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했어?" "그건 네가 선택한 거잖아." "그래서 지금 이렇게 된 거야."
우리는 이런 말을, 생각보다 쉽게 던진다.
상대가 어떤 선택을 했고,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 선택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느낀다.
물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지만 정말 그 사람이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상태였을까?
나는 정신과를 다니며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다.
"왜 진작에 나에게 도움이 되는 약을 먹지 않았지?"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
그땐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인식과 에너지가 내게 없었다.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땐 내게 그것이 '선택지'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걸.
또 하나 떠오르는 건 일본 유학 시절이다.
그 시절 나는 친구를 거의 사귀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 스스로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내 책임이 맞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때는 낯선 환경과 언어,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그 모든 것들이 무의식적으로 나를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그 책임은 인정하면서도, 그 시기를 살아낸 나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나에겐 또 하나의 회색지대가 있다.
극단적인 예지만, 미성년자 시절 부모와의 관계가 너무 파괴적이었다면, 그 상황을 단순히 '버티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어떻게든 탈피했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법적으로 미성년자의 독립은 어렵고, 현실적 제약도 크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제약조차도, 그 상황을 겪은 당사자에겐 '변명'처럼 느껴질 만큼 무력해진다.
그래서 나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분명 존재한다고 느낀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나는 알게 됐다.
선택의 책임은 단순히 결과만을 보고 물을 수 없다.
그 선택이 이루어진 맥락과 심리적 상태, 정보의 유무,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인식의 깊이'를 고려해야 한다.
또 하나, 실수와 잘못은 다르다.
실수는 몰랐기에, 혹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기에 일어난다.
그 실수가 반복될 때 우리는 잘못이라 느끼지만,
그 반복의 원인 또한 스스로 통제할 수 없던 조건일 수 있다.
물론 책임을 피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책임을 물을 때 그 사람이 진짜로 '선택'할 수 있었는지를 먼저 묻자는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너무 자주 결과를 기준으로 한다.
그러나 철학은 그 과정을 들여다보려 한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그건 네 잘못이야."라는 말을, 너무 쉽게 말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