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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Sep 06. 2018

그릇이 다르면 자라는 것도 다르다

너무 당연해서 스치고 지나쳤던 일상의 소중한 발견들 

몇 달 전 일이다. 동네 트럭에서 화분을 팔았다. 경복궁 근처 서촌에 자리 잡은 우리 가게 근처에는 수도권 인근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이 트럭을 몰고 와서 장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그렇게 흙 묻은 농부의 손길이 깃든 화분들을 만져 보며 도심 한가운데에서 시골 냄새를 맡는 재미가 있다.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경복궁 담장 옆을 지나 숨겨진 골목길들 사이로 산책을 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생활을 터를 잡고 그렇게 5년의 시간을 보냈다. 일종의 도심 속 전원생활이라고나 할까.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느낄 수 없는 낡은 골목길의 정취다. 그날도 그렇게 골목길 어귀에 트럭을 대고 화초를 팔던 농부에게서 화분 두 개를 샀다. 한 날 한 시에 산 두 개의 화분이었다. 


한 날 한 시에 샀던 애플 민트 화분 두 개

서울의 한 복판에서 작은 마당이 있는 공간을 까페와 와인바로 개조했다. 답답한 도심을 벗어나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공교롭게도 도심 한가운데에서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요즘엔 이곳도 떠나는 사람이 늘면서 광화문 한복판에는 일종의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낮이면 직장인들로 북적이던 거리도 밤이 되면서 적막한 고요함이 깔린다. 도심 속 한가운데 섬이라도 하나 들어서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그런 생활이 좋았다. 어쩌면 회색빛 도심 빌딩 사이에서 살았다면 1년도 버티기 힘들었을지 모를 일이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가게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와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힘들고 짜증 나는 일이 많아질수록 마당으로 나오는 횟수도 자연히 늘어난다. 누가 뭐래도 나만의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을 갖는다는 것은 생활의 축복이 분명하다. 그런 작은 마당이 주는 기쁨이 고마워서 흙을 깔고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햇살이 좋아서였는지 화분들은 씩씩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그래서 몇 달 전부터는 마트에서 퇴비와 사이즈가 큰 화분 몇 개를 사서 작은 화분들을 분갈이했다. 아마 그때였던 것 같다. 분갈이를 하다가 개수를 못 맞춘 작은 화분이 하나 있었다. 다른 녀석들은 큰 화분들로 바꾸었지만 그날 작은 화분 하나만 분갈이를 못하고 그냥 원래대로 텃밭 옆에 두었던 기억이 난다.


두어 달 정도 지났을까. 마당에서 화분에 물을 주던 임대표가 밖으로 나와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일까', 허겁지겁 밖으로 뛰어나갔다. 낯선 화분 두 개가 임대표의 손에 들려 있었다. 한 날 한 시에 샀던 바로 그 두 개의 화분이었다. 


"이거 기억 나? 같은 날 산 화분인데, 어쩜 이렇게 다르게 자랐을까......" 


모르고 있던 사이 화분은 부쩍 자랐다. 둘 다 자라긴 했으나,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준 화분의 성장이 훨씬 빨랐다. 물론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다. 물고기는 큰 물에서 놀아야 하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야 한다던 옛 어른들 말씀이 떠올랐다. 그런데 가끔은 직접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나서야 그 실체를 실감하는 경우들이 있다. 너무 당연해서 스치고 지나쳤던 일상의 소중한 발견들이다. 



'이렇게 작은 화분도 그럴진대 하물며 사람은 오죽할까.' 


순간 그런 생각이 스쳤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은 큰 물고기가 자라는 큰 물인가 아니면 작은 물인가? 부모들이 더 큰 사람을 만들겠다며 고생 고생하며 서울로 보냈던 바로 그 서울은 큰 사람을 만들고 있는 걸까? 잘 사는 것은 무엇이며, 모두가 그렇게 잘 가고 있는 것일까? 


서로 다르게 성장한 두 개의 화분을 놓고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화분 하나 앞에 놓고 별별 생각을 다한다고 뭐라 그럴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날 두 개의 화분은 일상의 작은 행복과 가치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며칠이 지났다. 


"글쎄요. 우리 조카가 말이죠. '삼촌, 골목길이 뭐야?' 하고 묻는데 갑자기 할 말이 없더라고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주 가게를 찾아주는 단골손님에게 와인을 서빙하다 일어난 일이었다. 때로는 아무 생각 없이 관습적으로 행동하다가 뭔가에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멍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날도 그랬다. 두 개의 화분 때문에 벌어졌던 작은 소동이 벌어진 지 한두 주 정도 지난 어느 날이었다.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도시는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걷는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져야 한다.' (제인 제이콥스)


'삼촌, 골목길이 뭐야?'라는 질문 하나. 그래, 하긴 그럴 법도 하다. 아파트 단지에서 길은 그저 차도와 인도일 뿐이다. 당연히 골목길 같은 것이 있을 리 없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학교 주차장까지, 비가 와도 비 한 방울 맞을 일 없는 요즘 아이들에게 놀이터는 있어도 공터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골과 목이 합쳐져 만든 골목길을 위해선 반드시 두 개의 공간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는 고을(동네)과 골짜기처럼 하나로 모아지는 작은 길들이다. 층층이 쌓아 올려진 아파트나 높은 빌딩 같은 건물들 사이에선 층과 층 사이가 골목을 대신한다. 생활의 구조가 이미 골목길과 거리가 멀다. 게다가 언제부턴가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적어도 4미터 넓이의 길을 확보하지 않으면 법적으론 불법이다. 차가 양쪽에서 다닐 수 있기 위해서 만든 4미터의 폭이 1,2미터짜리 작은 골목길들이 사라진 원인 중의 하나라면 지나친 과장일까. 


1962년에 시행된 건축법은 도로를 ‘폭 4m 이상’이라고 정의했다. 1975년 개정된 법은 여기에 ‘차량이 다닐 수 있는’이란 문구를 추가했다. 당연히 법에 따르면 차가 다닐 수 있는 4미터 길 위에만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렇게 50여 년 세월히 흘렀다. 길은 넓어졌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도 그만큼 멀여져 갔다. 골목길이 하나 둘 자취를 감춘 채 사라졌다. 더 넓게 더 빠르게 살기 위해서 우리가 만든 길의 정의가 어쩌면 골목길들을 사라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 


그것이 두 번째로 발견한 너무 당연해서 스치고 지나쳤던 일상의 소중한 것들이었다. 작은 화분 두 개도 그렇고 작은 골목길도 그렇고, 그동안 그런 당연한 것들이 지니는 소중한 가치를 왜 잊고 살았을까. 잠시 생각을 가다듬었다. 결국은 자연의 법칙이나 일상의 가치들은 잊고 지냈던 것을 다시 일깨워주는 힘이 있다. 살아 있는 존재들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성찰의 도구들이다. 그래서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재미 삼아 두 개의 화분을 골목길 위에 놓았다. 적어도 서촌의 작은 골목길 안쪽에선 여전히 이웃집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난다. 길이 작으니 당연히 옆집 냄새, 소곤거리는 옆집 소리도 골목길 안쪽으로 쉽게 퍼진다. 아파트의 층층 사이에서 벌어지는 소리와 냄새의 갈등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인간적이다. 그렇게 골목길 한쪽에서 자리를 잡고 작은 가게를 열고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내 인생 가장 가치롭고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이제 나도 큰 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더 큰 화분으로 분갈이도 하고...' 



여기까지 쓰고 대충 마무리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가끔은 서촌의 골목길 가게엔 늘 그렇지만 '짠' 하고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바람처럼 스치는 사람들이다. 당연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나에게 그가 남기고 간 질문은 한 번쯤 같이 공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걱정이에요." 


남들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한 아이에 관한 이야기였다. 톡톡 튀는 성격, 시키는 대로 하기보다는 자기 좋은 방식으로 세상을 살려는 아이였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선생님 말 잘 안 듣는 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나 선생님 말 잘 안 듣는 아이는 있었다. 나 역시 하라는 대로 하기보다는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면서 살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나에겐 그런 아이들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동질감이 느껴진다. 문제는 그런 아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과연 우리가 얼마나 큰 화분을 준비하고 있는가의 문제다. 


"선생님 말 잘 안 드는
아이가 나쁜 아이는 아니잖아요?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게
벌 받을 일은 아니잖아요?" 


자식 걱정은 누구나 한다. 우연히 두 여성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엿듣게 됐다. 자식 교육 때문에 걱정하는 엄마들의 대화였다. 그런데 그날 들었던 이야기 때문에 며칠째 잠을 설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잠시 그들의 대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선생님은 우리 아이가 자꾸 말대꾸하고 이상한 질문만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수업 진행이 안 되고, 다른 애들 방해를 한다는 거죠."


요즘도 여전하구나.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몇 번은 있다. 쓰디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별로 기분 좋지 않은 교실의 추억들이다. 친구도 별로 없고 존경할 선생님도 별로 없었다. 늘 방해만 하는 아이였던 나는 교실에선 악역이었다.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기억 밑바탕에 놓여 있던 숨겨져 있던 상처가 되살아났다. 


"우리 아이가 감성적이고 예민하고 그런 아이란 것은 알아요. 그런데 그런 애들도 잘 기우면 창의적으로 자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교실에선 그런 애들이 골칫덩이 문제아가 되어버려요. 아이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말할 수도 없고..."


원래 아이들 중에는 현실 감각이 뛰어난 아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 감성적인 아이가 있고 논리적인 아이도 있다. 선생님 말 잘 듣는 아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도 있다. 알록달록 그런 다양한 색깔들이 모여서 무지갯빛 다양한 색깔들로 그림을 그릴 준비를 하도록 만드는 것이 학교의 역할이라 나는 믿는다. 그런데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그녀의 이야기가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결국 수업 끝나고 교무실로 오라고 했나 봐요. 그런데 여기서 사달이 났어요. 아이는 분명히 갔다고 해요. 그런데 선생님이 없었다는 거죠. 아이 얘기는 그래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다음 날 아이를 불러서 따졌답니다. 아이는 분명 갔다고 하는데, 선생님은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 같았나 봐요. 그래서 CCTV를 확인해 봤다네요. 기가 막혀서... 결국 아이가 교무실 문 열고 들어와서 자리에 선생님이 없는 것 보더니 나간 건 그렇게 확인이 되었죠."


CCTV? 교실로 부른 아이가 진짜 왔는지 안 왔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CCTV를 돌린다? 글쎄. 이건 무슨 범죄의 증거물을 찾는 것도 아니고. 꼭 그렇게까지 CCTV로 아이의 말을 확인해야 했을까. 우리의 교실에서 학생과 스승의 관계가 믿음과 신뢰가 아니라, 왔는지 안 왔는지를 확인하는 CCTV 화면으로 결론을 내려야 하는 지경까지 왔다는 사실이 못내 씁쓸했다. 관점에 따라서는 뭐 대수롭지 않은 논란거리일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일이 벌어졌다. 


"선생님 말은 그래요. '아니, 선생님이 불렀는데, 아이가 십 초도 머물지 않고 그냥 나가버리는 게 정상인가요?' 그래서 선생님 말이 맞는지, 아이 말이 맞는지 그걸 교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 앞에서 토론을 하고 표결에 부쳤다고 합니다. 죄인처럼 우리 아이를 앞에 세우고 말이죠."


자.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의 의식의 흐름이 개인을 중심으로 하기보다는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집단이 검증한 기준 속에 개인이 억눌리는 상황이라고나 할까. 일단 그날 교사의 불만과 문제 제기를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너희들 같으면 선생님이 교무실로 불렀는데 선생님이 자리에 없으면 어떻게 하니? 선생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겠니, 아니면 그냥 가버리겠니? 보통은 기다리는 게 정상이 아닐까? 그런데 앞에 서 있는 이 아이는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하는구나. 너희들 생각에 누가 더 옳은 것 같니?" 


교실에서 일종의 인민재판(?) 같은 게 벌어진 셈이다. 정말 대단한 교사다. 그런 이슈를 아이들 앞에서 공론화시키는 것이 토론 교육이라고 생각하니 말이다. 나에겐 그저 인격 살인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공개된 장소에서 모욕을 주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는 비교육적인 일이다. 안과 밖이 다르듯이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에는 구분이 필요하다. 그걸 구분하지 못하는 교사의 이기적인 선택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교사가 결론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토론을 하자고 하는데, 도대체 어느 아이가 '선생님이 틀렸어요!'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교실에서 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교사가 아닐까. 선생님을 기다리지 않고 가버린 아이의 행동을 비정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도대체 뭘까. 설사 아이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반항을 했다고 해도, 둘 사이에 벌어진 일을 교실에서 공개적으로 표결에 부칠만큼 가치로운 토론 주제였을까. 그리고 그렇게 다른 아이들의 힘을 얻어서 논쟁에서 이겨서 기분이 좋으신가?!


그래. 물고기는 때가 되면 더 큰 바다로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성장이 있다. 과연 우리 교실은 더 큰 물인가. 잘 모르겠다. 때로는 선생님 말 안 듣는 반항적인 아이들이 독선의 틀을 깨고 창의적인 성인으로 자라날 수도 있는 법이다. 오히려 권위에 도전하는 그런 반항아들을 통해서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교실이 법정이 되고, CCTV를 통해 옳고 그름을 가리는 공간이 되고 있다. 과연 이 이야기는 아주 특별하고 특수한 예외적인 이야기일까. 과연 지금 우리 교실은 큰 화분들로 분갈이를 해주고 있는가. 시기를 놓쳐 더 큰 아이들로 성장할 수 있는 아이들을 작은 화분 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끊임없이 물음표가 발 밑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날 밤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 말 한마디 못했지만, 이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교실은 옳고 그른 것을 찾는 곳이 아니다. 틀린 것, 다른 것, 심지어 잘못된 것들 속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생각이 많은 아이들이 질문도 많다. 세련되지 못한 질문 몇 개로 아이들을 반항아로 낙인찍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질문 많고 때론 반항도 할 줄 아는 도전적인 아이들이 틀렸다 말하지 않는 사회가 더 큰 화분을 준비한 사회인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역시 그릇이 다르면 자라는 것도 다를 수밖에 없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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