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슬리는 것과 싸우며 ‘참나를 발견’하기
요즘 유튜브로 영어 공부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알고리즘의 파도를 타고 여기저기 흘러 다니던 중, David Goggins라는, 조금 특이한 구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 해병대 전역 군인으로, 갖가지 울트라마라톤과 철인삼종경기를 하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터프가이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사람이더군요.
자서전으로 유명하길래 도서관에서 ‘누구도 나를 파괴할 수 없다’를 빌려봤습니다. 그리고, 충격! 그가 고통을 대하는 태도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평생 마라톤이라고는 해본 적도 없던 그의 첫 번째 마라톤은 24시간 동안 100마일(160km)을 뛰는 울트라마라톤이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다’는 네이비 씰 정신으로 달려들었다가, 발바닥이 다 까지고 기절 직전까지 18시간 동안 달려서, 결국 완주해 내죠. 완주 후 대소변을 가리지 못할 정도의 상태에서, 그의 표현대로라면 ‘콜라색의 오줌과 대변’을 지리면서 겨우 몸을 추슬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충격적인 것은,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진 자신을 병원으로 보내지 못하게 하며 관찰하고, 그 안의 고통을 해부하면서 자신만의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진통제도, 휴식도 거부하며 부상을 딛고 엄청난 거리의 울트라마라톤과 철봉을 해낸다는 점이죠. 참고로 그는 24시간 동안 4030번의 턱걸이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는 사람입니다.
그가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이유,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26km를 달리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헬스장에서 또 몇 시간 동안 엄청난 강도로 운동하고, 또 몇 시간의 자전거 타기를 하고, 그렇게 운동을 마친 후 두세 시간 동안 강도 높은 스트레칭 + 두 시간의 명상... 이 정도 강도의 운동을 수십 년째 주 6일 하고, 하루 쉬는 날에도 2~3시간 정도 자전거를 타며 몸을 푼다니... 그것도 어떤 음악도 듣지 않으면서... 그야말로 어나더 레벨의 인간이죠.
그런데, 이렇게 미친 트레이닝을 매일같이 하는 이유가, 무슨 다이어트나 몸짱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에게 운동은 수행에 가까운 행위이더군요.
트레이닝에서 얻어지는 고통을 해부하고,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삶의 지혜‘를 발견하기 위해서 일부러 고통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다고 합니다. 그에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 일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그는 항상 "아침에 운동화를 신고 뛰러 가는 것"이라고 주저 없이 대답하죠. 하지만 그는 이를 십 년 넘게 매일, 단 하루의 예외도 없이 행하고 있습니다. 고행을 통해서 득도를 하려는 고행승의 미국판 익스트림버전인 것 같더군요.
한번은 발목이 금이 간 상태로 애인과 어머니의 참가를 지원해 주기 위해 풀코스 마라톤을 따라갔다가, 즉흥적으로 참여해서 상위권으로 완주해 버리기도 했고, 턱걸이 세계기록을 세울 때는 손바닥의 살같이 장갑에 완전히 붙어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상태로 8시간 동안 턱걸이를 지속했던 남자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가 느꼈을 고통의 크기는 그냥 10단계죠. 이 정도면 마취 없이 십여 시간의 외과수술을 받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온전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를 극복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음악도 듣지 않는 맨 귀로 말이죠. 그가 듣는 유일한 음악은 영화 로키의 주제가이기도 한 'Going the Distence'라고 합니다. 턱걸이 세계신기록을 세울 때 들으면서 했다고 하더군요.
음악을 듣지 않는 것에 대해 ‘나와의 대화를 방해하기 때문’이라는 그에게 트레이닝이 어떤 존재인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죠. 그에게 강렬한 운동, 이를 지속하는 고통은 마치 명상이나 고행처럼 고통 속에서 진정한 자신, 참자아를 만나고 대화하며 삶의 지혜를, 살아갈 힘을 얻어내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숲 속명상을 이야기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드시죠?
제가 고긴스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숲속 명상이라는 것이, 사실 명상 중에서도 가장 익스트림한 단계의 고행에 가까운 명상이기 때문입니다.
명상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호흡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수없이 많은 상념들이 떠오르고, 목뒤가 간지럽고, 허리가 아프며, 꼼지락거리고 싶은 거대한 욕망들에 휩싸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죠. 이러한 모든 욕망들 중에서 ‘진정한 필요’를 가려내는 것, 그리고, 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고통들을 해부하고 관찰하는 과정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내고 이해하는 것이 명상이죠.
그런데, 이러한 일반적인 명상행위는 조용한 방에 홀로 향을 펴놓고 하는 것 같은 '평안한' 명상일 뿐이랍니다. 만약 명상의 장소가 안락한 방이 아닌 숲 속이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지죠.
여러분, 단 한 번이라도 모기장 없는 여름 숲속에서 명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가 아는 한국의 여름 숲은 모기들의 왕국이랍니다. 숲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보통 3~4분 정도 한자리에 서서 가만히 있으면 여지없이 모기 한 마리가 날아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한 마리는 세 마리, 다섯 마리로 점점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우리의 피를 갈구하며 앵앵거리죠. 갖가지 교묘하고 능수능란한 전략을 펼치며 우리의 건강한 피부 위에 벌건 동그라미들을 만들어놓고 떠납니다. 하지만, 다시 다른 모기들이 오고, 이 과정은 반복되죠.
그리고, 그렇게 물린 상처들은 십여 초 후부터 간지러워지기 시작해서 삼십분, 길게는 한 시간 동안 미치도록 긁고 싶게 만듭니다. 기괴하죠. 원하는 피를 얻었으면 그만이지, 왜 간지럽게 하고 떠나는 걸까요?
아무튼, 이 정도는 그나마 긁지 않았을 경우에 그렇고, 만약 신나게 긁어버렸다면, 상처가 일주일은 가면서 계속 간지럽고 쓰라리며, 심한 경우 흉터까지 남깁니다.
이런 모기 지옥에 모기만 있을까요? 아닙니다. 당연히 개미도 있고, 벌도 있고, 노래기, 노린재, 지네, 거미, 날파리에 달팽이 지렁이까지 갖가지 종류의 생명들로 가득한 곳이 숲이죠... 그야말로 파도와 같은 생명의 물결이 끊임없는 벌레와 짐승들로 가득 채워진 생명의 바다 같은 곳이 숲입니다. 특히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며 땀 흘리는 인간에게 더 그렇죠.
물론, 시원한 계곡에 앉아있는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계곡에는 비교적 모기도 적고 벌레들도 거의 없거든요.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끊임없이 주변을 가득 채워줘서 숲의 짐승들이 내는 다양한 울음소리나 새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답니다. 다만, 가끔씩 물을 마시거나 몸을 씻으러 내려오는 새들을 만날 수는 있겠죠.
이런 거친 환경 속에서 진행되는 숲속 명상과 방에서 하는 명상을 마라톤과 비교한다면 일반 마라톤과 30kg짜리 완전군장을 메고 뛰는 특수부대형 마라톤의 차이 정도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월부터 10월 까지는 대략 비슷하고, 겨울에는 추위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겨울의 명상은 초보자를 위한 입문단계라고 볼 수 있죠. 만약 숲에서 명상을 시작하고 싶으시다면, 2월쯤 늦은 겨울에 시작해서 봄, 여름, 가을을 거쳐가며 조금씩 변화하는 숲의 환경 속에서 자연을 만끽(?) 하는 것을 권해드릴 수 있겠네요.
그래서인지, 태국의 성인 아잔차스님께서는 제자들을 데리고, 한여름에 모기가 제일 많은 숲속 물웅덩이 옆에서 수행시키기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그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며 ‘참으로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미소 지으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석가모니도 예수도, 모하메드도, 또 다른 위대한 스승님들 중 대부분도 모두, 거친 자연 속에서 수행하시기를 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일부러 그런 곳만 찾아다니셨죠. 마치 고긴스가 자신을 괴롭힐 거리들을 찾아다니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극한의 괴로움을 스스로에게 선사한 것처럼 말이죠.
참고로, 고긴스는 자신에게 달린 악풀들을 모아서 녹음한 후에 이를 듣기를 즐긴다고 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악풀을 듣는 고통을 통해서 배우는 즐거움을 즐긴다고 할 수 있겠죠.
고긴스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stay hard!' 지구인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 고통 속에서 너 자신과 만나고 너와 대화하며 스스로에 대해서 배워라. 쉬지 말고! ‘ 정도일 것 같습니다.
그는 또한, 돈을 창고에 쌓아두지 말고, 남을 돕는 것에 집중하며, 세상에 봉사하며 살라고 말합니다. 그가 울트라마라톤을 처음 시작한 이유가 전사한 전우들의 자녀들을 돕기 위한 모금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그의 모든 공식 도전들이 불우한 이웃들을 돕기 위한 모금이 목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의 진정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는 위의 책을 독립출판하여 큰 돈을 벌었음에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중 하나라는 산림소방관으로 일하며 시급 12달러를 받기도 했답니다. 그가 한 일은, 산불이 났을 때 불이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몇 km의 방화선을 구축하는 일인데, 말 그대로 곡괭이 하나만 들고 열명 남짓의 건장한 남자들이 쉬지 않고 땅을 파고 나무를 베며 며칠을 숲속에서 보내는 일이죠. 8시간 이상 곡괭이질을 하다가 지쳐서 쓰러진 바로 그곳에 담요 한 장 덮고 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시 끝없이 곡괭이질을 하는, 그의 표현대로라면 '평생 처음 해보는 힘든 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죠.
부러진 다리를 박스테이프로 칭칭 둘러친 후 네이비 씰의 지옥주를 견뎌내고, 수백 킬로미터의 울트라마라톤을 며칠간 달리는 그의 고통을 숲 속명상에 비유하는 것이, 좀 지나친 비유이기는 하지만, 그의 삶과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왠지 고행승의 모습이 보이면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서 글로 써보고 싶었습니다. 당연히 숲속 명상이 울트라마라톤보다 훨씬 쉽겠지만, 가끔은 숲속 명상도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하죠, 만약 눈을 뜨지 않고 꼼짝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킨다면 말이죠.
고통과 번뇌를 만나고 극복하면서 호흡에 집중하고, 다가오는 모든 번뇌와 고통을 들여다보며 그 원인에 다가가는 일, 고통 속에 앉아있는 ‘참나’를 만난다는 관점에서 숲 속명상은 지극히 효율적인 명상이 맞습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을 겪으며 느껴지는 감각들을 알아차리고 이해하게 되고 나면, 시원한 바람 같은 청량감이 느껴지기도 하죠. 고긴스의 책에서 두 번째 파도(Second Wave)라고 표현되는 느낌과 비슷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도 오락가락, 별생각 없이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 뒤죽박죽인 것 같네요. 아무튼, 저의 마지막 한마디는 "부디, 이번 여름 시원하고 아름다운 숲속을 한번 걸어보시길. 걸으시다가, 마음을 이끄는 어느 나무 아래에 오분, 십분, 이십 분, 삼십 분 정도, 꼼짝하지 않고 앉아서 호흡에 집중하며, 숲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자신의 진면목을 만나는 가르침의 시간을 가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무 힘드시다면, 1분 또는 2분에 한 번씩 눈을 떴다가 다시 감기를 반복해 보세요. 몇 분 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감각의 원인이 무엇인지 관찰하고, 다시 눈을 감기를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숲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고, 더 편해지게 되기 마련이랍니다.
다만, 어떨 때는 차라리 눈을 뜨지 않는 것이 더 좋을 때도 있다는 것은 말씀드립니다. 말벌이 손등에 앉아있을 수도 있고, 무릎 위로 지네가 지나갈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숲에서 만나는 모든 동물과 곤충들은 그저 와서 머무르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말벌이든 지네든 뱀이든 새든, 그들은 그저 잠시 머무르다가 지나갑니다. 적어도 한국의 산에 사람을 먹이로 하는 짐승은 없으니까요.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한번 숲속에서 명상을 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한번 해보세요. 어쩌면 어디에서도 얻지 못한 환한 충만감과 청량감, 기쁨을 느끼실 수도 있을 거예요. 최소한 저는 그렇더군요. 그게 제가 숲에서 일하는 이유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