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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Jun 14. 2018

속도의 신에게 바치는 선물

도전적으로 노년을 맞이한 사람들


오늘날의 노년들에게는 살아남는 것 자체가 이기는 것이다. 자신의 육체를 온전히 보전하고,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똑바로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가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시기를 열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게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고령화 시대 속에서 노년을 준비하는 일은 이제 비단 노인들만의 일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노년에 그런 고민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늦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늙어간다는 것, 혹은 노년의 지혜를 얻는 일은 그가 살고 있는 '현재'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누구나 나이를 들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현명하게 노년의 지혜를 얻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가 무엇일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는 먼 미래나 과거보다 '현재'의 순간들이 더 중요했다.


"(미래의) 우리는
(현재의) 우리가 반복하는 그것이다.
그러므로 탁월함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 Aristoteles


노년에 관한 관심, 노년을 대비하려는 노력이 지금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이유를 이보다 더 명쾌하게 설명한 사람은 없다. 그의 말에 동의한다면, 바로 '지금'부터 현재의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하루하루의 습관에 눈을 돌려야 한다. 만약 비뚤어진 습관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지금부터 고쳐 나가야 한다. 그것이 미래의 우리가 행복하게 노년을 맞이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서 모든 것을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뉴질랜드의 한적한 마을 인버카길에서 평생 평범한 인생을 살았던 버트 먼로(Bert Munro)라는 노인은 한 가지 꿈이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아끼는 1920년 생산된 '인디언 스카우트'라는 오토바이를 몰고 세계 최고의 스피드 광들이 모이는 속도 무제한 경주 대회에 참가하는 꿈이었다.


 

버트 먼로와 그가 직접 개조한 1920년 생산된 '인디언 스카우트' 오토바이


그는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오토바이 부품을 자기 손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1920년 생산된 오토바이의 최고 속력은 시속 80킬로미터밖에 나가지 않았다. 그 정도의 속도로는 속도 무제한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이었다. 쇳물을 녹여서 엔진 실린더를 만들고, 각종 부품들도 새것으로 교체했다. 서너 평 남짓한 낡은 작업실에는 침대까지 갖다 놓았다. 먹고 자고 하길 몇 달째, 결국 그의 손에 완전히 새롭게 변신한 '인디언 스카우트' 한 대가 탄생했다.


그는 그동안 실패했던 오토바이 부품들에 '속도의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숱한 좌절과 실패의 시간들을 극복하고 그는 오토바이와 함께 미국 유타 주 보너빌 소금 사막 위로 향한다. 전 세계 속도광들이 모여드는 바로 그 속도 무제한 경주대회가 열리는 곳이었다.

 

'속도에 신에게 바치는 선물', 버트 먼로가 시행착오를 거쳐 직접 제작했던 오토바이 부품들


비행기 탈 돈도 없어서 배를 타고 뉴질랜드에서 미국까지 태평양을 횡단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집을 저당 잡히고 동네 주민들이 모아준 돈을 아껴가면서 그는 여행을 계속했다. LA에서 네바다 사막을 거쳐 유타 주의 소금 사막까지 자동차에 오토바이를 매달고 이동했다. 목적지를 향한 그의 여정 자체가 그에겐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었고, 여행을 통해 그는 자신의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갔다.


목적이 있는 삶이란 게 그렇다. 누구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살아간다. 나이가 들수록 희망의 푯대는 점점 자신으로부터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목표가 분명한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힘들고 먼 곳이라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 버트 먼로에게는 평생의 꿈이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일생을 건 도전을 시작했다.


 

전 세계 속도광들이 모여드는 속도 무제한 경주 대회(미국 유타 주 보너빌)


경주 당일, 그의 오토바이가 경기장에 들어왔을 때 사람들은 모두 놀려댔다.


'저런 걸로 속도 무제한 경기에 참가하다니!'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나'


하지만 그의 1920년도 산 낡은 '인디언 스카우트' 오토바이는 무려 시속 331킬로미터의 속력으로 소금 사막을 질주했다. 1000cc 이하 급의 오토바이로는 아직도 깨지지 않는 전설적인 기록이었다.  


버트 먼로가 기록한 시속 331킬로미터의 기록은 현재도 깨지지 않고 있다


도전적인 노년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힘이 있다. 그걸 따라 배우려는 젊은이들로 세상은 넘쳐 난다. 그런 평범한 영웅들을 발굴하고 존경하는 태도에서부터 사회는 건강함을 회복한다. 그들도 할 수 있기에, 당연히 자신들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다. 런던의 '미스터 퍼펙트'가 그랬고, 뉴질랜드의 '버트 먼로'가 그런 존재들이다. 도전적인 노년을 통해 노년의 문화가 활력을 얻는다. 노년의 문화가 없기에 노년에 대한 존경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버트 먼로의 1967년 도전을 기리기 위해서 인디언 스카우트 모터사이클 컴퍼니에서는 작년 '50주년 이벤트'를 벌였다.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최고의 매카닉들과 기술력을 총동원해서 최고의 오토바이 한 대를 만들었다. 그들은 그 오토바이에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


'Spirit of Munro'
(먼로의 정신)
최고의 기술진들이 모여서 만든 '먼로의 정신'이라는 이름의 오토바이.


버트 먼로의 도전적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겠다는 각오로 그들은 최고의 오토바이에 'Spirit of Munro(먼로의 정신)'라고 이름을 명명했다.


속도 무제한 경주 대회의 전설적인 존재가 된 버트 먼로


도전적인 노년은 모두 사소한 일상에서 시작되었다. 삶이 복잡하고 혼란스러울수록 '일상'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것도 철저하게 남을 위한 일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일상이어야 한다. 미국에서 킨포크(Kinfolk)족이 늘어나건, 일본에서 작고 단순한 것에 열광하는 단샤리(斷捨離) 열풍이 불건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그저 내가 여기에 있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는 작은 도구들 몇 가지만으로도 미래는 준비될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결정 장애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어쩌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서 고르기 쉽지 않은 것은 아닐까? 선택할 것이 많으면 당연히 갈등은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기 전에, 선택할 갯수부터 줄여나가는 것이 현명한 것은 아닐까? 뭐가 됐든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도전적인 노년이 결국 도전적인 미래를 얻는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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