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vs 한국, 노벨상 수상자 스코어
축구 '한일전'에서는 한 골 차이로 패배해도 하루 종일 우울해하고 있지만, 노벨상에서는 20대 0으로 지고 있는데도 '그저 그러려니'하면서 당연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게 진짜 당연한 일일까? 결코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시급한 문제다.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회는 결코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없다. 힘 있는 사람은 힘이 있으니까 당연히 굴복해야 하고, 돈 많은 사람은 돈 많은 게 당연하니까 그 돈 앞에 무릎을 꿇는다. 정말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싶은가? 어차피 세상은 당연한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끌어져 왔다. 세상의 중심에 서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물음표를 갖다 대야 한다. 그게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작이다.
다시 노벨상 얘기로 가서, 도대체 무엇이 과학 부문에서 20대 0의 차이를 가져오고 있는 것일까? 일본에서 처음 노벨상 수상자가 나온 해는 1949년, 수상자는 유카와 히데키라는 당시 교토대학교 물리학 교수였다. 그를 필두로 해서 2015년까지 모두 20명의 과학자들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문학상과 평화상까지 합치면 모두 23명으로 차이는 더 벌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유카와 히데키가 노벨상을 탄 이유인데, 원자핵 내부의 양성자와 중성자의 상호작용에 매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간자의 존재를 밝혀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핵폭탄으로 나라가 두 동강이가 날 지경까지 이르렀던 패망 일본에서 불과 4년 만에 핵물리학으로 세계를 제패한 거나 다름이 없다. 유카와 히데키에게는 고등학교와 교토 제국대학을 함께 다닌 동창생 친구가 있었다. 또 하나의 일본이 자랑하는 물리학자 도모나가 신이치로라는 인물이 바로 그다. 둘은 서로 다른 연구 방법과 기질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물리학의 세계에서 경쟁자이자 친구로서 함께 같은 길을 걸었다. 경쟁자를 누르는 것만이 자신이 살아남은 비정한 세계에서 끝까지 과학으로 멋진 승부를 펼치려 했던 진정한 라이벌들이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과학자의 눈으로 과학과 기술을 바라볼 자신은 없다. 다만 난 인문학 전공자이고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문학의 눈으로 과학과 기술을 바라보려 한다. 인문학 전공자의 눈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것이 어쩌면 과학자의 눈으로 과학을 바라보는 것에서 보지 못한 것을 발견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과 나(me)'의 문제이다.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 기술사회에 포지셔닝하고, 즐겁고 재밌게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의 세계로 접근하는 것이 '나'에게 절실한 문제다. 어차피 기술을 무시하고는 개인의 삶이 윤택해질 수도 없다. 비즈니스는 물론이고 예술과 문화 영역에서 활동하려고 해도 '기술'을 제대로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기술과 나(me)'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현실적인 과제로 남는다.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을 분석한 기사나 자료들을 면밀히 살펴보면 몇 가지 특징이 나온다. 우선 일본 특유의 '잇쇼켄메이(一生懸命)' 정신을 들 수 있다. 한 마디도 '일생일대의 목숨 걸고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장기적인 불황 속에 들어가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하기 시작했을 때, 일본 언론에서 가장 많이 등장시켰던 개념이 바로 '잇쇼켄메이'였다. '너나 나나 목숨 걸고 하자'
그런데 이런 일본의 '잇쇼켄메이'는 우리도 갖고 있지 않은가? '죽기 살기로 하자'. 공부가 됐든 운동이 됐든, 우리는 늘 '죽기 살기로 하자'라는 말을 한다. '열심히'라는 단어보다는 왠지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분명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다. 그렇다면 그런 뭔가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경지에 오르고 싶다는 개인적인 열망은 일본이나 한국이나 다를 게 없는 게 아닐까. 아니 사실 그건 누구나 갖고 있는 보편적인 욕망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20대 0의 차이를 가르는 기준점일까?
우선 일본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학교 별로 분석한 자료가 첫 번째 답을 제시해준다. 20명의 수상자들 가운데 명문대를 나온 사람은 도쿄대(6명)와 교토대(4명) 정도를 빼면 나머지 절반 정도는 소위 '무명 대학' 출신들이다. 전통적으로 봉건주의 문화에 길들여진 탓에 일본에서는 자기 역할에 대한 경계가 분명하다. 이건 일본의 '오타쿠'를 낳은 사회문화적 배경이다.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인재가 될 수 있도록 누구도 간섭하거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한다. 철저한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결국 실력 있는 인재가 중앙은 물론이고 지방 곳곳에서 자라날 풍토가 마련될 수밖에 없다. 자기가 갖고 있는 기술 하나만으로도 자기 분야에서 만족스러운 삶이 보장된다. 구태여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해가면서 누군가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다. 관계나 형식이 중요시되는 우리 사회와는 뭔가 다른 구석이 있다.
일본의 첫 번째 노벨상 수상자였던 유카와 히테키의 경우에도 노벨상을 탄 이후에 반핵 운동과 평화 운동에 자발적으로 헌신했다. 미국과 소련의 수소폭탄 경쟁이 심화된 1955년에는 아인슈타인과 영국의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핵무기 폐기를 호소하며 결성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에도 참여할 정도로 핵의 평화적 이용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다. 남 눈치 안 보고 자기 스스로 자신의 연구와 인생을 결정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결국 난 이 모든 출발점이 '기술과 나(me)'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얼마나 보람 있게 내 일을 즐길 수 있느냐의 문제가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 속에서 나를 규정짓는데 익숙한 우리의 사고방식에서는 기준이 '나'가 아니라 '타인'이 된다. 남이 갖고 있는 것, 입고 있는 것, 사는 것이 기준이 되다 보니 그것에 맞추어야 '나'에게도 만족스러운 삶이 느껴진다. 주객이 전도된다. 이런 '타인'에 맞춰진 삶이 아이들의 교육현장으로 내려가면 좀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남의 집 아이가 하니까', '왜 넌 쟤보다 못하니?!'. 결국 입시용 문제 풀이가 인생의 목적이 된다. 자발적으로 형성된 근본에 대한 호기심, 현상이 아니라 원리에 대한 탐색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거기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닐까. 이건 '나' 스스로 공부하고 원리를 깨우치면서 얻어내는 기쁨을 빼앗는 결과를 가져온다. 재미가 없는데 지속적인 탐구가 이뤄질 리 없다. 일본이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낼 만큼 과학기술 영역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형성된 근대적인 '기술과 나'의 위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성공의 기준이 타인이 아니라 '나'에게로 이동해 있다.
결국 우리가 갖고 있는 '성공의 기준'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오류는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과학과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가치관의 문제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나만의 영역을 즐길 수 있도록 성공의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수많은 '나'에게 자유의 문을 열어주어야 한다. 정부의 투자나 노벨상 후원회 같은 기관의 지원 사업만으로 한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꽃이 피지도 않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사과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나무에 꽃을 피우는 일, 그건 비바람 속에서도 홀로 설 수 있도록 대지를 고르고 바람막이를 세우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꽃도 피지 않은 나무에 올라간다고 나무에 열매가 열리는 건 아닐 테니까.
다음 시간에는 독일 유소년 축구와 우리나라 유소년 축구가 맞붙었던 2006년도 레버쿠젠 '17대 0'의 전설적(?)인 이야기에 관해서 쓸 계획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지은이: 김덕영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저자 / 다큐멘터리 PD / 서촌의 복합창조문화 공간
'김PD의 통의동 스토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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