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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의 정신세계

만약, 식물들도 우리처럼 말하고 생각한다면?

십여 년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숲에 다닌 지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난 상태였죠. 어릴 적 친구들과 놀러 다닌 것은 빼고,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숲에 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처음 십 년 정도는 숲에 갔다기보다는 등산을 한 것 같습니다. 암벽등반을 하며 어마어마한 짐을 등에 메고 숲길을 뛰어다니고, 매일같이 턱걸이를 하며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암벽을 탈까, 어떻게 하면 더 빠르게 숲을 지나가나.. 뭐 이런 것들에 꽂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십 년 정도 독일 북부에 머무르면서 산이라고는 구경도 못했죠. 독일 북부의 숲은 평평하기 때문에, 우거진 숲이라고는 하지만, 평평한 길이 이어지는, 적어도 제게는 숲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숲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커다란 계곡들이 중간중간 있는 그런 공간인데, 독일 북부의 숲은... , 제게는 뭔가 인지부조화가 느껴지는 숲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리 자주 찾지는 않았죠.


그러다가 귀국하고 처음 작업실을 얻은 수락산 근처에 머무르면서 수락산을 오르내리기 시작했고, 어느 시점 이후부터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강렬한 감정 또는 느낌들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오르내리던 숲길은, 그저 지극히 평범한 15~20도 정도 경사의 등산로였고, 그 중간 기점은 수락산의 정상이었습니다. 정상의 바위에 누어서 잠시 하늘구경을 한 후에 하산해서 작업실로 돌아가는 아주 단순하고 반복적인 등산이었죠. 대략 두 시간 정도 걸리는 산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오랜만의 귀국으로 주변에 사람이 없다 보니, 그런 식으로 적적함을 달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숲길의 중간 어디쯤 , 잠시 앉아서 쉬려고 하늘을 바라본 순간, 난생처음 느껴지는 강렬한 아름다움과 만났습니다.


희한한 경험이었죠. 지극히 평범한 나무, 풀, 바위들 사이로 보이는 역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구름 이 듬성듬성 있는 하늘을 보는데, 가슴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더니 눈물이 날 것처럼 충만감이 가슴을 꽉꽉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산길에서 느낀 감정은 ‘충만감’이었습니다. 행복이나 기쁨, 이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자극적인 쾌감이라기보다는, 완전한, 가슴이 꽉 차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는 충만감이었습니다. 이후로도 같은 숲길에서 비슷한 감정을 아주 자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과연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었는데, 충만감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게 느껴지더군요. 그 충만감은, 정상에서도 아름다운 계곡에서도 아닌, 그저 평범한 어느 숲길 바위에 앉아서 쉬는 과정에서 늘 찾아왔었습니다.


그리고는 ’아, 나는 숲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고, 얼마 후에 숲해설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충북대 산림치유학과 대학원과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뭐, 대학원을 가는 것과 숲에 가는 것이 크게 관련이 없기는 했지만,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자연과학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었던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대학원을 가고 숲과 관련된 일들을 시작하면서, 그간 평생을 미술가로 살아가던 저는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혀야만 했습니다. 난생처음 만나는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가끔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연도 해야 했죠. 정말 당황스러운 일들을 많이 겪는 시기였습니다.


막상 일이 닥치면 한다고는 했지만, 평생 그림만 그리고 그림과 관련된 사람들만 만나면서 살아오다가, 갑작스럽게 숲체험 또는 산림치유로 뚝 떨어지다 보니, 주어지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까지 엄청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고민들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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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을 만나게 된 것도 대략 이때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목 그대로 식물도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책이죠.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이야기는 클리브 백스터 Cleave Bakster라는 미국인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는 1960년대부터 거짓말 탐지기 전문가로 경찰과 함께 일하던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어느 날 재미로, 거짓말탐지기 검류계를 줄무늬 드러시너(Dracaena Massangeana)라는 식물의 잎에 연결하여 전류변화를 검류해 봤고, 거기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죠.

화면 캡처 2025-02-07 203855.jpg 줄무니 드러시너

실험 내내 별다른 반응이 없던 식물에게 불을 붙여보려고 성냥을 집으려던 순간, 미친 듯이 바늘이 움직이는 사건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직 성냥을 들지도 않은 상태였다는 것입니다. 줄무늬 드러시너는 그의 의지를 읽어내고 불에 대한 공포를 충격적인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죠. 이후 상추, 양파, 오렌지, 바나나 등 25가지가 넘는 식물이나 과일 등에 같은 실험을 해본 결과, ’ 식물은 주변의 사건 중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서 엄청나게 반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식물의 이러한 반응은 잘린 나뭇잎이나 열매를 따로 측정해도 일관되게 나타났었고, 심지어 잎을 심하게 잘라서 거의 가루를 만들어서 가루만 따로 측정해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군요.


처음 이 이야기를 읽었던 당시의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숲에 자주 가면서 풀과 나무들을 많이 만나기는 했었지만, 그들이 우리처럼 생각을 하고 내 생각을 느낀다는 것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거든요. 갑자기 동화 속에 나오는 나무들의 이야기가 모두 거짓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죠.


그리고, 갑자기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거대한 짐승들이 득실거리는 정글 속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나무들은 어디에나 있으니까요. 다행히 가만히 서있는 것 말고는 딱히 해를 끼치지 않아서 두려울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주변의 나무들이 나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무들에게 함부로 경망스러운 짓을 못하게 되었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좀 이상하게 들리실 수도 있겠지만, 나무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그냥 ‘안녕 나무~’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그리곤, ‘잘 지냈냐’ 정도로 발전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혼잣말 하듯이 나무들에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살면서 고민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하면 특정 나무들을 쓰다듬으며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답을 얻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답을 얻었다고는 해도, 그냥 고민 중에 생각이 떠오른 것일 가능성이 훨씬 더 높겠죠. 하지만, 분명히 나무들과 대화를 나누며 나무의 여기저기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답이 떠올랐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직도 그 나무들의 가지 끝이 햇볕에 반짝이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어느 날은 유치원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자연미술에 대해서 강의를 할 일이 생겨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고민하느라 산길을 걷다가, 늘 만나던 도토리나무를 쓰다듬으며 한참을 물어봤는데, 햇볕에 반짝이는 나뭇가지의 아름다운 모습에서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된다'는 답을 들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고민하다가 답이 떠오른 것이 맞는 것 같긴 한데,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나무가 말하는 것 같았죠. 과학적이지 않은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의 과학이라는 것이, 세상의 모든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는 못하는 면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예를 들자면, 숲 속의 나무들이 서로를 돕는 공생관계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뿌리를 통해 실제로 주변의 약한 나무들에게 에너지물질을 전달한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는 주변 나무들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주변 나무들이 이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어린 나무들이 자라날 때 주변의 어른 나무들이 양분을 뿌리로 보내어 함께 양육한다는 것 등등... 이는 과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밝혀진 사실들이랍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혀 비과학적인 이야기라고 할만한 이야기들이죠. 최근 과학의 역량이 엄청나게 발전하면서 인간이 의심하는 거의 대부분의 비과학적 이야기를 증명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백스터의 실험에 나타났던, 식물의 극적인 감정변화도, 결국은 주변의 다른 식물들에게 ‘위험을 경고’ 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결론지어졌다고 하더군요.


평안하게 지내던 숲의 키 작은 나무들 근처로, 갑자기 사슴 한 마리가 나타나면, 제일 먼저 발견한 나무가 주변의 다른 나무들에게 경고성 화학물질을 전달해서 사슴이 왔음을 알리고 대비를 하는 것인데, 때로는 사슴이 싫어하는 독성물질을 잎으로 보낸다든지, 최소한 기절해서 잎을 뜯길 때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공동경계시스템으로, 마치 누군가의 집에 도둑이 들면 ‘도둑이야~~! “ 하고 소리치는 것과 비슷한 행위죠. 인간은 음파를 발생하여 주변의 다른 개체들에게 위험을 경고하지만, 나무들은 화학물질을 퍼뜨려 이를 주변의 이웃들에게 경고하는 것입니다. 방식은 다르지만, 정보전달이라는 의미에서 같은 행위죠.


물론, 이러한 식물들의 의사소통이 ’ 언어의 수준‘까지 발달했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어라기보다는 직관적인 울음 같은 것이죠. 어쩌면 인간의 언어보다 더 고차원적인 방식의 의사소통일 수도 있고요. 어찌 되었든, 아직 우리의 기술로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식물의 정신세계’ 에는 클리브 백스터의 이야기 외에도 식물들 간의 정신적 교류에 대한 다양한 실험들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7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대체의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런 류의 이야기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실험들이 이루어졌는데, 이 책은 그중 식물들 간의 의사소통과 식물의 초자연적 감각세계에 대해 다루고 있죠.


관심 있으신 분들께 한 번쯤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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