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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Feb 27. 2017

플로렌스의 달과 6펜스

예술, 땅만 보고 살 수 없고, 그렇다고 하늘만 보고 살 수도 없는 일

   '김PD의 인문학 여행' (40)


   그녀와 함께 도서관에 갔다. 인왕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우리 동네 도서관은 내가 즐겨 찾는 장소 중 하나다. 도서관에 가면 왠지 부자가 되는 느낌이 들곤 하는데, 아마도 그건 책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이 마치 내 것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때문일 것이다. 세속적일 수만은 없는 세상 속에서 그나마 조금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듯한 포근함이 느껴지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일 테고...


   그녀가 한 권의 책을 빌렸다. 그녀 말에 의하면, 원래 빌리려고 하던 책이 없어서 '뭘 빌릴까?' 하고 궁리를 하고 있는데, 책들 사이에서 한 권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단다. 그래서 손에 잡고 읽기 시작했던 책이었다. 요즘처럼 책 한 권 읽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녀가 우연히 집어 든 그 책을 나는 단숨에 읽어버렸다. 서머싯 모음의 <달과 6펜스>였다. '세상에 이렇게 재밌는 책이 있었나' 싶다. 명작이란 이래서 이름값을 하는구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런 생각뿐이었다. 


   세속적인 가치에 물든 삶을 살면서 어느 순간엔 그런 세속적 가치로부터 벗어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바로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또 한 번 예술이란 이름 아래 우리가 만나고 헤어졌던 수많은 존재들을 다시 한번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 세상에서 가장 뻔뻔한 음치라 불려졌던 플로렌스 젠킹스의 전기적 영화, 바로 <플로렌스>였다. 아무도 설 수 없다는 카네기홀의 무대에 섰던 음치 중의 음치, 플로렌스 젠킨스. 도대체 그녀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무엇이었을까? 재능이 없이도 예술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보여줬던 플로렌스와 재능 때문에 세속적인 가치를 모두 포기하고 타히티 섬으로 도망치듯 떠나야 했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 (실제로는 인상파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 둘은 분명 다르지만, 또한 같은 존재들이다. 예술이 무엇인가를 묻게 만드는 존재들로서. 




   "오로지 예술만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포기하는 인생이 가능할까?"

   "글쎄...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인생을 한 번은 꼭 살아보고 싶기도 하지..."


   그녀가 던진 질문에 나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드러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예술이란 어차피 조금은 어렵고 낯선 대상이다. 평범한 삶에서 예술을 즐기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그리 할 수만 있다면 조금은 덜 세속적이고, 그래서 조금은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고 싶은 희망을 갖고 있는 게 우리들의 삶이다. 서머싯 모음이 그린 천재 화가 고갱의 이야기나, 재능 하나 없이 온갖 조롱을 뒤로하고 끝까지 꿈을 질주했던 플로렌스 젠킨스. 두 사람의 인생은 교차로 한복판을 전속력으로 달려와 스치듯 지나치는 경주용 자동차 같다. 혹은 충돌 직전 브레이크를 밟고 교차로 한복판에 멈춰 섰거나. 


   어차피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렇다고 비관적으로 세상을 살 수만은 없는 법. 어쩌면 죽어야 하는 운명을 지닌 인간이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예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위대한 예술가의 삶과 작품을 보고 감동을 받고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그의 존재를 부활시킨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그 혹은 그녀의 작품은 평범한 우리들의 삶까지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보통은 재능 때문에 포기하고, 또 어떤 이들은 여건이 안 돼서 재능이 있어도 예술가의 인생을 살 수 없다고 여긴다. 그런 점에서 플로렌스 젠킨스의 삶은 예술이 예술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지독한 음치였지만 카네기홀에서 공연까지 하고 음반까지 냈던 그녀. 그래서 그녀의 삶은 숭고하게만 느껴진다. 남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 노래했던 음치 성악가, 예술이란 그런 것이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증명하고 떠났던 사람. 카네기홀 공연이 있고 한 달 뒤 삶을 마감했던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몸이 안 좋았던 그녀가 비평가들의 혹평 때문에 심장마비에 걸렸을 거라 수군거리도 했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임질로 평생 시달려 왔던 그녀에게 삶을 지탱시켜 준 것은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자신이 평생 꿈꿔왔던 카네기홀의 공연은 삶과 죽음이 정점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짧은 순간이지 않았을까. 난 그녀가 평화롭게 숨을 거뒀을 거라 믿는다. 그녀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에 그 단서가 있다.  


    "사람들은 내가 노래를 못했다고는 말할 수는 있어도, 내가 노래를 안 했다고는 말할 수는 없을 거야."

(Some people say I cannot sing, but no one can say I did not sing)

 

   

   음치 성악가 플로렌스 젠킨스의 마지막을 통해 예술이란 참 숭고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달과 6펜스>에서도 서머싯 몸은 예술의 숭고함을 조금은 다른 각도로 고백한다. 마치 산 정상에 다다른 두 개의 산등성이가 하나로 만나듯이 그렇게 둘은 하나로 통한다. 


   "천재, 그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존재야. 하지만 그것을 가진 자에게는 무거운 짐이지. 우리는 그들에 대해 너그럽지 않으면 안 돼요." 


   공교롭게도 고갱의 그림은 살아생전에 제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없다. 특히 후기 인상파들의 그림이 그랬다. 그건 한때 고갱과 친분을 나눴던 고흐도 마찬가지다. 생전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던 고흐나 이상한 그림(?)이라 조롱받았던 고갱이나, '선이 없는 그림'이라 놀림받았던 세잔이나 다들 마찬가지였다.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성공한 예술가, 인정받는 예술 작품만이 예술이어야 하는가? 남이 좋다는 것이 꼭 내 눈에도 좋게 보여야 하는가? 어쩌면 너무나 개인주의적인 삶고 있는 나에게 답을 묻는다면, '아니오'가 될 수밖에 없다. 나의 경우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즐기는 삶이 예술하는 삶이다. 그래서 조금 모자라도 내 안에서 에너지를 일으키고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우리 모두가 예술가일 것이다. 음치 플로렌스 젠킨스의 삶에서 희망을 찾는 사람도 있고, 천재 화가로 살면서 세속적인 인정과 거리가 멀었던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은 <달과 6펜스>에서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다. 좀 다른 얘기일 수 있지만, 동성애를 즐겼던 서머싯 몸에겐 삶이 평범한 삶 자체가 고달픈 것이었을 수도 있다. 세속적인 눈으로 봤을 때, 아니 실제로 1900년대 영국에서 동성애는 범죄였다. 그런 범죄(?)적 관계를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남들의 눈총 따위는 무시한 채 90세까지 장수했다. 결국 모두 우리 안에 있는 예술의 다른 모습이다. 


    달도 6펜스 동전도 모양은 둥글다. 둥글지만 하나(달)는 하늘을 봐야 하고, 또 하나(6펜스)는 땅을 봐야 한다. 땅만 보고 살 수 없고, 그렇다고 하늘만 보고 살 수도 없는 일. 세속적이나 숭고하거나 어차피 둘은 하나로 연결된다. 더 할 수 없이 인간적이라는 것. 천재 아티스트 백남준에겐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이기도 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다름(difference)'을 즐기는 것이었다. 따라 하기 없기,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그래서 남의 눈치 보기 없기. 달에서 '텔레비전'을 떠올렸던 백남준에게 남들이 떠드는 소문은 '인류 최초의 라디오'였다는 사실이 묘한 역설의 즐거움을 준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 작가/ 김PD 통의동 스토리 대표) 




현재 작가는 서촌 통의동에 있는 작업실 겸 까페에서 조금은 색다른 방식으로 창작 활동에 전념하면서 사람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뭔가 특별한 인생, 재밌는 일상을 같이 공유하길 원하는 분은 언제든 서촌의 골목길로 발걸음을 한 번 옮겨보시기 바랍니다.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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