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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덕영 Nov 20. 2019

막힌 길은 없다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19)

얼마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유럽에서 다큐멘터리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하기 위해서 나는 베트남 하노이를 선택했다. 저렴한 인건비, 손놀림이 좋은 숙련된 편집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선택한 결정이었다. 좁은 우물 안에서 벗어나서 세계를 무대로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여행의 중간 기착지라고나 할까. 아무튼 낯선 곳에 머물며 도전적으로 중년의 새로운 인생을 삶을 살아보겠다는 다짐 덕분에 시작한 일이었다.  


베트남 하노이의 까우저이의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한 달 동안 쓸 수 있는 집으로 구했다. 35평 정도의 아파트에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까지 모두 70만 원 정도 내고 구한 집이었다. 20층 건물의 고층에 자리 잡고 있어 하노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도 그곳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다. 다만 한 가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바로 길이었다. 


까우저이(Cầu Giấy) 주변에는 대학들이 많다. 하노이 사범대학을 비롯해서 하노이 연극영화대학교, 하노이 상업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다. 젊은 대학생들이 많다 보니 스마트폰과 옷가게들이 즐비해서 젊은이들을 위한 쇼핑의 거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품질에 비해서 가격도 저렴하고 취향에 맞는 세련된 디자인의 옷들이 이 많아서 경제적인 쇼핑을 하려는 사람들로 까우저이는 늘 북적인다. 


하노이 시 전체를 를 놓고 보면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호안끼엠이나 서호 같은 구시가지와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미딩 지역의 중간쯤에 위치한 지역이다. 당연히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하루에도 수천 대의 자동차들과 오토바이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까우저이 대로를 이용한다. 베트남 생활을 해본 사람은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숙소가 됐든 자동차 안이 됐든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평범하다. 하지만 그곳이 어디든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면 푹푹 찌는 더위와 습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매연 등으로 대기오염이 심각해서 불편할 때가 많다.


베트남 하노이 까우저이 대로


까우저이 대로 위로는 현재 경전철 고가도로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길과 나란히 일직선으로 뻗은 고가도로가 수십 킬로미터로 이어지고 있다. 교통의 흐름을 위해서는 효율적인 선택일 수 있겠지만, 생활환경이라는 측면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함을 초래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까우저이 대로 양 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고층건물들이 병풍이라면 공사가 한창인 고가도로는 도로를 덮고 있는 지붕이다. 그렇게 건물과 고가도로가 길을 막고 있어 까우저이는 먼지와 소음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다. 선진국의 도시들이 걷기에 편하고 즐거운 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아직 베트남의 도시 구조는 갈 길이 멀어 보이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처음에 이곳을 숙소로 정하고 나서 며칠 동안 머리가 아팠던 것도 그런 이유였던 것 같다. 게다가 아직 교통질서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한 탓에 베트남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약간의 모험도 필요하다. 횡단보도가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그걸 이용하기 위해서 길을 돌아서 가는 사람은 없다. 베트남 사람들이 덥고 숨 막히는 공기 때문에 '3보 이상을 걷지 않는다'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곤 하는데, 사실 그 말이 지나친 과장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까우저이 대로에서 예쁜 옷가게를 찾아서 길을 건너려면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질주하는 3차선 도로를 크게 손을 휘저으며 걸어가야 한다. 어떨 때는 자동차와 버스와 오토바이들이 뒤엉킨 좁은 공간을 이리저리 피하면서 건너야 하는 아찔한 순간도 경험하게 된다. 그래도 그렇게 한 달 정도 길을 횡단하기 시작하면 나중엔 10차선 도로에서 무단 횡단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가 된다. 인간이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 속에 인간 또한 적응한다는 말이 딱이다. 


하노이 까우저이 대로 주변 풍경


그렇게 베트남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자마자 나의 오랜 습성 하나가 발동되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가면 늘 어느 곳이나 내가 머물고 있는 곳에 대한 정보를 정확히 알아내고 싶다는 호기심 같은 것이다. 단순히 위치 정보에 국한되지 않고 머물고 있는 지역 주변에 대한 역사와 인문지리적인 정보까지 아우르는 물불 안 가리는 지적인 호기심이다. 


그걸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관광버스에 가만히 앉아서 여행지를 옮겨 다니거나 택시 같은 것을 타고 돌아다니면서 충족될 수 없는 정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선택하는 일은 지도 하나 달랑 들고 무작정 골목길을 배회하는 것이다. 길을 잃어버린 다음 다시 원하는 목적지를 찾아내는 일종의 공간에 대한 복원력을 키우는 훈련 같은 것이다. 예전에는 종이로 된 지도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방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면 길을 잃기 십상이었다. 


몇 년 전 고대 그리스의 순례자들이 다녔다는 길에서 몇 시간을 헤맸던 적이 있는데, 그때가 딱 그랬다. 게다가 지도에도 없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겠다는 일종의 오기 같은 게 발동해서 지도조차 보지 않고 무작정 본능에 맡겨서 길을 간 적도 있다. 물론 덕분에 작열하는 퇴약볕 아래 그늘 한 점 없는 길 위에서 거의 탈수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다행히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짠 하고 천사 같은 사람들이 나타나 준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철없고 겁 없을 때 이야기다. 


어쨌든 요즘엔 세계 어딜 가나 구글맵 하나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게다가 내비게이션 기능까지 있어 그냥 애플리케이션에서 가리키는 방향대로 길을 걷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올해 초 시작한 유럽 취재 때도 대부분의 나라에서 구글앱 덕분에 길을 잃지 않고 목적지에 쉽게 도착할 수 있었다. 귀국 후에 한국에서 구글앱의 내비게이션 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좀 어리둥절했다. 소위 IT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전 세계인들이 사용하는 구글 앱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삶이 정말 제대로 발전하고 있는 것인지, 세계적인 추세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어쨌든 그날 나는 보통의 관광객들은 잘 하지 않는 하노이 시,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까우저이 안쪽 골목길로 들어가서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목적지로 정한 곳은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대형 마트로 정했다. 지도 상으로는 내가 위치한 곳에서 서쪽 방향으로 고작 3,400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베트남 골목길은 큰길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딴 판이다. 구불구불 돌고 도는 미로 같은 길들이 이어진다. 길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폭이 점점 좁아지고, 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들도 많다.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낯선 가게나 상점들이 등장할 때도 많다. 심지어 권투 연습장이나 당구장도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쌀국수나 닭고기를 잘게 썰고 고치에 끼워서 불에 구운 요리를 파는 식당들도 있었다. 보통 장사를 하기 위해서는 큰길을 찾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지만, 골목길에는 의외로 많은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방인의 눈에는 '여기서 이런 가게를 열고 장사를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건 골목길 안쪽의 사정을 잘 모르는 나 같은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소리다. 


베트남 전통적인 주택들은 대부분 4층으로 지어져 있는데, 사회주의 시절 정부가 가정에게 무상 혹은 저렴하게 공급한 공동주택의 형태다. 작은 면적에서 땅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집과 집 사이에는 따로 벽이 없는 경우도 있다. 그냥 남이 지은 집들 사이에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면, 그 위에 지붕을 얹어서 집을 짓는다. 4층짜리 건물의 층간 구조물만 서면 바로 하나의 완벽한 집이 된다. 공기를 단축하고 건축 비용을 아낄 수도 있는 장점도 있다. 물론 벽이 두텁지 않다 보니 옆집 소리가 그대로 들여오기도 한다. 우리네 아파트의 층간 소음처럼 옆집 소음이 그대로 전달되기도 한다. 밀집된 형태의 경제적인 집단 도시 주거 형태가 탄생할 수밖에는 구조다. 

하노이 밀집 주택 구조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 별도로 벽을 만들지 않는다

골목길 안쪽에 오토바이들이 질주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가장 중요한 이동 수단이라서 심지어 오토바이를 거실까지 들고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밀집화된 주택들이 늘어서 있다 보니 주차장이 따로 없다. 단속 때문인지 아니면 베트남 사람들의 오토바이 사랑 때문인지 집 앞에 아무렇게 방치된 오토바이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나에게 여행에서의 재미는 두 발로 낯선 길을 찾아가는 것이다. 모르는 길을 들어서 방향만으로 길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라고나 할까. 그날도 그렇게 까우저이 골목길을 탐험했다. 문제는 골목길의 형태가 방향 감각을 무디게 한다는 점이다. 구조 자체가 워낙 구불구불하고 미로처럼 생긴 탓이다. 분명 숙소에서 직선거리로 몇 백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어야 할 마트가 10분을 걸어도 나타나지 않았다. 골목길들이 계속해서 또 다른 작은 골목길들로 나뉘고 갈라지기 때문이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기분이라고 할까.  


결국 그렇게 작은 골목길들을 걷다 순간 동서남북 어디가 어딘지 방향을 잃어버렸다. 여전히 작은 골목길 사이로 오토바이들을 계속 질주하고 동네 곳곳에 주인도 없는 개들이 어슬렁거리며 배회한다. 순간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천둥 번개까지 쳤다. 열대지역에 자주 있는 지역성 호우, 스콜까지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굵은 빗줄기 때문에 골목길은 순식간에 빗줄기 커튼이라도 쳐진 것처럼 묘한 분위기로 변했다. 어둠이 내리는 까우저이 골목길에서 완벽하게 길을 잃은 것이다. 그리고 의심과 함께 불안감이 밀려왔다. 분명 어디선가 방향을 잘못 잡고 지나친 게 분명했다. 아니면 아예 길이 없거나.  


문득 베트남 전 당시 미군들이 전투에 나갈 때마다 불안과 공포를 느꼈다는 예전에 읽었던 신문 기사가 떠올랐다. 베트남 전이 한창일 때 베트콩들은 땅을 파고 그 안에 작은 생활공간을 만들었다. 그런 거미줄 같은 동굴을 통해 베트콩들은 미군들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기습 공격을 했다. 문제는 땅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워낙 작아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입구가 너무 작아서 열 살짜리 아이가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크기였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수 백 명이 기거할 수 있는 생활공간까지 마련된 널따란 크기의 방들이 나온다. 그곳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은 작은 실핏줄 같은 동굴들을 따라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구조다. 베트남전 때 미군이 기습 공격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베트남전 당시 베트콩들이 파놓았던 땅굴 입구, 일명 'Tunnel Rats'로 불렸다.


베트콩들이 파놓았던 땅굴들을 보면 베트남인들의 끈질긴 저항 정신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지하 땅굴의 작은 미로들은 베트남인들에게 낯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들의 생활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작은 골목길들이 미로처럼 이어지고 연결되면서 그들은 그 작은 골목길을 통해 어디에나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길에 처음 들어선 이방인에게는 낯설기만 한 곳이다. 방향 감각을 상실하게 만들 정도로 어지러운 구조다. 


하노이 까우저이 작은 골목길에서 느낀 당혹감은 차츰 베트남인들의 기질과 생존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이기도 했다. 오랜 외세의 식민지였던 베트남 땅 곳곳에는 이방인들이 쉽게 들어설 수 없는 베트남인들의 저항의식이 숨겨져 있다. 골목길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그들만의 생활공간을 보호하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져 있다. 들어올 수는 있지만, 쉽게 나갈 수 없는 길이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방황하다 보면 일종의 공포가 엄습해 온다. 베트남인들이 오랜 식민지 전쟁에서도 결코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의 근원이 바로 이런 작은 골목길에 숨겨져 있었다.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베트남 땅굴에는 심지어 탱크를 숨겨놓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막상 길을 계속 걷다 보면 막혀 있는 길은 없었다. 어떻게든 길은 또 다른 길로 연결되고 있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계속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어쩌면 외부에서 들어온 낯선 이방인들에게 이런 불안함 심리를 안겨주기 위한 목적에서 그렇게 그들만의 길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잃어버린 길에서 길을 찾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들의 시선으로 길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방인이 아니라 길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마음을 바꾸고 다시 길을 바라보는 방법이다. 


까우저이 미로 같은 골목길에서 하노이 사람들처럼 시선을 바꾸자 없었던 길들이 보였다. 길을 구불구불 미로처럼 휘어 있지만, 막힌 길은 없었다. 단지 좀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수고가 많아졌을 뿐이다. 그렇게 낯선 길을 걸을 때는 희망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길을 걷는 그 과정을 즐기면 된다. 나의 경우에 권투 경기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는 미래의 챔피언을 꿈꾸는 베트남 청년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것도 작은 골목길이 준 행운이었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매만지는 중년 부인의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삶에 지쳤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끈끈한 생명력을 느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아이들의 하얀 교복을 입은 모습과도 만났다. 베트남인들은 집이나 가게 안에 작은 불단을 만들고 향을 피우며 매일 하루 두 번 이상 절을 한다. 우리네 불교와 조금은 다른 모습인데 조상신에게 건강과 재물을 기원하는 모습이란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모든 것은 작은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경험들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머물고 있는 곳에서 삶의 교훈을 얻었다. 삶이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이어지듯 삶은 계속된다. 하노이 까우저이의 작은 길들도 들어가면 갈수록 모르는 길들이 이어지고 불안감도 엄습하지만, 그 길에서 평범한 베트남 사람들의 일상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시선을 바꾸면 세상은 달라 보인다.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불안감을 잊게 해 준 것은 그런 작은 일상의 즐거움이었다. 비록 시간은 더 걸리고 다리는 아팠지만 결국 목적지로 정했던 마트는 눈앞에 나타난다. 막힌 길은 없다. 다만 길을 조금 더 걸어야 한다는 수고스러움이 있을 뿐이다. 수고를 덜기 위해 자동차를 타고 빨리 달릴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그렇게 작은 길 속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낯선 순간들도 경험하며 살고 싶다. 그런 낯선 경험이 어쨌든 뭔가 새로운 감각을 깨워준다고 믿는다. 그것이 낯선 것이 주는 또 다른 축복일 것이다. 


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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