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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Feb 20. 2023

살아남기 위해, '마스킹' 하면서 스타일 갖춥니다

파란만장 자폐인 - 2 : 지금, 자폐인으로서 '마스킹'을 하는 순간



사진 촬영을 위해 마스크를 벗고 찍은 것이기도 합니다 (2022년 10월 16일, 대한성공회 수원교회에서)

내가 완전히 자폐인으로 판정된 것은 2012년이었고, 나는 그 시점이 대학 졸업반 시점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은 앳된 티를 벗어나 제대로 된 사회인으로 바뀌어야 했을 시점이었고, 나는 양면전선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바로 자폐인이라는 것이 함부로 드러나지 않는 것과 앳된 이미지에서 벗어나는 것 두 가지였습니다.


사실 제 헤어스타일은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그 스타일을 처음 적용할 때 저마저 매우 큰 변화였습니다. 과거에는 중고등학교 시절 두발단속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이었던 수준이었지만, 이제는 대외적으로 나서야 하는 시점이 되었고 자폐인이라고 낙인찍히는 것이 겉면으로도 그렇지 않게 하는, 소위 ‘바보 아닌 척’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내가 헤어스타일을 완전히 바꾼 것은 첫 직장 시절이었습니다. 헤어스타일을 본 직장동료 ‘베스’는 나를 보더니만 결국 뭔가 조치를 했습니다. ‘베스’가 아는 미용사에게 보내서 스타일을 잡게끔 한 것입니다. 사실 그 이전만 해도 저는 헤어스타일이 매우 단순했습니다. 그야말로 중고등학교 두발단속 안 걸리는 수준의 단순한 스타일이었으니까요. 베스가 소개해준 미용사는 스타일을 전면 혁신했습니다. 세련된 스타일로 바꿔주고 제 머리 특성을 파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완벽히 바뀌어 지금도 그 미용사에게서 헤어스타일을 맞춰놓고 있습니다. 지금의 스타일은 투블럭 스타일을 기본으로 하되 약간 아닌 듯한 느낌이 있어야 하며 관리 특성상 무스 등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스타일을 기본 방침으로 하고 있는데, 미용사 말로는 제일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밝혀진 앞머리가 조금 떠 있는 등 두상의 독특한 점이 발견되는 등, 이제는 보통 미용사는 못 잡아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번 급히 일반 미용사에게 맡겨본 적이 있었는데, 스타일이 영 잡혀있지 않은 수준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면접을 본 적도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단점이 있습니다. 이 머리를 하는데 3만 원이나 되는 비용을 써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이것이 집에서 충돌하는 지점 중 하나입니다. 자기가 아는 ‘싼 가격’에서 하면 좋은데 왜 무리하게 비싸게 하느냐면서입니다. 사실 그 미용사는 서울 합정동에 있고 제 집은 인천인데 최근 견적을 뽑아보니 인천에 있는 그런 스타일의 미용실도 커트만 해도 3만 원은 너무 싼 가격을 정도였습니다. 1인 미용실이다 보니 군살 다 빼니 실질적으로는 싼 것이죠. 그렇지만 집에서 놓치는 스타일이나 그런 것을 보면 정작 지금 전담 미용사가 된 그 분과 하는 것이 더 나았습니다. 주위에서 저를 좋게 바라보고 그런 것이 긍정적인 자산이 되었는데 가격이라는 명분을 들어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에 물어보니 가장 이상적인 스타일이 ‘없다’라고 합니다. 그냥 싼 가격에 헤어스타일을 맞추면 그만이라는 너무나도 단순한 스타일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스타일도 결국 따지고 보면 전형적인 이발소 머리 스타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냥 싼 가격에 하는 스타일을 하는 것도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단정하기만 하면 끝이 아닌 시대, 즉 중고등학교 두발단속 수준의 헤어스타일을 넘어서야 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헤어도 그렇지만 패션 이런 것도 대단히 골치 아픈 문제입니다.


사실 저는 정장 계열 스타일을 보충하기 위해 군대 정복 계열 옷을 활용하는데, 사실 제가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데도 집에서 제일 싫어하는, 심지어 누나마저 싫어하는 스타일입니다. 특히 군대 정복 계열 옷은 조금 활용만 하면 매우 단정한 이미지도 보여주는 이미지였기 때문에 낙점된 것입니다. 얼마 전 정복을 대규모로 주문했는데, 막상 뜯어보니 이제 셔츠와 바지는 완전히 해결되어 그동안 고생했던 면접 볼 때 입는 정장 문제는 이제 재킷만 일반 정장 재킷을 색깔만 잘 맞히면 그만일 정도로 준비를 해놨습니다. (물론, 민간에서 사적으로 운영하는 군장점에서 산 것입니다. 소위 ‘밀리터리 마니아’들이 찾는 그런 부류에서 산 것. 그리고 주로 외국군이나 외국 구식 군복에 가깝습니다.) 얼마 전 일이 있어서 정복 계열 옷을 완전히 맞춰서 입고 나갔는데, 이것을 본 상대방이 매우 좋아하면서 ‘장지용이는 꽤나 차려서 입고 왔구먼!’이라고 칭찬하면서 제일 잘 입고 온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 점이 결국 지금의 스타일을 만든 근원이라 할 것입니다. 


일반 캐주얼이나 이런 것도 원래 집에서 사주는 방식을 썼다가 최근 들어서 내가 직접 골라 사 입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최소한 내가 직접 선택은 하고 집에서 비용을 치러주는 방식을 쓰기도 합니다. 그래서 최근 예전에 비해서 스타일이 많이 좋아진 편입니다. 과거에는 거의 폴로셔츠 위주 패션이 주종을 이뤘는데, 아마 골프 그런 옷을 무리하게 이식한 모양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스웨터 계열을 중심으로 스타일을 바꿨고 거기에 셔츠 계열을 보조로 쓰고 있습니다. 좀 정중한 사무실 이런 느낌이면 셔츠를 중심으로, 개인적인 일정이면 스웨터 중심으로 하는 셈입니다. 사실 제 패션에서 제일 혁신하고 싶은 것은 바지인데, 주로 청바지 계열만 잔뜩 있어서 최근 바지를 살 때 면바지 계열이나 캐주얼 스타일 바지 등으로 중점을 바꾸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모자는 그나마 이제는 겨우 타협을 봤습니다. 바로 빵모자를 쓰고 다니는 것은 집에서 겨우 인정해 줄 정도입니다. 그나마 화가 이런 이미지 때문에 봐준 것에 가깝습니다. 사실 저는 사진작가이기도 해서 그런 점을 겨우 인정해 준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빵모자가 주로 모직으로 되어있어서 여름에는 쓸 수 없는 것이 단점이지만요.


사실 이러한 패션 스타일링 이야기를 길게 한 것은 사실 한 가지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 자폐인이라는 사실이 겉면에서도 드러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서. 


그 단 한 가지 때문에. 제가 가끔 다른 발달장애인 행사를 가서 당사자들을 만나고 오면 스타일이 너무 단순하고 천편일률적인 스타일을 자주 보곤 합니다. 그런 것 때문에, 심지어 장애인 인권운동 잡지에서조차 발달장애인의 패션 수준에 대한 비평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의 옷차림에 있어서도 편함보다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신체 기능 발달과 사회적응력 등을 고려하여 옷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발달단계에 있는 학령기일수록 향후 발전 가능성을 고려해 가능한 비장애학생들과 같은 옷차림을 착용하도록 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 필요하다.”

– 장애인 인권운동 잡지 <함께걸음>, 2014년 기사 ‘발달장애인과 옷’ 마지막 부분에서


자폐인의 부모들이 관리의 단순함 이런 것 때문에 그냥 패션을 천편일률적이고 단순한 스타일 위주로 하고 있어서 그런 것입니다. 사실 이런 것 때문에 결국 패션에서도 자폐인이라는 티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 전담 미용사의 헤어 스타일 작업 철칙 중 하나가 바로 ‘최대한 장애 그런 이미지가 잘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 일 정도입니다. 


사실 자폐인들 사이에서 이러한 문제를 흔히 ‘마스킹 문제’라고 합니다. 특히 저 같은 예전에 아스퍼거 증후군이나 고기능 자폐 이런 진단을 받은 자폐인들은 이 문제에 대단히 민감해하는 이슈 중 하나입니다. 자폐인들은 마스킹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는 사회생활을 안정적으로 하기 위해서 또 마스킹 노력을 또 해야 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지 않는 순간 ‘자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가는 결국 사회적으로 퇴출되어 ‘통합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저기능 자폐인들, 그러니까 우영우 이전의 자폐인 캐릭터들은 상대적으로 마스킹에서 자유로운 편입니다. 대신 이들은 결국 또 분리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발달장애인의 열악한 현실 이런 것을 들을 때 나오는 전형적인 그런 이미지.


다른 자폐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자폐인도 생활을 하다가 결국 마스킹 때문에 결국 지친 이야기였습니다. 마스킹하느라 1시간이나 고생하고 또 이것 때문에 하루를 불태우고 퇴근하면 쓰러졌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자폐인들 중 진정 고생하는 부류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입니다. 저도 가끔 겪는 일이지만, 사실 그것도 정신력으로 겨우 버틴 것입니다.


사실 저는 아스퍼거로 진단받았고, 소위 말하는 ‘현실판 우영우’로서, 엄청난 사회적으로 힘든 날도 있습니다. 그나마 비장애인들과 섞여 살아왔기 때문에 그나마 힘든 것이 줄어들었을 뿐, ‘마스킹’때문에 가끔은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마스킹’을 어느 정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사회생활 이런 것을 적당히라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자폐인이라는 것이 겉면에까지 드러나서 차별을 받는 것 때문에, 결국 저는 생존하기 위해 ‘마스킹’하는 스타일을 차려입고 언제나 바깥으로 나갑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폐인이라는 것은 제가 밝히거나 아시는 분들이 눈치채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나마 지금이 나은 것은 이미 다 알려지다 보니 부담이 덜 한 것일 뿐입니다. 


살아남기 위해, ‘마스킹’ 하면서 스타일 갖춥니다. 그것이 자폐인임을 공개한 ‘현실판 우영우’라는 제가 살아남는 몇 가지 사회에서 생존하는 ‘겉면 전략’입니다. 그래서 ‘마스킹’ 부담도 없으면서 자폐인을 차별하지 않는 그런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자폐인 차별에 대한 나름의 저항 방법이 어떻게 보면 ‘마스킹’ 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 자폐인은 추가 노동을 합니다. 이것도 ‘감정 노동’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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