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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Mar 21. 2023

우영우도 그러고 사실 나도 그러고

파란만장 자폐인 - 4 : 2013년, 그때도 자폐 특성이 남을 때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집보다 집 바깥에서 제가 가진 자폐인의 특징을 더 많이 알아챈다는 사실입니다. 좋게 말하면 집에서는 ‘평등’하게 바라보고 집 바깥에선 자폐인이라는 점 때문에 고생한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집에서도 제가 가진 자폐인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집에서 제가 가진 자폐인의 특성 때문에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그러지 좀 말라고’ 지적을 받습니다. 그런데 세상으로 나오면 가끔 제가 자폐인이라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해해 주고, 자폐인이라서 그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깨닫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참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입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도 우영우는 어쨌든 자폐인이기 때문에 가끔씩은 자폐인이라는 티가 드러나는 장면이 가끔 있습니다. 반향어를 사용하거나, 특정한 감각에 민감/둔감하거나, 사고 회로가 단순(?)하다거나 하는 등의 특성이 우영우가 아무리 ‘천하에 다시없을 자폐인’이라고 해도 ‘자폐인은 어쨌든 자폐인’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장면이 가끔 있습니다. 딱 우영우를 보고서도 집에서는 ‘하긴 지용이도 이럴 때에는 어쩔 수 없지 뭐’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서는 전혀 제가 자폐인이라는 점을 가끔은 망각하고, 자폐인으로서 겪는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제가 아무리 어떻게 해도 해결할 수 없는, 영원한 자폐인으로서의 숙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것들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반향어의 잔재가 남아있습니다. 자폐인의 세계를 모르는 이들을 위해 반향어가 무엇인지 설명하자면, “상대가 말한 것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군대에서 말하는 ‘복창’과 비슷하지만, 군대에서 지시사항을 ‘복창’하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군대에서 하는 복창은 지시사항을 다시금 기억하기 위해서 일부러 따라 하게끔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폐인들은 그러한 반향어를 자기도 모르게 계속 외국어 공부할 때 외국어 표현을 익기 위해 강사가 녹음파일을 반복 재생하는 것 마냥 반복되는 것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이 잔재가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은 첫 직장 동료가 이야기를 해줬던 것이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전혀 눈치를 못 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고 지금도 그것이 우영우도 했다는 반향어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음식에 대한 감각도 비슷합니다. 저는 지금도 수산물을 전혀 먹지 못합니다. 딱 2가지만 가능한데, 그나마 그것은 가공된 것입니다. 바로 굽고 소금을 친 소위 말하는 ‘조미김’과 참치 통조림, 그 2가지만 제가 먹을 수 있는 수산물입니다. 생선 굽는 냄새나 비린 냄새 등은 제게 수산물을 멀리하게 하는 장벽에 가까운 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소원은 영영 이뤄질 수 없다 합니다. 아버지의 소원이 ‘가족이 다 같이 생선회를 먹는 것’이라는 ‘카더라’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김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배추김치 정도는 먹을 수 있지만, 깍두기 등 무김치 등은 잘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물김치 같은 것도 어려워서 그런지, 결국 김치찌개의 김치는 전혀 먹지 못합니다. 게다가 젓갈이나 염분이 많은 것 등은 이것을 더 어렵게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끔씩 김치 담그는 집안이나 공장에 따라서 김치 맛이 다를 때는 또 김치 맛이 서로 다르게 느껴집니다. 그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 참 재미있기도 합니다. 유일한 다행은 한국인의 해외여행에서 자주 따라가는 ‘볶음김치’는 그래도 조금은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문제의 찜닭 (정확히는 다른 날 먹은 찜닭이긴 하지만)


음식에 대한 감각은 서로 다릅니다. 실제로 제가 있는 자폐인 모임을 하다가 하루는 ‘찜닭을 먹자’라고 말이 나왔다가 한 회원이 ‘나는 닭고기를 먹을 수 없다’라고 말해서 잘 안 풀린 적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면, 자폐인이 가진 음식에 대한 감각은 각자마다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자폐인은 각자마다 그 특성이 다르기에 감각도 각자마다 그 느끼는 특성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언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있는 자폐인 모임에서는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이 독특한 관습입니다. 서로가 자폐인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의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회적으로 말하는 것을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가끔 바깥에서 우회적인 표현이 들어간 메시지가 오면 모임 회원들 중 해독이 가능한 저 같은 몇몇 회원들이 해독해서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메시지인지를 해석한 뒤에 다음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업무를 할 때도 업무 지시를 우회적으로 내려오면 저는 가끔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석하기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일전에 직장에서 사장이 “너 열심히 안 하면 해고야!”라고 말하는 바람에 저는 한동안 맥이 빠졌었습니다. 그래서 상사가 다시 사장의 말은 문자대로가 아닌, 열심히 일 해주기를 바란다는 그저 평범한 업무 지시였음을 다시금 알려주고 나서야 안심했을 정도입니다.


오히려 집 바깥에서 많은 이들이 가끔 자폐인으로서 벌어지는 행동이나 특성을 더 잘 알아채거나 특별히 필요로 하는 것을 잘 알아챕니다. 예를 들어 여건이 되면 한 달에 한 번 합법적으로 연차 차감이 아닌 별도의 병가를 낼 수 있다면 병가를 낼 수 있게 하는 것이 그런 예 중 하나입니다. 자폐인으로서 겪는 한 달에 한 번 가는 정신과 방문을 이렇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직장에서는 이런 일로 병원에 가는 일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 다행인 일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대해주는 자에 따라서 다릅니다. 대해주는 자들에 따라 자폐인의 특성을 잘 아는 부류는 자폐인으로서 겪는 그 특유의 현상이나 행동, 사고방식을 재빠르게 알아채고 조치를 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잘 만나야 하는 것이 유일한 주의사항이라면 주의사항이라 하겠습니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제 운명은 사람을 잘 만나야 좋은 일이 벌어진다고 이야기 한 역술인까지 있었을 정도이니 역시 이 문제의 올바른 해결책이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자폐인이라는 특성을 알아채는 것은 정작 제가 바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로 집에서 ‘장애인 가정이라서 지원되는 조항’으로 가면 아주 재빠르게 알아채는 것이 그 특성이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입하려고 하면 저를 명의에 끌어들이려고 한 적도 있었습니다. 장애인의 차량에 대해서는 각종 할인정책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집에는 ‘불행하게도’ 제 장애 규정으로는 몇몇 조항은 발동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하여튼 그런 것은 어디서 들었는지 잘 이용하려고 합니다. 더 말도 되지 않는 사실인데, 저는 운전면허가 없는데도 그러한 것은 잘만 이용합니다.


전기요금, 가스요금 등의 할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에서 독립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전기나 가스요금 할인 등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속내를 집안에서는 감추고 있지만, 저는 이미 남몰래 알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독립을 반대하는 겉에 두른 명분은 ‘자립생활을 할 역량이 없다’는 것이지만, 실제 이유는 ‘장애인 요금 할인’을 이용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일하게 제 값을 치르고 할인을 받는 것은 스마트폰 요금과 집에서 약간의 보전을 약속받은 인터넷과 IPTV 뿐입니다. 그나마 제가 이것을 청구해야 보전받을 정도이니 난감할 뿐입니다. 그것 때문에 집에서는 제가 할인을 위한 대상으로 자주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끔은 내가 이용당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인식과 수용 이런 것을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그러는데 인식은 ‘그 사람에게 특성이 있지만 그냥 인정하는 것’이라 하고 수용은 ‘그 사람의 특성이 자연스러운 것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는 어쨌든 자폐에 대해서는 ‘인식’조차도 제대로 되지 않아 씁쓸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이 내 장애에 대해서 알면 내가 가진 장애의 특성이나 삶의 방식 그런 것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면 저는 매우 기분 좋게 받아들이면서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도 합니다. 어떨 때는 내 장애상태에 상관해주지 않기를 소망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것은 회사에서 일할 때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나 장애상태를 잊어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무슨 ‘자폐는 치료가 된다’ 그런 소리를 하는 순간 저한테는 당장 ‘찍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주장은 ‘뭘 좀 아는 자폐인’들이나 서구권의 자폐 인권운동 집단에게는 그냥 ‘헛소리’, 서구권식 표현을 빌리면 ‘치료쟁이’(Curebies) 수준으로 취급받아 자폐인 사회에서는 그냥 ‘적’ 일뿐입니다. 자폐는 치료의 문제가 아닌 인식, 그리고 그 너머의 수용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자폐인의 특성으로서 벌어진 단순한 소동 같은 것은 그냥 ‘해프닝’ 수준으로 넘어가도 좋습니다. 


자폐 문제와 그 특성을 ‘치료’ 그런 문제로 해석하지 않고, ‘특성의 인정’ 정도만 가도 자폐인들은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자폐인이 꽉 막힌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비자폐인들이 더 꽉 막힌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도 제 자폐특성을 제대로 모르는 집에서의 사례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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