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지용 알비스 May 10. 2023

세상에 '병역 기피' 말고 '병역 거절' 받은 사람

파란만장 자폐인 - 6 : 2008년, '병역판정전투'를 치르면서

세상에 병역을 기피한 것도 아닌 ‘병역이 거절된’ 사례가 있다면 믿기시나요? 사실 저는 ‘병역이 거절된 사람’에 가깝습니다. 이런 ‘믿기지 않을 것 같은 병역 거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한국 장애인 통계를 보면, 장애를 가진 남녀 비율을 비교해 보면 남성이, 그것도 어린 층에서도 많은 점이 있습니다. 자폐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여성 자폐인의 문제는 그야말로 발견하기 어렵고, 유전학 등 복잡한 요인도 있지만, 한 가지 또 다른 남녀 비중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이유는 사실 결정적인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병역 의무에 대한 규정 때문입니다. 한국 병역법에서는 등록 장애인은 특별한 사례가 아닌 이상 자동 면제 판정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국방일보도 장애인의 병역 처분 등에 대한 질의응답 기사를 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자폐인임을 공개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징병제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자폐인이 군대에 갔다가는 결국 ‘예비역 병장’이라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신분을 이행하려 해도 결국 불가능하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자폐인이 징병된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병역 의무 달성에는 실패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저도 병역이 면제되었는데, 실제로는 두 번에 걸쳐서 면제되었습니다. 첫 번째 면제는 2008년에 병역판정검사에서 그때는 제2국민역이라 불렸던 전시근로역 판정을 받아서 첫 번째 면제가 되었고, 다시 2012년에 두 번째 면제를 장애인 등록을 통해 다시 민방위까지 면제되는 두 번에 걸친 면제를 받았던 것입니다. 등록 장애인의 경우 민방위까지 다시 면제한다는 법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폐 등록자 중 가장 독특한 방식의 군 면제 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번에 곧바로가 아닌 이중으로 면제 처분이 되는 구조였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면제를 받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병역판정검사는 으레 대학을 곧바로 갔다면 대학교 1학년때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것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최대한 많이 징병하려는 군 당국과 살짝이라도 의심되면 병역을 수행하지 않으려는 대상자와의 일종의 눈치게임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나는 의심스러운 마음에 고등학교 3학년때인 2007년에 받은 진단서를 몰래 들고 병무청에 갔습니다. 그런데 병무청 공무원이 그 서류를 보자 결국 나를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판정 그런 것은 일단 ‘보류’라는 것입니다. 공무원의 설명은 병원에 가서 ‘병사용 진단서’와 관련 기록을 죄다 긁어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이 서류를 들고 병무청 사무실에 가야 했다!


결국 예전에 갔었던 병원을 탈탈 털어서 병사용 진단서와 관련 서류를 다 받아왔습니다. 그래도 마음에 걸렸던지 결국 그 문서를 몰래 복사해 놨습니다. 원본은 병무청으로 갈 것이고 사본은 제 비밀 문서고에 넣어놨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근거가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 사본은 다시 사본이 되어서 2012년 장애인등록의 결정적인 증거 서류로 또 작용했고 다시 이것은 지금은 PDF 파일로 다시 스캔되어서 제 전자 파일 창고에도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다시 한 달이 지난 뒤는 더 간편하게 끝났습니다. 공무원들이 가져온 서류를 쓱 보더니만 결과를 곧바로 발표했습니다. 그때는 제2국민역이라고 불렸던 전시근로역 판정. 간단히 말해 “당신은 군대에서 거절한 사람입니다”라고 딱지를 찍어서 돌려보냈다는 것입니다. 병역 기피가 아닌 어떻게 보면 ‘병역 사절’이나 ‘병역 거절’에 가까운 상황이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세상에는 여러 번 ‘병역 기피’ 사건이 터지는데, 이런 세상에는 엉뚱하게 ‘병역 거절’도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사실 이 ‘병역 거절’이 더 놀라웠습니다. 나는 사실 ‘입대 가능’ 판정이라도 나왔다면 그 병무청 공무원에게 다짜고짜 “해군에 입대하려면 누구에게 문의해야 합니까?”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평소에 해군을 동경해 왔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었던 것이 이 ‘병역 거절’ 하나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렇게 ‘제2국민역’이라는 이름의 ‘면제’이자 ‘병역 거절’ 결과를 통보, 아니 ‘선고’ 받고 병무청 사무실을 떠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떻게 보면 ‘내가 이상하게 부정된’ 느낌이었습니다. 국가는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생각까지 들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저는 그 이전에 이 과정을 ‘병역판정전투’라고 표현할 정도로 중차대하게 바라봤던 이슈였습니다. 그 ‘거절’이 엄청난 다행히 되었다는 것은 훗날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다음 해, 통장은 나를 찾아와 대뜸 민방위 집합 명령을 담은 영장을 보내왔습니다. 나는 그때 대학교 2학년이어서 통장에게 그것을 말하니 “대학생이야? 그러면 재학증명 서류를 동사무소에 내!”라고 다시 지시받아 다음날 학교에서 재학증명서를 떼서 동사무소에 넘겨줬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대학 재학생은 민방위 소집 예외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3학년때와 4학년때는 아예 시작하자마자 재학증명서를 떼서 동사무소 민방위 담당 공무원에게 넘겨서 ‘나를 부르지 말라’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래도 2학년을 마치고 3학년이 되기 전 정신상태가 무너지는 바람에 ‘교수님들마저 요구한 휴학’을 할 때는 이것을 막을 수 없어서 지루한 내용의 민방위 교육을 어쨌든 들으러 가야 했습니다.


다시 2012년 가을, 그 장애인 등록이 되던 날 장애인 등록 통지를 받으러 동사무소에 갔던 날, 복지 담당 공무원의 등록 통지를 듣고 난 뒤, 다른 자리의 민방위 담당 공무원에게 또 물었습니다. 그때는 다시 사회인이 될 운명이었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장애인 등록자도 민방위에 소집되냐고 물었더니만 그건 아니라면서, 그 의무는 없다고 공무원이 전했습니다. 그때 가서야 나는 완전히 병역이 ‘면제라는 이름의 거절’이라는 ‘선고’를 받았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병역의무라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인 일이 아닌 ‘한국 남자의 조건’이라는 또 다른 증명서이기도 합니다. 병역 의무를 마친 것이 하나의 사회적 권리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었기도 하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한국은 병역 기피자는 끝까지 잡아내서 기피자는 기어이 입대 영장을 집행하기도 하는 세상이니 그렇습니다.


한국의 자폐인들은 이래저래 결국 두 가지이면서 세 가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자폐를 숨기고 현역 입영을 하거나, 보충역 판정을 받고 군사훈련이 없는 사회복무를 하거나, 아예 등록을 해서 병역을 없는 것으로 처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사회복무법이 바뀌어 정신과 문제로 판정받은 자는 군사훈련 개념이 사라졌기 때문에, 제가 있는 자폐인 모임에 있는 사회복무를 했거나 하는 자는 거의 대다수가 군사훈련은 생략되었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사회복무를 하더라도 결국 복무 부적합에 의한 소집해제, 즉 쉽게 말해 현역 군인의 ‘복무부적합’ 판정도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저는 결국 ‘병역 기피자’가 아닌 ‘병역 거절자’로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의 군생활 이야기는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리고 군사 관련 이야기는 강제로 차단당하기도 합니다. 나는 그나마 군사학이나 안보, 전쟁사 이런 등의 문제를 조금이나마 들은 것이 있고 아예 개인적으로 수집하는 온라인 뉴스 자료철에도 아예 군사 관련 자료철은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나름대로 군사 문제 등에 대한 평가,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을 바라본 생각을 말해도 ‘너는 군대 안 갔잖아’ 이러면 저는 봉쇄당하는 운명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영국의 군사사학자 존 키건(John Keegan, 1934.05.15~2012.08.02)의 이력을 듣고 저마저 놀랐습니다. 존 키건은 소아마비로 인한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었는데도 영국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교수로 있었다는 이야기였는데, 병역 거절이 될 것 같은 자가 군사학등을 논의한다고 비난을 받으면 저는 이 존 키건을 반례로 언제나 말할 권리를 이야기할 정도입니다.


나중에 또 다른 이야기를 듣고 나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선발된 자폐인은 특수한 방식으로 군 복무를 하게끔 하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듣고 놀랐습니다. 이른바 ‘로임 라호크 계획’이라고 하는데 이런 계획에 선발된 자폐인들은 특별 훈련을 받은 뒤 전투 병과는 아니지만 군 내부 지원부서 등에서 군 복무를 이행하는 제도라서 특이하게 바라봤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이 계획을 따라 하는 제도가 있었다면 기꺼이 저도 지원했었을 것입니다. 유일한 문제는 제 나이가 이제 현역병 복무를 하기에는 점점 늙어간다는 사실 뿐입니다.


한국에서 자폐인이 또 다른 이유로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면, 아마도 나는 그것 중 하나로 ‘예비역 병장’이 될 수 없고 ‘병역 거절’을 결국 당하는 한국의 사회현실 때문이라고 당당히 답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병역 의무 수행이 충성의 증표라고 간주된다면, 아마 저는 어떻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에서 병역을 기피한 것도 아닌 ‘합법적’으로 ‘병역 거절’을 당한, 그것도 두 번이나 병역 거절을 당했던 저로서는 마음속으로 지금도 그런 짐이 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서 돌파해야 하는 조건들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달성해 낼 수 있을지언정 결국 나는 ‘한국사회에서 인정받는 자의 조건’을 100% 채울 수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합니다. 이것이 진정 한국사회에서 자폐인이 차별받는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미있게도, 저는 제 주위에 ‘예비역 병장’은 상대적으로 적지만요. 뇌전증 등 다양하게 말입니다. 이건 웃깁니다!


이전 06화 나에게 사원증을 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