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통의동 다이어리

종로구 통의동 작은 골목길에서의 기록

by 김덕영

'가게 문을 닫고 30분'


원래는 '마지막 30분'이라고 부제를 달려고 했다.

근데 써놓고 보니 무슨 인생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최후의 순간 같은 분위기가 느껴져서 지우고 다시 쓴다.


이 글에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현재 나의 롤모델은 하루키다. 내가 그를 문학의 롤모델로 삼은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도쿄의 뒷골목에서 재즈바를 운영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도 7년씩이나! 난 이제 겨우 2년인데. 7년이란 숫자가가 주는 압박은 2년 동안

와인바를 직접 운영해 본 뒤에야 더욱 묵직하게 다가왔다.


하루키는 전업작가로 나서기 전까지, 아마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그 재즈바에서 구상되고 쓰여졌으리라, 줄곧 재즈바를 운영하며 생활했다.


내가 막상 와인바를 오픈하고 2년 정도를 지내다 보니까 작가가 재즈바를 운영한다는 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낭만은커녕 어디가서 차분히 뭔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사색적인 시간조차 쉽게 갖기 힘들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찾아온 손님들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손님들을 기다리는 것에도 일종의 묘한 서스펜스가 있다. 없으면 불안하고 있으면 긴장되고...


오죽했으면 내가 장편 소설 <내가 그리로 갈게>를 쓸 때는, 자리 옆에 작은 사이즈의 안내 표지판도 하나 만들 정도였다.


안내 표지판에는 이렇게 써있었다.


'I'm sorry, I'm writing.'


그래도 우리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이 착한 편이라서 그걸 보고 뭐라 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다. 그 안내표지판 속에는 사진도 하나 들어 있었다. 그게 바로 오늘의 주인공 하루키였다.


그래서 문장을 정확하게 완성시키면 이렇다.


'Becoming Haruki...!

I'm sorry, I'm writing.'

'하루키가 되자..!

미안합니다, 글쓰는 중이라서...'


아무튼.


새벽 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손님들의 애환과 기쁨을 술잔으로 함께 했던 하루키에게 그곳은 세상으로 열려진 창이었다. 그는 그곳을 통해서 사람들의 삶 속에 숨겨진 은밀한 구석구석을 들여다 봤으리라. 그럴 때마다 마치 중세의 어느 시골 마을 성당에 고해성사를 받는 사제의 심정이지 않았을까.


별로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런 하루키의 재즈바 경영에는 한 가지 흥미로운 원칙이 있었다. 사실 그게 나의 가슴을 쳤다.


'난 늦은 새벽까지 재즈바를 운영한 뒤에, 온갖 손님들의 뒷치닥거리를 다 한 뒤에, 가게 문을 닫고 30분 동안 글을 썼다. 피곤해서 쓰기 싫은 날도 있었고 쓸 말이 없어서 쓰기 싫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게 문을 닫고 마지막 30분을 더했다.'


내가 그를 롤모델로 삼은 이유는 바로 그의 '마지막 30분'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런 생활밀착형 재즈바 운영의 원칙 덕분에 오늘날 그가 있는 건 아닐까.


하루키가 되어보겠다면서 가게 문을 닫고 30분을 더 하고 있다. 솔직히 무지 힘들다. 가게 문을 닫고 마지막 30분을 더 있으면서 그는 도대체 뭘 썼을까? 나의 마지막 30분은 아주 고역인데...


그래도 일단 시작한 일이니 계속 해 볼 생각이다.

중간에 뭘 포기하는 건 참 싫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마지막 30분에 벌어질 생활의 변화들이 궁금하기도 하다.


'가게 문을 닫고 30분',

오늘밤에 난 또 뭘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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