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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지용 알비스 Feb 03. 2023

자폐인이라고 절규하지 않으며 받아들이기

파란만장 자폐인 - 1 : 2012년, 자폐 판정 최종 확인 시점

이런 표정으로 자폐판정을 받아들인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 상황을 듣는다면 제가 소위 SBS 드라마 <야인시대>의 컬트적인 인기 장면, 이른바 ‘내가 고자라니’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 저는 그런 반응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겠습니다. 


때는 2012년 여름에서 가을로 바뀌던 무렵, 인천 모 정신과의원. 결국 최종 진단에서 그 시절만 해도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불렸던 자폐성장애 최종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 최종진단이 곧 장애인등록심사 근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별로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고 절규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기뻤습니다. 이제야 모든 이야기의 결말이 확실히 자폐인이 맞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이죠. 나는 전혀 이상하거나 괴상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뒤 이 진단서는 행정처리를 거쳐 장애인등록심사에 부쳐졌고 결국 그 당시 어법으로 말하면 다시 10월 말에 가서 ‘자폐성장애 3급’이라는 명목으로 장애인 인정이 완료되었기 때문이죠. 이때는 장애인등급제가 있어서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지금의 어법으로 말하면 저는 또 복잡한 셈법에 놓이는 ‘자폐성장애 중증’이라고 나오기 때문이죠. 자폐성장애는 법 규정에 경증이라는 단어가 없는데 실제 상태는 경증이니까 저는 셈법이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사실 일전부터 여러 번 정신과 정밀진단을 받아보면 ‘뭔가 수상하다’는 결론에 이르곤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라 쓰여 있든 간에,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든다’라는 진단 내용은 똑같았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고등학교 1학년, 고등학교 3학년, 총 3번의 검증에서 모두 ‘뭔가 수상하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의학적으로는 장애 의심 이런 정도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그 이전에 어머니 이야기로는 제가 2살이던 시절, 서울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도 최초 의심 진단이 있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제가 그것을 알 턱이 있겠습니까? 거의 ‘옛날 옛적에’ 이야기였으니까 말이죠. 제가 처음으로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훨씬 늦은 때였습니다. 그 시점은 고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적당히 보면 고등학교 2학년때에야 저는 나 자신을 제대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식으로 말하면 ‘나 자신마저 자폐성장애 의심이 확실히 들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때는 나는 장애인 등록이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장애인 등록은 예상보다 더 빨랐을 수도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고등학교 1학년의 진단을 근거로 장애인 등록을 추진했지만, 이때는 내가 장애 정체성이 전혀 없었던 시절이었고 당시에는 더 장애인차별이 심했고(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직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었고 대학에 입학한 2008년에 시행되었습니다.) 장애를 빌미로 한 학교폭력은 더 잦았으니 그 우려로 제가 만류했습니다. 솔직히 그때로 돌아간다면 등록을 강행했을 것입니다. 저 자신이 등록을 추진하려던 실질적 이유는 그랬다면 벌써 해결된 상태였고, 나는 그 실질적 이유를 실행만 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대학입시에서 흔히 특수교육대상자특별전형이라고 부르는 장애학생 특별전형을 위해 등록 검토를 했지만 병원 측에서 ‘의학적으로는 좀 수상한데 법적으로는 좀 그렇다’라는 모순된 결론을 보내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장애인 등록은 다시 연기되었습니다. 만약 이것이 성공했다면 제 학벌마저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서울 소재 명문대 입시 관계자들도 제 성적을 보더니만 “이 정도면 장지용 씨는 우리 대학 특수교육대상자특별전형 써도 되겠는데요?”라고 말했으니 말입니다. 대신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근거로 대학수학능력시험 특별관리대상자 규정이 적용될 수 있었고, 병역 판정 결론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으니 말이죠.


이 기묘한 법률과 의학의 불협화음은 2007년 이후 2012년 가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판정 근거는 이렇다는데 또 법률은 저렇다는, 대단히 모순된 결론만 나왔고 장애인으로서 법적 인정은 안 되는데 장애 그 자체는 있는, 그런 앞 뒤 안 맞는 시절이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이면 절대 피해 갈 수 없었던 병역 판정 문제도 결국 이 와중에 대단히 꼬여버린 전개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징병검사라 부르던 병역판정검사는 2008년 여름 어김없이 저를 호출했고 저는 미심쩍어서 2007년의 진단서를 들고 갔더니만 병사용진단서가 어쩌고 저쩌고를 들으며 다시 기록이 숨어있는 인천 시내 대학병원에서 관련 문서를 다 긁어와 결론을 찾았습니다. 다시 이 문서 뭉치를 들고 병무청 사무실에 가니 결론을 요약하면서, ‘판정 결과: 제2국민역’이라고 적힌 서류를 주고는 그렇게 다시 되돌려졌습니다. 저는 병역 이행을 졸지에 국가가 거절하게 된 존재가 되고 만 것이죠. 군 입대가 가능했다면 나는 평소 해군을 동경해 오던지라 해군에 입대했을 것입니다.


그렇게 불안하게 살다가 2012년, 대학 졸업의 시간은 다가왔고 대학 진로 및 취업 부서, 그리고 지도교수님마저 거의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장애인 등록을 받아두라고 말이죠. 취업 관리할 때 도움이 될 것이고 사실 장애인에게 있어서 대학 졸업 자체가 또 다른 의미에서는 대학 졸업장이 곧 스펙이라고 다들 등록 처리를 마쳐놓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동력을 받아 결국 2012년 여름방학 때 진단을 받고 결국 이 이야기는 10월 말에 등록 완료로 마무리된 이야기였습니다.


가끔 장애인 등록 규정에 갱신이라는 조건이 붙는다고 하는데 저는 처음부터 면제된 상태로 등록되었습니다. 성인이 돼서야 자폐를 인정받은 것인 만큼 거의 이제 구태여 무슨 계속 진단해 봤자 그것이 그것일 터이니 두 번 다시 논의할 가치는 없다는 국가의 판단이라 느껴집니다. 그래서 나는 이 결론이 공개된 순간이 전혀 ‘내가 고자라니’ 같은 절규를 하고 자기부정을 하면서 ‘아니라고, 난 아니라고!’를 외치던 이야기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이제야 모든 이야기가 정리되었군. 이제 정리가 되었어’라면서 별 크지 않은 충격으로 오히려 ‘불편한 진실’을 깨달은 느낌이었고 최종 장애인 인정, 즉 등록을 마친 뒤의 상황을 저는 지금도 ‘내 자폐성장애 문제는 결국 법과 의학이 화해한 것으로 마무리되었다’라고 표현하고 있을 정도로 오히려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법과 의학이 서로 맞지 않은 주장을 했었던 것이 장애인 등록으로 한 번에 갈등이 봉합되어 화해했기 때문이죠.


사실 그 이후에도 병원 통원은 여전합니다. 이제는 치료보다는 ‘엇나가지 않게’ 마치 안전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병원에 가서 약물을 타 가지고 와서 매일 자기 전에 한번 약을 먹고 잠에 들어야 합니다. 사실 2009년 병원 통원이 시작되었을 때 다른 정신과 문제도 있었는데 2022년 겨울에야 다른 정신과 문제는 사실상 끝났고 이제 제 상태에서 자폐성장애로 인한 일만 나타난다는 진단이 나왔을 정도입니다.


거의 유일하지만 이제는 이것이 또 다른 안전핀이 된 법률문제는 ‘산정특례조항 적용’이었는데, 이는 앞으로 거의 영원히 약물 복용을 해야 하므로 병원비라도 깎아주자는 결론이라 이 규정을 계속 사용하고 있어서 매 일의 자리 숫자가 4 아니면 9인 해에 갱신 서류를 형식적으로 써야 하는 일이 있을 뿐입니다.


대신 병원은 옮겼는데, 2022년 여름부터 그때 진단받았던 인천의 집 근처 정신과의원에서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으로 옮겨서 그곳에서 장애 등의 상태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울 중앙대학교병원으로 가는 결정은 제가 직접 했습니다. 인천의 정신과의원에서 대학병원으로 올라가라고 통지하면서 제가 수소문 끝에 필요한 종목, 자폐뿐만 아니라 다른 정신과 문제, 그리고 이제는 더 중요해진 문제인 직장생활 속 정신건강문제를 다 아는 의사가 서울 중앙대병원에 있다는 이유로 전격 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격주로 가던 것을 매달 한 차례로 줄여서 가기 때문에 그나마 사정은 나아졌을 뿐입니다. 한 번에 받는 약봉지가 더 묵직해졌고 가끔 뭔가 미심쩍은 다른 문제가 걸리면 협진을 통해 타과에도 보내질 뿐이니까요.


나는 이제 자폐인으로 최종 판정받아 장애인 등록까지 마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것은 진실이었고 저는 그냥 진실과 화해했을 뿐이지, 나를 억압하거나 낙인을 나 스스로 찍는 것이 아니었으니까요. 오히려 낙인이라면 세상이 낙인을 찍었을 뿐입니다. 세상이 내가 자폐인이라는 이유로 나에게 가끔 제한을 걸거나 뭐 잡다한 조건을 붙이는 등의 일은 있지만, 그러한 것은 인권 원칙에도 위배되는 일이니 그렇게 신경 쓸 문제는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일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2022년 우영우 열풍이 불고 다시 나는 자폐인이라는 것에 별 충격적이지 않고, 그냥 현실에 존재하는 우영우와 비슷한 존재로 세상에 졸지에 명명되었으니, 태어날 때부터 제 정체성을 둘러싼 전쟁은 이제는 마침표를 찍었을 뿐입니다. 다만 이제 내 자폐성장애를 의심하지 말아 주길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봐도 저렇게 봐도 자폐인은 맞거든요. 다만 이러다가 제가 분당서울대학교병원의 전설적인 의사 유희정 교수 같은 자들에게 검사를 의뢰해서 ‘빼도 박도 못하게 결론을 박아버리는 것’만은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이 의심한다면, 저는 아마도 거의 유희정 교수 정도 되는 의사에게서 확실히 보증수표를 떼야 겨우 여러분이 믿어줄까 말까 하니 말입니다. 이제 의심은 거두십시오. 저는 자폐인이 이렇게 보든 저렇게 보든 맞으니까요. (실제로 성과를 낸 자폐인이 의심스럽다면서 강제로 재심사를 받아야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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