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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빈 기술사 May 17. 2024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세요?

저는 OO에 다니는 사람입니다


 

 나는 자라나면서 30여년의 대기업을 다니신 아버지 덕분에 큰 풍파 없이 잘 자랐다. 그리고 누가 '너희 아빠 뭐하시나' 라고 물으면 OOO 에 다닌다고 이야기하고 마음 속에는 자부심까지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삶이 최고의 삶이라 생각을 하고 그냥 그렇게 살려고 했었다. 사실 아버지가 다니던 그 회사를 나도  다니고 싶어 숱한 공채에 지원 했지만 결국 지금은 그 회사의 고객으로서 서비스를 잘 이용하고 있다. 그 때는 적어도 그게 다인줄 알았고, 최근 몇 년전까지도 그런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그만한 회사를 다녔었고 직장생활을 이어왔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똑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보고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는지를 분명히 물었는데 OOO에 다닌다가 제대로된 대답인가?' 'OOO에 나는 돈을 받고 일을 해주는 곳일 뿐인데...', '이 물음에는 나는 그냥 회사원인데...'  




 좀 따지고 본다면 질문자체에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른 대답을 하고 있지만 그게 나의 모든 것인 양 대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 나 때도 그렇고 지금 내 아이때도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은 우리는 은연중에 내가 다니는 회사 또는 직장이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물음을 계속 접하면서 나는 또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과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사실 조금 경력을 들여다보면 어느정도 전문적인 일들을 해왔지만 큰 틀에서 봤을 때는 '딱히 내가 이런 일을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해도 될까?' 라는 자신감은 없었다. 이상훈 작가의 책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 따지자면 워킹데이로 따져 약 5년 정도의 시간인데...' '시간적으로는 내가 충분히 해왔는데 왜 내 자신에 대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또 나의 생각은 꼬리를 물었다.




 내가 생각한 자신감이 없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내 커리어를 설계 하지 못했고, 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시키는 일을 쳐내는 일을 하고서 내 소임을 다했다는 단순한 생각에 '오늘 나는 할 만큼 했다' 라는 의식이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를 이야기 할 때 혼란하게 만든 원인이었던 것이다. 누군가가 일을 시킬 때 '그냥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하니깐 하는거야' 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설계 해 둔 커리어에 이 일은 여기서 도움이 될 것이니깐 하는거야' 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힘들게 만들었던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으로 딱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릴 만한 무언가가 필요했던게 아닌가 생각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이런 일을하는 사람인가?' 하고 혼란해 했던 것 같다. 




직장이 아닌 직업으로서의 일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 캠프에 참 많이 참가를 했었다. 당시 각 기업의 인사담당자님들을 만나면서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직장을 보시지마시구요, 직업을 보세요', '지금 당장은 대기업에 못 들어가더라두요. 나랑 정말 맞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라고 했었다. 지금도 취업이라는게 큰 사회적인 이슈이기는 했지만 15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 때 아주 애송이였던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들을 했다. '아니, 정년이 보장되는 대기업을 들어가면 평생 먹고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 보다 여유있게 살 수 있는게 명확한데 무슨소리 하는거야?', '본인은 저 회사 다니고 있으면서 어쩜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지?' 라고 말이다. 그런데 참... 세월이 지나보니 그 때 지금의 내 나이였던 그 과장님, 차장님들의 이야기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때의 그 과,차장님 역시 현재 시점의 나 처럼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런 깨달음을 전달해주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 나는 정말 지금 보면 한심할 정도로 대기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그래도 그 때 문득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공감을 하긴했었고, 어느날 이런 생각을 하긴 했었다. '내가 2020년 즈음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하고 있으면 좋을까?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그리고는 'IT 컨설턴트'와 비슷한 그런 업종의 일을 하자고 생각을 하고 하숙방 책상위에 그 로드맵을 나도 모르게 전지에 그리고 사진을 찍었었던 것 같다. 그 때는 그냥 취업도 계속 안되고 그래서 할 일이 없어서 적었던 그 로드맵이 10여년이 흐른 나의 모습과 닮아 있기는 한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모르게 직업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다시 위에서 했던 질문을 가져와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 라고 이야기 할 때, '저는 OOO에 다니는 사람입니다.'가 아닌 '기술사 입니다', 'IT PM 입니다.', 'IT 교육을 하는 사람입니다.'라고 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PM' 이라고 회사에서 정해준 직함으로 이야기는 할 수 있겠지만 누군가가 그렇게 정해주고 불러줘서 만든 나의 정체성이 아닌 내 스스로가 만든 정체성 위에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것은 나에 대한 일의 의미, 이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생각이 있기 때문에 더 힘주어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게 아닌가 한다. 이런 의미를 가지고 일을 하는게 바로 '직업'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 그리고 장인들을 인정하는 것도 이런 맥락은 아닐까. 이렇게 되면 적어도 평생 직장에서 짤리거나 하는 걱정보다는 내가 앞으로 뭐를 해야할지 고민하면서 주도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아직 초등학생인 내 아들에게는 이런 직장, 직업에 대한 개념이 어렵기 때문에 '아빠 무슨일을 하는 사람이냐?' 라고 물으면 그냥 '컴퓨터 하는 방법 가르치는 사람 혹은 선생님'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하거나 아님 그냥 예전 회사 다니는 사람으로 이야기 한다. 그렇지만 내 아이가 자라나면서 어느정도 정신적인 성숙이 이뤄지게 되는 순간부터는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다.  손웅정 감독님의 책 <나는 읽고 쓰고 버린다>에서는 '부모와 아이는 친구가 될 수없다. 부모는 아이가 잘 자라나게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라고 이야기 한다. 나도 어느정도는 동의하기에 이런 나의 깨달음을 전달해야하는 의무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잔소리로 듣겠지만 말이다.)  




 위에서 '직장 보다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정의를 내려야 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모두가 퇴사를 하거나 해야한다고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의 커리어 설계에 부합하고, 지속적으로 성장을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회사라고 한다면 나는 적극적으로 그 회사를 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잊지 않아야 하는 거는 나의 방향성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지금 내가 이 회사에 영원히 다닐 수 있을 것 같아도 어느 순간에는 헤어짐을 맞이해야한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에 최선을 다하되 5, 10년 뒤에 내가 성장했을 때 내 스스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방향성을 지켜서 지금 현재에 최선의 노력으로 역량을 쌓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0년 뒤에는 '나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의 질문을 던졌을 때 자신있게 명쾌한 대답을 한단어로 할 수 있어야 되지 않을까 한다.




 임홍택 작가의 책 <2000년대생이 온다>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직장 생활이라는 선택지는 이전과는 다르다. 이유는 지금의 시대에 직장 생활을 지속해서는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 심각한 변화의 현실을 이야기하는 문구이기는 한데 여기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적어도 지금의 MZ라고 부르는 세대들이 이런 내가 가고자하는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 했던 나의 경우는 그냥 전통적으로 만들어 놨던 부모님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데서 세대차이를 느끼기도 하는 것 같고,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이런 목표 속에서 내가 무슨일을 어떻게 해서 목적을 이룰 건지 고민을 해보고 그 속에서 직장을 선택하고 어려운 순간을 잘 버텨나가서 성장했으면 하는 생각도 같이 든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공짜라는게 참 없는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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