던 맛잇게만 잘 먹고 다녔고, 인디카 쌀도 밥짓기 나름으론 제법 찰기가 나온다는 것도 배웠다. 요즘은 사두초 같은 인디카 스타일의 쌀에 꽂혀서 얼마전엔 우보농장을 방문해서 사두초 농사를 좀 지어달라 조르고 왔을 정도. 그러니까 이 쌀도 기대를 가지고 맛있게 밥을 지어봐야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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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스타일은 전분의 노화도 빨라서 물을 넉넉히 잡고 짓는 게 좋다. 물론 넉넉히라는 것도 내 기준이고, 이 정도면 보통의 밥짓기겠지. 지금 생각하면 압력솥을 쓰는 게 더 나았다 싶지만 누룽지도 먹고 싶어서 돌솥을 썼다.


그런데... 참사가 벌어졌다. 무슨 이유론지 인덕션 불이 꺼져있던 것. 게다가 돌솥이라 압력솥같이 신호가 오는 것도 아니니 한참이나 넋을 놓고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서 봤더니 이런 상태라 부랴부랴 다시 불을 올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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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보시다시피 극혐하는 스타일의 떡밥. 결과적으론 미지근한 물에 한 이십 분 담궈둔 효과가 났던 것이고, 그 결과로 이런 떡이 된 것이다. 당연히 밥은 맛이 없고 '구수한 향' 같은 것도 잘 못 느끼겠는 상태. 이런 정도 비참한 밥을 지어본 것도 꼬맹이 시절 보이스카웃에서 석유버너와 코펠로 밥 지어본 이후로는 거의 처음인 듯. 술술도야 미안.


오늘의 밥짓기는 완전실격인 40점, 아니 0점을 줘도 무방할 정도다.


밥짓기는 실패했지만 배운 것은 있다. 인디카쌀로도 떡같은 식감을 내는 게 가능하다는 것.


그리고 역시 밥쌀은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물에 오래 담그는 것 아니라는 것이다. 이게 옛날에 통일벼 먹던 습관인지 모르겠는데 요리 전문가라는 분들도 염불처럼 쌀을 30분이라니 한 시간이라니 물에 불리라고 하는데, 보시다시피 햅쌀 물에 오래 불리면 이렇게 된다. 그래서 또 따라붙는 얘기가 채반에 받쳐서 30분이니 한 시간이니 두라는 것이고.


백미는 기본적으로 겁껍질 속껍질 다 벗겨둔 상태라서 금방 상하진 않지만(건조한 덕분) 산화에는 극히 취약한 상태가 된다. 이런 쌀을 물에 불려서 공기중에 노출시키면 산화로 분자구조(특히 단백질 성분 부분)에 변화가 일어날 뿐 아니라 세균 번식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해주는 것이 된다. 물론 한 시간 정도에 험악한 균이 엄청 번성하긴 쉽지 않고, 밥하기는 바로 증기에 찌는 것이라 크게 위험할 일은 아니지만, 굳이 일없는 일을 해서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늘릴 필요는 없는 것. 게다가 이런 식으로라면 밥 한 번 짓는 시간이 두 시간이 넘어가기도 하니 요즘 세상에 누가 그걸 감당하겠는다. 전문요리사라도 한숨이 나올 판에.


윤기 흐르는 진밥을 좋아하신다면 그저 쌀 씻을 때 조금 더 시간을 들이고 물을 조금 더 많이 주면 될 일이다. 정말로 물에 삼십분이나 불려야 맛있는 밥이 나오는 쌀이면 쌀 포장지를 보시고 언제쯤 수확하고 도정한 쌀인지 살펴보시길. 보낸 시간이 한두 해 정도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술술도는 언제 다시 한 번 밥을 지어서 시험해봐야겠지만 자포니카의 외모에 인디카 특성을 가진 쌀을 찾는다면 어울리는 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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