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지용 알비스 Jan 25. 2023

두 번째 세계의 시작

파란만장 자폐인 - 프롤로그 : 2022년 7월 22일 스포트라이트

실제로 YTN에 나왔던 접니다!

2022년 7월 22일 정오, 서울 DMC의 YTN 스튜디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열풍을 타고 처음으로 방송 뉴스에 서는 날이었습니다. 사실 이전에는 신문 인터뷰에 나온 적은 있었습니다만 방송 뉴스로 나오는 것은 역대 최초의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YTN 이 정도면 전국 동시 방송에 생방송이었기 때문에 매우 설렜습니다. 그러기 전 특별한 용모 단장은 기본이었고 내용 점검 등 만발의 준비를 다 한 뒤, 모든 것은 갖춰진 뒤, 처음으로 방송, 그것도 생방송 뉴스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회에 또 다른 데뷔를 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졸지에 ‘두 번째 세계’가 열린 셈이었습니다. 이제는 그 이전의 장지용은 단지 예고편에 불과했다는 것처럼.


먼저 이 인터뷰에 앞서 몇몇 뉴스 리포트가 진행되었고, 그러면서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방송 준비 신호가 나오고, 앵커는 입을 떼었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자폐인 변호사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죠. 인기가 정말 높습니다. '우영우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요즘 화제입니다. / 오늘은 자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인 장지용 작가와 함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저희가 조금 전에 짧게 소개를 해 드렸습니다마는 YTN 시청자를 위해서 본인 소개 간략하게 해 주신다면요.”


두 앵커의 번갈아가면서 시작하는 초대를 들은 뒤 이제 이 말 한마디로 또 다른 사회로 나아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 이름은 장지용이고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폐를 확인했고 대학교 4학년 때 장애인 등록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사무보조일을 하고 있지만 다음 주에 회사 사정상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방송 뉴스 인터뷰를 통해 대화가 오갔습니다. 드라마와 실제의 차이, 그리고 실제 삶등에 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에 또 다른 데뷔를 하게 된 것이 놀라웠던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 시점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봅니다. 나는 이 세상에 나왔지만 세상이 나를 잘 인정해주지 않았던 시절도 꽤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이 나를 이제야 완전히 인정해 줄 정도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실 뉴스 채널에 나온다는 것이 거의 명사나 소위 이슈메이커 수준의 대우라면 대우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일이었으니 말입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주위에서 연락이 폭주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눈치를 챈 모양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신자회장(내가 출석하는 교단인 성공회에서 한 교회의 신자들을 대표하는 일종의 신자 대표)이 봤다면서 이야기가 오가는 등 한동안 이 방송의 여파는 남아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이 방송은 TV뿐만 아니라 라디오로도 생중계된 것이었다고 합니다. YTN은 라디오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구직 지원서를 보낼 때 살짝 이 인터뷰 사실을 섞어서 적는 버릇까지 생길 정도입니다.


그날 있었던 유일한 아쉬움은 제대로 차려입을 옷이 없었다는 것이었는데, 결국 그 해 겨울 반팔 군대식 정복 셔츠를 사서 이것을 해결했습니다. 아마도 ‘공식석상룩’의 부족을 탓해야 했던 것입니다. 집에서는 겨울에 반팔을 사 입는 것을 뭐라고 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이 순간까지 오게 되었나를 느낍니다. 엄청나게 어렵고 방황하였고, 언젠가 온다는 영광의 날이 다가올 수 있기를 소망하면서 그 영광의 날이 오기만을 엄청 바랄 뿐이었습니다. 묵묵히 전진하면서 살다 보면 그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 파란만장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내가 태어난 1989년부터 이 순간까지 매우 파란만장하게 삶을 보냈습니다. 자폐가 무슨 이상한 존재인 줄 알았던 시절부터, 이제는 자폐인 명사가 나올 수 있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진 이 순간까지. 이 파란만장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해외에는 다양한 자폐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것을 책으로 낸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책이 별로 없는 편입니다. 한국인 당사자가 직접 쓴 책은 더 없지요. 그래서 이번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제대로 만나보는 한국 자폐인의 실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만나셨던 자폐인의 자서전은 잘 보시면 아시겠지만, 죄다 번역서투성이입니다. 


최근에야 뭐 하나가 나왔다고 하지만 이것은 단지 서막일 뿐, 본격적인 시대의 개막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이 두 번째이자 실질적으로는 처음일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야구에서 1번 타자는 기껏 1점을 득점할 수 있지만, 최소 2번 타자는 이론상 2점을 득점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물론 실제 야구에서는 3번 타자는 돼야 적당히 득점을 노릴 수 있다는 것이 함정이지만요.


여러분들은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본 뒤, 실제 자폐인들의 삶을 더 살펴보고 싶어 하셨을 것이라 믿습니다. 물론 우영우 변호사의 이야기는 한국에서는 픽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이렇게 다른 모습의 자폐인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우영우의 막은 내렸지만, 대한민국 자폐인의 삶은 막을 내리지 않을 것이에요”라고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한 실제 자폐인 관점에서 쓴 이 이야기를 읽게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제 실제 자폐인의 삶을 살펴볼 좋은 시간이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살짝 죽음에 가까운 상황을 예전에 겪은 적이 있었습니다. 2009년 겨울날, 엄청나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점 이후로 저는 제 존재에 대한 의식이나 의심을 하게 되었고 잠깐 자서전을 써보려는 시도도 해봤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에게 전하기에는 너무 사소한 것까지 적었나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때 글을 보신 분들이 그것을 캐비닛에 넣고 잠그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과 이야기를 전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다시 이야기를 시작해 보기를 권한다는 그런 말을 남겼습니다. 톡 튀어나온 표현이라던지 제가 썼던 글들에서 나온 재미난 부분이나 자폐인에 대해 짚고 넘어갈 몇 가지 등은 캐비닛에 넣어놨던 것이라도 그 뼈대만은 가지고 와달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여러분들과 만나면서, 자폐인들의 실제 삶에 대하여 더 자세히 읊어보는 시간을 위해서 이런 글을 통해 여러분을 만납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그것도 제대로 살아남은 자폐인들은 저마다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가슴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거의 제 ‘클론’이나 다름없었던 이들도 매우 험난하고 파란만장했던 스토리를 이야기합니다. 제가 있는 자폐인 모임 estas도 가끔 이러한 파란만장한 삶들을 토로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마도 다음부터 읽으실 이야기부터 첫 장을 꺼내어보면 첫 순간부터 파란만장한 삶이었구나 하는 그런 느낌이 드실 것입니다.


찬찬히 읽어보시면, 그리고 대한민국 공식 통계를 읽어보면 대한민국 자폐인들의 삶이 매우 피폐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자폐인의 평균 수명은 23.8세, 사망 원인 1위는 극단적 선택, 결혼 비율 산술적으로도 0. 더 넓게 발달장애인으로 봐도 대학진학률은 겨우 6% 수준, 취업률은 20% 수준인데 여기서 일반 기업체 비중은 30% 이하.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통계 발췌) 일단 이것만 보여줘도 피폐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월급 이런 것까지 보여주면 피폐함의 크기는 거대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가끔 언론을 통해 자폐인의 부모들이 자녀를 살해하거나 그 뒤에 극단적 선택을 했다거나 시도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사법적 심판도 유난히 관대해지는(?) 현상도 발견됩니다. 그러면 판사가 ‘사회 제도가 어쩌고 저쩌고’를 탓하는 말은 덤입니다. 의외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적절한 지원 정책과 예산입니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지원정책의 양적·질적 부족에 시달리고 있고 그나마의 장애인 정책은 신체장애인에 집중되어 있을뿐더러 거기에 거주시설 중심 예산이라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처참한 현실입니다. 괜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2021년 말부터 2022년을 지나 그 이후에도 ‘뜨거운 전쟁’을 치렀던 것이 바로 이 원인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요구 예산안의 중심을 깊숙하게 파보면 결국 시설 중심 예산을 당사자에게 더 집중해 주길 바란다는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UN도 이제는 어떠한 방식이 이어도 시설 자체를 아예 없애버리라는 권고안까지 나왔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삶이 매우 파란만장한 삶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극적으로 살아남고, 대학에 가고, 취업을 하고, 다시 목숨은 붙어있게 되는. 그런 자폐인의 삶은 매우 거대한 우여곡절도 경험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파란만장 자폐인>, 이제 이렇게 다시, 두 번째 세계를 시작합니다! 다음 글을 기대해 주세요!


[덤: 실제 영상을 보고 싶으시면 YTN 해당 리포트 페이지로 가서 보시면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