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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n 07. 2018

목표가 있는 삶이 수월하다

난관에 빠졌던 이라크 바그다드 취재를 통해 얻은 삶의 지혜 하나

2012년 방송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서 이라크를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다.


테러가 한창이던 이라크 바그다드, 아무나 갈 수도 없고, 마음대로 나올 수도 없는 죽음의 땅.


그곳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총성과 폭발음이 들리고 거의 매일 도심 곳곳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언제 어디서 폭탄 테러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칼라시니코프 소총으로 무장한 경호원들. 그들이 도움이 없이는 이라크에서 활동이 불가능하다.


취재진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련된 3대의 방탄차에는 칼라시니코프로 무장한 경호원들이 배치되었다. 그런 엄중한 상황에서 나의 목적지는 오직 하나.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을 취재하는 일이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코란의 성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은 과연 어떻게 보존되고 있는지, 이슬람 천 년의 기록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의 현주소를 취재하는 것이 목표였다.


가끔은 그런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실상을 있는 그대로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널리스트의 본능이었는지 모른다.


이라크 국립도서관 전경, 이슬람 문화와 역사, 오래된 코란이 간직된 지혜의 성소와도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이라크인들에게는 지금도 '바이트 알 히크마(지혜의 집)'이라 불리고 있다.


그런데 막상 취재가 시작되자 예상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했다. 이라크 정부가 해외 언론에 불안한 이라크 정세가 보도되는 것을 막고 나선 것이다. 그들은 저널리스트들의 현지 리포트에 불만을 품었다.


평온을 되찾아가는 이라크의 모습보다 테러로 인한 피해 사례를 부각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문제 제기였다. 이라크 정부 입장에서는 해외 취재진들의 보도가 오히려 사태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취재 당일 아침, 이라크 문화부에서 차관급 관계자가 검은색 경호차량을 타고 나타났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일종의 취재 방해 공작조였다. 동서남북이 어딘지조차 모르는 현지에서 취재진은 오로지 경호차량에 의지해서 목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라크 정부에서 파견된 인솔팀은 취재진이 탄 차량을 경호한다는 명분으로 1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1시간 넘게 우회해서 현장에 도착시켰다.


실제로 그린존에서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국립도서관은 차로 1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길거리에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만 것이다. 당연히 바그다드 국립도서관과의 취재 약속 시간이 엉망이 되었다. 결국 불에 탄 건물과 물에 젖은 책 몇 권만 찍고 형식적인 인터뷰 몇 번으로 취재를 마무리해야 하는 상황이 버린 것이다.


취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나는 곧바로 취재 거부에 돌입했다.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제대로 된 실상을 취재하지 않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라크 정부 측의 입장은 단호했다.


'취재하기 싫으면 그냥 호텔에 있으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


어차피 택시나 버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바그다드 현지를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그들로서는 하루 이틀 지나면 제풀에 지칠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다. 실제로 다음 날 일정부터 나는 완전히 배제되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린존 안에 감금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내가 있던 곳은 그린존은 해외 공관과 법원, 국회의사당 같은 이라크의 주요 시설들이 모두 들어서 있는 핵심 지역이었다.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그린존 전체 34km를 높이 3미터, 두께 2미터짜리의 콘크리트 방어벽으로 에워쌌다. 서너 곳의 출입문에는 탱크와 중무장한 군인들이 경비를 담당하고 있어 살벌한 느낌까지 들었다. 말 그대로 철옹성 같은 곳이었다.


이라크 바그다드 중심부 34km를 에워싸고 있는 그린존 안에는 이라크 주요 핵심시설과 외국 공관들이 위치하고 있다.


문제는 그린존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외국인은 출입증을 지닌 현지 경호원과 함께 그린존을 출입해야 했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고서는 들어오는 것도 나가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바그다드 국립도서관 보충 취재를 보장하지 않는다면 취재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절대적으로 아쉬운 것은 나였다. 그들은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는 이유로 모든 요청을 거부했다.


결국 호텔 로비에 앉아 다른 일행들이 경호차를 타고 그린존을 빠져나가는 것만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량에 앉아 손을 흔드는 이라크 현지 경호원들은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우리 도움 없이 당신은 아무 데도 못 나가!'

  

하지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는 그 철통 같은 경계망을 뚫고 그린존을 빠져나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 취재에 성공했다.


나에겐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목표가 있으면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해결된다.


그날 천 년의 역사가 스며있는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이 전쟁과 테러로 처참하게 파괴되어가 가는 모습을 나는 생생하게 취재했다.


총탄이 뚫고 들어와 벽에 박힌 흔적들, 테러로 화재가 발생해 스프링클러가 작동되면서 물에 젖은 책들, 그걸 복원하기 위해 열악한 장비들로 일일이 종이 조각들을 맞추고 있는 이라크 사서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건물 외양만 찍고 돌아와야 했던 첫날에 비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전쟁과 테러로 불에 타버린 바그다드 국립도서관 내부


파괴된 고문서를 일일이 손으로 이어 붙이고 있는 이라크 국립도서관 직원


그린존을 빠져나가지 않았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모습이었다. 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따듯한 마음과 열정, 전쟁과 테러의 한 복판에서도 이슬람의 문화와 고전을 지켜내겠다는 그들의 숭고한 정신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은 그린존 안에 갇혀서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나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당시 철통 같은 경비를 뚫고 그린존을 빠져나가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요건이 필요했다.


첫째는 그린존을 통과하기 위한 출입증을 확보하는 문제였고, 두 번째로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는 상황 속에서 그린존 출입문 앞에서 바그다드 도서관까지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의 확보. 이 두 가지만 충족될 수 있다면 혼자서도 그린존 탈출(?)은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목표를 다시 확인하고 방법을 찾으려 하는 순간, 문득 주머니 속에 구겨져 있던 명함 한 장을 발견했다. 첫날 만났던 바그다드 국립도서관장의 명함이었다. 명함 속에는 핸드폰 번호도 적혀 있었다. 곧바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울리고 휴대폰으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그곳에 취재를 갔던 한국에서 온 김PD입니다."


나의 갑작스러운 전화에 그가 약간은 놀란 눈치다. 나는 어제 내가 취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도서관까지 가는 경로가 일부러 우회되었고 교묘하게 짜인 취재 방해를 받았다는 말까지 솔직하게 꺼냈다. 곧이어 그의 답변이 이어졌다.


"저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라크 정부는 도서관의 실상이 세계에 알려지는 걸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목숨을 잃은 사서도 있습니다. 도서관 안에 총알이 날아와서 박혔던 적도 있죠.


정부는 도서관 문제가 커지는 걸 원하지 않고 있어요. 테러와 문명의 파괴가 계속되고 있는 이라크의 미래에 돈을 투자할 사람이 없을 테니까요. 지금 정부는 이라크가 안전한 나라라고 말하고 싶을 뿐입니다."


사드 바쉬르 에스칸더 도서관 관장. 영국에서 생활하던 그는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국립도서관으로 복귀했다. 그에게는 이슬람의 역사와 문화를 지키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나는 그제야 어제 갑작스럽게 일행에 합류한 문화부 차관과 무장 경호원들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확신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린존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출입증을 지닌 사람을 보내달라는 것과 그린존에서 국립도서관까지 이동할 수 있는 차량을 보내달라는 것, 그렇게 두 가지였다.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량은 저희 직원을 시켜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린존 밖으로 나오는 건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통행증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역시 그린존이 문제였다.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생겼다. 그린존 밖으로 나갈 수만 있다면 도서관까지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다. 나는 다시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알려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린존을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만 찾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운이 좋았던 같기도 하다. 만약 그때 무하마드라는 이름을 가진 경호팀 소속의 운전자가 호텔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 난 밖으로 나갈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경호팀 소속의 운전자들도 비록 경호원은 아니지만 개별적인 용무 때문에 그린존을 들락거릴 때가 많다. 당연히 그의 지갑 속에도 출입증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달려가서 아는 체를 했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린존 안을 구경시켜 달라고 졸랐다.


사실 그린존 안에는 상당한 볼거리들이 있다. 대부분이 독재자 훗세인이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서 만든 건축물들이었다. 두 개의 거대한 검이 교차하는 상징물에서부터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국립 경기장도 있었다.


나는 무하마드의 차에 올라 그린존 안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잠시 쉬고 있는 군인들을 만나면 기념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두어 시간을 보냈다. 모든 일이 그렇겠지만 사람 관계라는 게 다 똑같다.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면 진심이 통하기 마련이다. 나는 슬슬 그에게 그린존 이야기를 꺼냈다. 유일한 희망이 무하마드의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무하마드, 저기 있잖아. 나 어제 갔었던 국립도서관엘 좀 가야 하는데..."

"거긴 왜?"

"관장님 인터뷰를 다시 해야 해. 어제 촬영한 게 잘 안 됐어."

"거길 어떻게 가게?"

"관장님이 직원을 시켜서 차를 보내주겠대"

"그래?!"

"그래서 말인데. 나 그린존 게이트 바깥에까지만 데려다줘요."

"거긴 왜 가려고?"

"내가 전에 말했잖아. 너희 나라 이야기를 제대로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무하마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그도 잘 알 거란 판단이 들었다. 그에게서 짧은 대답이 들려왔다.


"알았어. 그린존 앞까지만 데리고 가줄게. 나머지는 책임 못 져! 네가 알아서 해야 해!"


늘 그렇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안 될 일도 없다. 만약 목표를 잃어버렸다면 아마 호텔 로비에 앉아 몇 날 며칠이고 기다렸을지 모른다. 물론 취재가 제대로 됐을 리도 없다.


목표가 있는 삶이 사는데 훨씬 수월하다는 것은 그렇게 내 인생 곳곳에서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단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다.


그런 목표 설정이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망을 자극한다. 먼 미래에 관한 장기적인 목표보다 현실에 대한 단기적이고 세분화된 목표들이 필요하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들도 목표를 세우면 실마리가 보인다.


그린존 안에 위치한 바그다드 국립경기장을 경비하는 군인들. 이라크 전쟁 이후엔 퇴역 군인들로 경비 임무가 맡겨졌다


나의 경우에는 바그다드 그린존은 하나의 시작에 불과했다.


세상 곳곳을 여행하고 취재를 하면서 수도 없이 많은 현실적인 난관이 부딪쳤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바그다드의 오래된 '지혜의 집', '바이트 알 히크마'를 취재했던 경험을 떠올린다. 목표 설정 자체가 해결의 시작이라는 깨달음을 주었던 바로 그곳.


혹시 인생이 무료하고
재미가 없다면,
목표를 잘게 쪼개서
세분화시켜 보는 것은 어떨까?


나의 경우엔 그것이 인생을 재밌게 만드는 방법이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둘 쌓아 올려 돌탑을 만들듯이 그렇게 일상의 작고 소소한 목표들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 결론은 이렇다. '나는 행복한가', '지금 즐겁고 재밌게 인생을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보다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지금, 오늘 내 목표가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일이다.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큰 목표와 작은 목표들이 음표들처럼 조화를 이루며 삶을 지배한다. 그리고 결국엔 거대한 오케스트라가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을 감동으로 만들어주는 거대한 하모니!


돌이켜 보면 나의 삶은 끊임없는 목표 설정의 연속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목표의 달성이 아니다. 지나친 목표에 대한 열망은 오히려 집착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일상이 즐겁기 위해서는 목표를 설정하고 기대에 충만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늘 무언가를 꿈꿀 수 있다면 일상은 무료하거나 지루해지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건축가 루이 칸(Louis Khan)의 말은 도전적인 삶으로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바이블과 같다.  


"나는 시작을 사랑한다. 시작에 감탄한다.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시작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것도 존재할 수 없고,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김덕영 지음, 다큐스토리 미디어, 2013년


* 현재 신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2> 집필과 <한국전쟁, 동유럽으로 보내진 북한 전쟁고아들>에 관한 논픽션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글이 마음에 드신 분들은 신간 출간과 프로젝트 펀딩에 힘을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후원을 해주시는 분들에게는 저자 사인이 담긴 신간을 배송해드립니다.


스토리 펀딩 링크

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19015

https://storyfunding.kakao.com/episode/4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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