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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Dec 26. 2017

분명한 건 목표가 있으면 난관을 헤쳐나가기도 쉽다는 점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를 제작하며 다시 깨닫는다

'김덕영의 인문학 여행' (80)


문학과 연극이 결합된 좀 독특한 장르 '낭독극' 한 편을 제작 중이다. 시나리오를 7회나 구조 변경(?) 할 정도로 쉽지 않은 공사다. 14명의 배우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선발했다. 그중 80퍼센트는 아마추어 배우들이다. 비록 부족한 것 많고 아쉬운 것도 많지만, 열정 하나로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하니까 나도 덩달아서 뜨거워진다.


낭독극은 영어로는 'stage reading'이라 부른다. 아직은 우리에겐 생소한 연극 장르다. 시낭송과 연극이 결합되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문학과 연극이 절반씩 나누어 갖고 있는 공연 형식이다. 이미 유럽과 일본, 미국 등지에서는 꽤 인기를 끄는 장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일단 무엇이든 상상하는 것을 구현시켜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것을 막상 현실의 무대 위에 올린다는 것은 보통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작은 연극을 한 편 제작한다고 해도 제작비만 해도 수백, 수천만 원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낭독극은 일단 제작비 면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물론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오디션과 같은 형식을 통해 사람들을 선발하고 조직하는데 비용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뜻만 있다면 일단 누구든지 도전해 볼 수 있는 장르다. 게다가 한 개인의 시나리오를 관객들이 작품화된 형태로 무대 위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엄연히 하나의 연극이고 공연이다. 그런 점에서 낭독극, 스테이지 리딩의 강점이 있다.


낭독극 <내가 그리로 갈게> 공연,  2018년 1월 20일 오후 2시, 저녁 7시 두 차례 공연


한 달 반 정도의 시나리오 각색 작업도 글을 쓰는 나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보통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나 연극 같은 작품이 공연되었을 때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원작이 훼손됐다', '원작에 못 미친다', 뭐 대략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번 작품은 졸저 <내가 그리로 갈게>라는 장편 소설을 각색하면서 시작되었다. 자기가 쓴 소설을 자기가 각색한다는 게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40여 일간의 과정은 흥미로웠다.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어떤 작품을 만들든 원작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소설과 시각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연극, 영화의 차이점이다. 나는 이번 작업에서 마음껏 원작을 훼손(?)시켰다. 그것도 일종의 창작이고, 그러다 보니 즐거운 작업이었다. 각색은 처음인지라 정말 많이 배웠고 다음 작품들을 쓰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내 글을 한두 편 읽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나는 일상이 즐겁다. 돌이켜 보면 이십대 이후부터 지금까지 내 인생은 너무너무 재밌는 삶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 늘 낙관적이고 어떤 경우에도 포기를 모른다. 말이 나와서 얘기지만 예전, 그러니까 2012년 정도였던 것 같은데... kbs '세계는 지금'을 제작하기 위해서 테러가 한창이던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했던 일이 있다. 아무나 갈 수도 없고, 마음대로 나올 수도 없는 죽음의 땅, 바그다드. 하루에도 도심 곳곳에서 폭발음이 들리고 실제로 거의 매일 폭탄 테러로 사망자가 발생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을 취재하는 일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과연 코란의 성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은 무얼 하고 있는지, 그들은 어떻게 이슬람 수천 년의 기록들을 보존하고 있는가를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목숨을 건 취재였다.


그런데 현지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라크가 안전하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자꾸 나 같은 저널리스트들의 현지 리포트가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취재 당일, 이라크 문화부에서 차관급 관계자가 검은색 경호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일종의 취재 방해 공작조였다. 말이 좀 그렇긴 하지만 당시 외자 유치에 온 힘을 쏟고 있던 이라크 정부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는 일이기도 하다. 어쨌든 덕분에 10여 분이면 도착할 국립도서관을 무려 1시간 넘게 걸려서 도착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정해진 시간은 3시간, 가는데 오는데 허비한 시간을 빼면 1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그 짧은 시간 안에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을 취재하기란 불가능한 일. 불에 탄 건물과 물에 젖은 책 몇 권만 찍고 나올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나는 숙소로 돌아와 취재 거부에 돌입했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그린존.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과 법원, 국회 같은 이라크의 핵심 시설이 모두 들어서 있는 안전지대다. 높이 3미터 두께 2미터짜리 콘크리트 방어벽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사이에 둘고 바그다드의 그린존을 34킬로미터나 두르고 있는 말 그대로 철옹성이었다. 바그다드 도착 직후 가장 인상적인 건물이었다. 전쟁과 테러로 신음하는 이라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아픔의 상처였다. 문제는 그린존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내가 있는 호텔 역시 그린존 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안전을 고려한 이라크 정부의 배려였다. 그런데 문제는 들어가는 것만큼 나오기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외국인은 출입증을 지닌 경호원과 함께 그린존을 출입하도록 규정이 마련되어 있었다.


당시 내가 요구했던 것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 보충 취재와 충분한 취재 시간 보장이었다. 나에 대한 이라크 경호처의 대답은 단호했다. '노우(No)!', 이유는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취재 거부랍시고 혼자서 호텔 로비에 앉아 다른 일행들이 그린존을 빠져나가는 것을 물끄머리 쳐다보기만 했다. 아마 그 당시 경호원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을 것이다. '지가 나가긴 어딜 나가...우리 없이...'


그런데 그 철통 같은 경계망을 뚫고 나는 그린존을 빠져나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서관장의 환영을 받으며 숨겨진 책과 전쟁의 상처들을 취재할 수 있었다. 총탄이 뚫고 들어와 도서관 벽에 박힌 흔적들, 테러로 화재가 발생하면서 스프링쿨러가 작동되면서 물에 젖은 책들, 그걸 복원하기 위해 말도 열악한 장비들로 일일이 종이 조각들을 맞추고 있는 도서관 사서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과 열정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어쩌면 그린존 안에 갇혀서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나는 목표가 있었다. 어떻게 하든 그린존을 빠져나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에 도착한다. 오직 그 목표 하나만 갖고 그린존에 안에서 탈출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늘 그렇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안 될 일도 없다. 나중에 나의 바그다드 그린존 탈출기는 다시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무튼... 결론은 그거다. 목표가 있는 삶이 사는데 훨씬 수월하다. 인생이 즐겁다. 돌이켜 보면 나의 인생도 그랬던 것 같다. 돈이 많이 벌고 얼마나 유명한 사람이 되었는가의 문제는 사실 좀 유치한 차원의 이야기다.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 얼마나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지금 즐겁고 재밌게 인생을 살고 있는가...


적어도 목표가 있었던 나의 삶은 그 즐겁고 재밌었다. 의미도 컸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큰 목표와 작은 목표들이 조화를 이루며 나의 삶의 지배했다. 그것이 늘 열정을 잃어버리지 않고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이지 않을까...


지금 진행되고 있는 낭독극 제작 프로젝트 역시 나에게는 목표가 있는 삶이 주는 행복한 순간이들이다. 나는 벌써부터 다음 목표를 꿈꾸고 있다.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서촌의 작은 골목길 까페, '김PD의 통의동 스토리'에서 조금은 독특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같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으신 분은 언제나 환영합니다." - 김덕영


김덕영의 책들
서촌 골목길 까페, 그 3년의 기록, <나에겐 통의동 스토리가 있다>,
인생에서 성공이란 때론 좀 늦게 찾아올 수도 있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49금 장편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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